변산에서만 볼 수 있는 ‘노랑붓꽃’

    옛 선비들이 쓰던 붓의 모양과 같은 꽃 몽우리 우리 한반도는 종자의 보고라고 한다. 약 6,000여종의 식물 종이 있다. 이처럼 식물 종이 다양한 이유는 우리나라 기후 등 환경이 돌연변이를 일으키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우리 땅은 남북으로 그리 길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식물군의 북한계가 있다. 감나무의 북한계는 황해도의 멸악산맥이다. 또한 대나무는 차령산맥이 북한계인데 이는 온대기후의 북한계와 일치한다. 이 대나무의 북한계는 동해안에서 강릉까지 북상하는데 이는 해류의 영향 때문이다. 차나무는 난대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그래서 남해안 일대에서 주로 …

대항리 점방산(占方山) 봉수대

  변산면 대항리(大項里: 한목) 점방산(占方山)봉수대는 남으로 격포 월고리산(月古里山)봉수대와 상응(相應)하고 북으로는 계화도(界火島)봉수대와 서로 응하는 연안의 봉수대다. 《세종실록》지리지 봉수조에 <占方山北應界件伊>라 하였는데 계건이(界件伊)란 계화도(界火島)를 가리킨 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안현 봉수조에도 <점방산봉수(占方山烽燧): 현의 서쪽 61리에 있는데 남으로 월고리(月古里)에 응하고 북으로 계화도(界火島)에 응한다>하였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의하면 <산내면 대항리 봉화산 원형 경오간(山內面 大項里 烽火山 圓型 徑五間)>이라 하였다. 그리고 1989년에 발행한 《전라북도지(全羅北道誌)》의 봉수조에는 <…이곳은 변산해수욕장이 있는 동편으로 승람에서 말한 61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수욕장과 해창(海倉)의 중간에 있는 해발 260m 고지 상에 있어 북으로 계화도에 연결 된다>라고 하였다. 또 1992년 전북체신청에서 …

이쁜 꽃 ‘변산바람꽃’

  변산의 봄전령 ‘변산바람꽃’ 2006년 2월 마지막 날, 전국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다.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쯤 변산 양지쪽 어디쯤에는 변산바람꽃이 피어있을 터, 눈을 이고 있는 변산바람꽃을 상상하자니 마음이 설레인다. 어쩌다 이놈이 ‘변산바람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나. 변산사람들에게는 더욱 귀엽고, 각별하게 정이 가는 꽃이다. 변산에서 발견되어 ‘변산바람꽃’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처음 보고 되었는데, 변산에서만 자생하는 줄 알았던 이 꽃은 알고 보니 다른 지역에서도 자생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변산사람들에게는 이 무슨 횡재란 말인가. 아닌 게 아니라 변산바람꽃은 내장산에도 피고, 변산반도 남쪽에서는 흔하게 …

실학의 비조 ‘반계 유형원’

  박지원(1737~1805)이 쓴 소설 <허생전>을 보면 허생에게 선뜻 만냥을 빌려주었던 변씨가 있다. 그는 허생과 같은 큰 그릇을 초야에 썩힐 수 없다고 생각하여 허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바야흐로 지금 사대부들간에는 지난날 남한산성에서 받은 호란의 치욕을 씻으려고 하고 있네. 지략과 재주를 갖춘 선비로서 팔뚝을 걷어붙이고 한번 일어나서 슬기를 펼쳐볼 만한 때가 아닌가. 자네와 같은 재주를 가지고 어째서 묻혀 살며 그대로 썩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에 허생은, “허허, 예로부터 한평생을 묻혀 산 사람이 어찌 한둘에 그치겠는가. 저 조성기로 말할 것 같으면 적국에 사신으로 …

허균과 이매창, 우반동, 그리고 홍길동전

    허균은 재주가 출중해서 여러 차례 과거에 장원급제했지만 굽힐 줄 모르는 대쪽같은 성격 탓에 다섯 차례나 관직에서 파직을 당했다. 그런 그는 외가가 강릉, 친가가 한양이었지만 파직 기간 중 대부분의 기간을 호남에서 보냈다. 허균이 자신의 심신을 달래 줄 휴식처로 선택한 호남은 국문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홍길동전’ 등 주옥같은 작품이 잉태한 곳이며, 조선왕조의 성리학적인 봉건질서에 항거하는 개혁세력의 요람이었다. 또 1,3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기축옥사(1589)의 현장이며,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황량하기 그지없던 곳이었다. 호남 중에서도 부안은 허균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그는 …

