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포 월고리산(月古里山) 봉수대

▲격포 월고리 봉수대ⓒ부안21

이제 우리들이 살고 있는 부안땅에 있었던 세 곳의 봉수대(烽燧台)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우리 부안에는 변산반도의 서해안을 따라서 세 곳에 봉수대가 조성되어 있었으며 근래에 그 유적지를 찾아내어 복원도 하고 그 주변을 정리도 하여 놓았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전라도 부안(扶安) 조에 의하면 <봉화대가 세 곳이 있다. 현의 서쪽 월고리(月古里)에 있는데 남으로 무장(茂長)의 소응포(所應浦)에 따르고 북으로 점방산(占方山)이 따른다. 점방산에 있다. 북으로 계건이(界件伊)가 따른다. 계건이에 있다. 북으로 만경(萬頃)의 길곶이(吉串)가 이에 좇는다.(烽火三處 縣西月古伊 南准茂長所應浦 北准占方山 占方山北准界件伊 界件伊北准萬頃吉串)>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똑같이 보인다. 다만《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현과의 거리를 이수(里數)로 표시하였고 월고이(月古伊), 계건이(界件伊)의 이(伊)가 리(里)와 도(島)로 기록되어 있다. 里와 伊를 같은 뜻으로 쓴 것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 34권 전라도 부안현의 봉수(烽燧) 조에는 다음과 같다.

<월고리산봉수(月古里山烽燧): 현의 서쪽 75리에 있는데 남으로 무장(茂長)의 소응포(所應浦)에 응하고 북으로는 점방산(占方山)에 응한다. 점방산봉수(占方山烽燧) : 현의 서쪽 61리에 있는데 남으로 월고리에 응하고 북으로 계화도(界火島)에 응한다. 계화도봉수(界火島烽燧): 북으로 만경현(萬頃縣)의 길관봉수(吉串烽燧)에 응하고 남으로 점방산에 응한다.(月古里山烽燧 : 在縣西七十五里 南應茂長所應浦山 北應占方山 占方山烽燧: 在縣西六十一里 南應月古里 北應界火島 界火島烽燧: 北應萬頃縣吉串 南應占方山)>

월고리산봉수(月古里山烽燧)는 변산면 격포항(格浦港) 건너편 해발 174m의 봉대산(烽台山: 봉화산)에 있는 봉수대를 말한다.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月古里山」이라 기록한 것은 실지 현지에서 부르고 있는 산봉우리의 명칭이 바뀐 것이다. 실지로는 닭이봉(月古里山)에는 봉수대가 없다.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는 곳은 닭기봉이 아니고 격포항 건너편 남쪽의 봉화봉이다. 기록이 잘못된 것이다. “닭기”는 “月古”의 훈차음(訓借音)인데. 닭이봉은 격포항 우측(북쪽) 채석강 절벽위에 있는 해발 68m의 산봉우리다. 그리고 점방산(占方山)봉수대는 변산면 대항리에 있으며, 계화도(界火島)봉수대는 계화면 계화산에 있다.

이들 부안지방의 세 봉수대는 제5거(第五炬) 봉수노선인 순천(順天)의 돌산봉수대(突山烽燧台)를 시발로 남해안과 서해안의 여러 봉수대를 거치면서 양천(陽川)의 개화산(開華山)봉수대를 끝으로 서울의 목멱산(木覓山: 南山)봉수대에 최종 전달되는 직봉선(直烽線)의 중간부분 거화선(炬火線)이다. 앞에서 언급한 중국 송(宋)나라의 사신 서긍(徐兢)이 1123년에 쓴 《고려도경》의 내용 중 흑산도(黑山島)에서 본 봉수의 전송은 부안지방 세 곳 봉수대를 거쳐 간 봉수의 거화선(炬火線)이었음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다.

봉수의 조직망은 전국의 주요 간선도로를 오로(五路: 다섯 노선)로 나누어 이 오로 기간노선상의 봉수를 직봉(直烽)이라 하였으며 직봉을 중심으로 중간과 그 주변을 연결하는 보조선 봉수를 간봉(間烽)이라 하였다. 이 오로(五路)직봉의 모든 상황이 서울 남산의 봉화대로 모아진다. 오로(五路)의 오거(五炬)는 다음과 같다.

