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구경하기 힘들다는 ‘대꽃’-부안예술회관에 피었어요

 

▲2008.04.23 부안예술회관에서ⓒ부안21

평생에 구경하기 힘들다는 대꽃이 피었다. 부안예술회관 화단에 옮겨 심어 놓은 왕대나무에 꽃이 핀 것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벼나 보리의 꽃과 비슷하며 엷은 녹색을 띠고 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햐 하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하여 비어 있는가. 저렇게 사계절에 푸르니 그것을 좋아하노라.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중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를 찬양한 노래다.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과에 속하는 대나무는 나무로 분류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윤선도의 노래에서처럼 나무로 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풀로 보기도 어렵다. 봄에 죽순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두 달 정도면 성장을 끝낸 다음 더 이상 자라거나 굵어지지 않고 단단해지기만 하다가 말라 죽는 것은 풀의 성질을 지녔다.

대나무류는 전 세계에 50속 1250여종, 우리나라에는 60여종이 자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대나무 중 대표적인 종은 맹종대, 왕대, 솜대, 오죽, 시누대(이대), 조릿대(산죽) 등이다. 이 중 우리나라에 가장 흔한 종은 왕대이고, 화살을 만드는 시누대는 주로 남쪽지방에 자라는데 부안지방에는 흔한 편으로 적벽강 일대는 시누대가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전투용 화살로 이 시누대가 쓰였기 때문에 이곳의 시누대를 베어 중앙으로 수송하였으며, 이곳 대밭을 관전으로 관리하고 대를 베어 저장하는 막(幕)이 있어 이 마을이 대막골 또는 죽막동(竹幕洞)이라 이름 지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에 걸쳐 자라는 종은 조릿대다.


▲2008.04.23 부안예술회관에서ⓒ부안21

100년에 한 번 피는 ‘대꽃’

대나무는 꽃을 피워 열매로 번식하는 것이 아니라 땅속줄기에서 죽순이 솟아올라 성죽(成竹)이 되는 방식으로 번식을 한다. 그런데 60년 또는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러기에 대꽃을 보기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드문 일이다. 대나무류 중에서 조릿대는 5년에 한 번 꽃을 피우기 때문에 등산을 하다보면 종종 볼 수 있지만…

대나무가 꽃이 피는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주기적으로 꽃을 피운다는 주기설과 기후의 급격한 변화가 개화의 원인이 된다는 기후설, 영양분의 결핍이 개화의 원인이 된다는 영양설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영양설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뿌리로 번식하는 대나무가 영양이 부족해지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고, 그런 대나무는 모든 에너지를 동원하여 꽃을 피워 결실을 맺는 방식으로 번식을 꾀하지 않을까?

봉황이 먹는 상서로운 열매

이렇게 100년에 한 번 피는 대꽃을 두고 길조라느니 흉조라느니 설이 나뉜다. 꽃이 피면 대숲 전체가 고사해버리기 때문에 흉조라고 여기는 듯하다. 길조라 함은…, 죽실이라고 하는 대나무 열매는 모양이 보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중국 <장자>의 고사에 봉황이 먹는 상서로운 열매로 알려져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대나무 열매가 봉황이 먹는 열매이든 어쨌든… 배고팠던 민초들에게는 훌륭한 구황식물이 되어주었다. 조선시대 이수광이 편찬한 <지봉유설>에는 지리산에는 대나무 열매가 많이 열려서 그 지방 사람들이 밥을 지어먹었고, 울릉도에서는 비축식량이 두절되어 굶어 죽게 되었는데 마침 대나무가 결실을 맺어 대나무열매와 산마늘로 연명하여 기아를 면할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부안의 향토사학자이신 김형주 선생님의 회고에 의하면 일제의 학정에 배곯던 해방무렵, 변산의 산죽(조릿대)들이 꽃을 피우고 이내 열매를 맺자 사람들이 그 열매를 채취하여 죽을 쑤어 먹고 허기를 면했다고 한다.


/허철희(2008·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