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리 점방산(占方山) 봉수대

 

▲대항리 점방산 봉수대 터ⓒ부안21

변산면 대항리(大項里: 한목) 점방산(占方山)봉수대는 남으로 격포 월고리산(月古里山)봉수대와 상응(相應)하고 북으로는 계화도(界火島)봉수대와 서로 응하는 연안의 봉수대다. 《세종실록》지리지 봉수조에 <占方山北應界件伊>라 하였는데 계건이(界件伊)란 계화도(界火島)를 가리킨 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안현 봉수조에도 <점방산봉수(占方山烽燧): 현의 서쪽 61리에 있는데 남으로 월고리(月古里)에 응하고 북으로 계화도(界火島)에 응한다>하였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의하면 <산내면 대항리 봉화산 원형 경오간(山內面 大項里 烽火山 圓型 徑五間)>이라 하였다. 그리고 1989년에 발행한 《전라북도지(全羅北道誌)》의 봉수조에는 <…이곳은 변산해수욕장이 있는 동편으로 승람에서 말한 61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수욕장과 해창(海倉)의 중간에 있는 해발 260m 고지 상에 있어 북으로 계화도에 연결 된다>라고 하였다.

또 1992년 전북체신청에서 발행한 《全北의 烽燧臺》에는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하여 동경 126°34′, 북위 35°30′과 126°24′, 해발 280m와 260m 두 가지의 불확실한 문헌상의 기록을 지적하고 실지 답사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도로변 야산을 밭두렁과 묘지를 지나 산봉우리에 오르니 연대(烟臺)를 쌓은 듯한 석축과 무너져 내린 무수한 돌무더기가 봉수터로 단정해도 좋을 확연한 흔적이 물증으로 눈앞에 다가왔다. 연대로 보이는 직경 7.8m, 높이 2m가 넘는 원형의 축석이 있는데 정교하게 쌓은 해안쪽의 이끼낀 석축은 그대로인 채 상층부 일부는 잡초가 우거져 있고, 내륙쪽은 대부분 헐어져 파이고 자연석이 즐비하게 널려 있으며, 연대의 둘레엔 돌로 쌓은 석축의 흔적이 12.3m에 걸쳐 남아 있다… 멀리 남쪽으로 월고리 봉수대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 계화도 봉화산이 환히 보이며 이곳 봉화대가 양쪽 봉화대와 정확히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점방산(占方山)봉수대는 대항리(大項里)의 뒷산에 있으며, 변산해수욕장 조금 못미처에 있는 전북체신청 휴양소가 있는 소재지 마을에서 30분쯤 소요되는 곳 봉화산에 봉수대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산 보우리를  봉화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봉수대는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그 후의 유형원(柳馨遠)이 편찬한 것으로 추정하는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봉수 조에는 보이지 않으며 1760년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와 1790년의 <호남읍지(湖南邑誌)>에도 빠져있다. 그러다가 1871년에 간행된 <湖南邑誌> 이후 보이고 있다.


/김형주


김형주
는 1931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전북대학교를 나와 부안여중, 부안여고에서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안향토문화연구회와 향토문화대학원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향토문화와 민속’,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부안의 땅이름 연구’, ‘부풍율회 50년사’, ‘김형주의 부안이야기’, ‘부안지방 구전민요-민초들의 옛노래’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전북지역 당산의 지역적 특성’, ‘부안읍 성안 솟대당산의 다중구조성과 제의놀이’, ‘이매창의 생애와 문학’, ‘부안지역 당산제의 현황과 제의놀이의 특성’ 외 다수가 있다. 그밖에 전북의 ‘전설지’, ‘문화재지’, 변산의 얼‘, ’부안군지‘, ’부안문화유산 자료집‘ 등을 집필했다.

(글쓴날 : 200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