제1거는 함경도 경흥(慶興)의 서수라보(西水羅保)의 우암(牛岩)봉수로부터 은성(穩城)의 유원(柔遠), 북청(北靑)의 석용(石茸), 안변(安邊)의 철령(鐵嶺), 양주(楊洲)의 아차산(峨嵯山), 서울의 목멱산 봉수까지이고, 제2거는 경상도 다대포진(多大浦鎭)으로부터 영천(永川)의 성황당, 순흥(順興)의 죽령(竹嶺), 충주(忠州)의 마산(馬山), 광주(廣州)의 천림산(天臨山), 서울의 목멱산까지며, 제3거의 노선은 평안도 강계(江界)의 만포진(滿浦鎭)으로부터 의주(義州) 통군정(統軍亭), 평양(平壤) 화사산(畵寺山), 개성(開城) 송악산(松岳山)의 국사당(國師堂), 한성(漢城) 모악(母岳)의 동봉(東峰), 서울 목멱산이며, 제4거는 평안도 의주의 고정주(古靜州)로부터 삼화(三和)의 우산(牛山), 장연(長淵)의 미라산(彌羅山), 해주(海州)의 연평도(延坪島), 한성의 모악 서봉(西峰), 서울의 목멱산이고, 제5거는 전라도 순천(順天)의 돌산도(突山島)로부터 진도(珍島)의 여귀산(女貴山), 부안(扶安)의 월고리(月古里), 옥구(沃溝)의 화산(花山), 양성(陽城)의 괴태관(塊苔串), 양천(陽川)의 개화산(開華山), 서울 목멱산까지의 노선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격포의 월고리봉수대는 남쪽 고창의 무장(茂長) 소응포산봉수를 받으며 소응포봉수는 고리포(古里浦)에서 받고 고리포봉수는 영광(灵光)의 홍농산(弘農山)봉수를 받으며, 홍농산봉수는 고도도(高道島)봉수를 받고, 차음산(次音山)봉수에 이어서 함평(咸平)의 해제(海際)봉수로, 무안(務安)의 고림산(高林山)봉수로 연결된다.

북쪽으로는 변산해수욕장 근처 대항리(大項里: 한목) 점방산(占方山)봉수대에서 받아 계화도(界火島)봉수대로 이어지며 이것을 김제(金堤)의 만경(萬頃) 길곶이(吉串), 옥구(沃溝)의 사자암(獅子岩)봉수, 화산(花山)봉수 임피(臨陂)의 오성산(五聖山)봉수대에서 충청도 서천(舒川)의 은산(銀山)봉수대로 이어진다.

1992년 전북체신청에서 간행한《全北의 烽燧台》 월고리 봉수대 조에 의하면 명칭에 대하여 「실지로는 격포리봉수, 또는 호리산봉수라는 명칭으로 불린다」고 하였다. 여기서 ‘호리산봉수’라 한다는 말은 매우 생경한 명칭이며 근거도 없는 다소 억지의 주장이라 하겠다. 호리산(壺裏山)이란 풍수비결에서 말하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병속처럼 깊숙하여 격포가 피난지라는 말인데 군사적 요새지인 격포에 걸맞지도 않는 명칭이다.

격포 월고리봉수대가 있는 정확한 위치는 격포항 남쪽 건너편 봉화산 174m 고지에 있다. 동경 126°28′, 북위 35°36′이며 원형으로 지름이 약 9m 크기다. 1957년에 필자가 답사하였을 때는 나무 없는 민둥산이었으며 정상에 오르니 칡넝쿨에 싸인 무너진 봉수대의 돌덩이만이 삭막하게 궁굴고 있었다.

무너진 봉수대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동으로는 첩첩한 변산이요, 서로는 망망한 칠산(七山)의 서해바다며 멀리 남으로는 고창 선운산 너머 무장(茂長)의 소응포 봉수산이 보이는 것 같고, 북으로는 격포진(格浦鎭), 죽막동(竹幕洞: 대막골), 수성당(水聖堂) 건너편으로 대항리 점방산(占方山)의 봉수대 고지가 바로 거기다.


/김형주


김형주
는 1931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전북대학교를 나와 부안여중, 부안여고에서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안향토문화연구회와 향토문화대학원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향토문화와 민속’,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부안의 땅이름 연구’, ‘부풍율회 50년사’, ‘김형주의 부안이야기’, ‘부안지방 구전민요-민초들의 옛노래’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전북지역 당산의 지역적 특성’, ‘부안읍 성안 솟대당산의 다중구조성과 제의놀이’, ‘이매창의 생애와 문학’, ‘부안지역 당산제의 현황과 제의놀이의 특성’ 외 다수가 있다. 그밖에 전북의 ‘전설지’, ‘문화재지’, 변산의 얼‘, ’부안군지‘, ’부안문화유산 자료집‘ 등을 집필했다.

(글쓴날 : 200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