영남엔 곽재우, 호남엔 김홍원

    영욕으로 점철된 김홍원의 일생 우반동 김씨들이 현조로 손꼽는 인물 중의 한 명이 바로 김석필의 증손인 김홍원이다. 그는 약관에도 못 미치는 18세에 진사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3년 후인 21세에 별시 문관 초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그는 초시에 합격한 이듬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결국 문과에 급제하지는 못했다. 그가 과거에 합격하거나 관직에 임명될 때마다 받았던 합격증서와 임명장이 현재 32장 남아 있다. 이러한 합격증서와 임명장을 통하여 볼 때, 김홍원의 관직 생활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실은 그가 벼슬생활을 …

미래는 종자전쟁 시대

    식물종자의 보고 ‘변산반도’ 98년 추석 때였다. 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하기 위해 석포에서 대소골로 넘어가는 가파른 고갯길을 비를 맞아가며 넘다가, 잠시 다리쉼을 하고 있는데 저 아래에 눈을 끄는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다리를 일으키 뽀짝뽀짝 내려가 보았다. 꽝꽝나무였다. 중계에 있는 꽝꽝나무는 천연기념물 124호 아니던가. 우리 한반도는 종자의 보고라고 한다. 약 6,000여종의 식물 종이 있다. 이처럼 식물 종이 다양한 이유는 우리나라 기후 등 환경이 돌연변이를 일으키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우리 땅은 남북으로 그리 길게 자리잡은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

격포 월고리산(月古里山) 봉수대

이제 우리들이 살고 있는 부안땅에 있었던 세 곳의 봉수대(烽燧台)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우리 부안에는 변산반도의 서해안을 따라서 세 곳에 봉수대가 조성되어 있었으며 근래에 그 유적지를 찾아내어 복원도 하고 그 주변을 정리도 하여 놓았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전라도 부안(扶安) 조에 의하면 <봉화대가 세 곳이 있다. 현의 서쪽 월고리(月古里)에 있는데 남으로 무장(茂長)의 소응포(所應浦)에 따르고 북으로 점방산(占方山)이 따른다. 점방산에 있다. 북으로 계건이(界件伊)가 따른다. 계건이에 있다. 북으로 만경(萬頃)의 길곶이(吉串)가 이에 좇는다.(烽火三處 縣西月古伊 南准茂長所應浦 北准占方山 占方山北准界件伊 界件伊北准萬頃吉串)>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똑같이 보인다. 다만《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현과의 …

감이 있는 가을풍경

  마을마다 골골마다를 붉게 물들이며 감이 익고 있다. 가을정취의 백미다. 예부터 감나무를 문무충절효(文武忠節孝)의 5절을 갖춘 나무라고 일컬었다. “잎이 넓어서 글씨 연습을 하기에 좋으므로 문(文)이 있고, 나무가 단단해 화살촉 재료로 쓰이므로 무(武)가 있고, 열매의 안팎 색깔이 똑같이 붉어서 충(忠)이 있으며,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열매가 달려 있으므로 절(節)이 있고, 치아가 없는 늙은이도 홍시를 먹으므로 효(孝)가 있다.”는 것이다. 조홍시가(早紅柿歌) 盤中(반중) 早紅(조홍)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柚子(유자) 안이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난 품어 가 반기리 업슬새 글노 설워 하나이다. 위 시조는 조선 중엽 박인로(朴仁老 1561-1642)가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으로부터 조홍시(早紅柿)를 …

우반동을 사들인 김홍원

    우반동을 사들인 김홍원 내가 긴히 돈 쓸 일이 있기 때문에 부안 입석면(立石面) 하리(下里) 우반(愚磻)에 있는 전답을 김홍원에게 판다. 이 전답은 나의 6대조이신 우의정 문간공(柳寬)께서 태조조에 개국공신으로 책봉되어 왕으로부터 받은 사폐지이다. 그런데 이곳이 서울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접 관리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궁벽한 산골짜기에 있기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해 둔 지가 어언 수백 년이나 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임자년(1612) 가을에 내가 비로소 이곳으로 내려와 … 논과 밭을 만들었는데… 그 후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