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새만금245

‘갯벌살리기’에 국가가 나섰다.
독일 슐레스비히-홀스타인주 갯벌국립공원
| 2007·10·04 02:13 |

▲ 염생식물이 자라는 구역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다. 관광객들은 사람이 오갈 수 있는 포장된 길로만 다닌다. 주변에는 사람이 버린 쓰레기라고는 일체 발견할 수 없었다. 쓰레기통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나가 염생식물지대를 지나 바닷물이 밀려드는 곳에 이르렀다. 모래펄갯벌로 단단했으나 하부로 더 내려가자 발이 푹푹 빠지는 뻘갯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 슐레스비히-홀스타인주 갯벌국립공원
50만년전 와덴해가 속한 북해는 육지로 영국과 이어져 있었으며 유럽 북부는 빙하가 덮고 있었다.
빙하가 녹으며 해안이 침수 되었고 독일의 북해 연안은 북독일평원의 일부로 서쪽으로 갈수록 고립된 낮은 구릉지이거나 습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저지대에 북해의 거센 바람이 몰고 오는 해일로 농지는 물론 마을까지 침수되는 일이 고대로부터 빈번하였다. 13세기경부터 사람들은 이러한 해일에 대항해 언덕을 쌓아 그 위에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었으며 점진적으로 제방을 쌓아 물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독일은 오랜 간척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이리하여 북해연안의 거의 전부는 제방으로 둘러있다.

9월4일 아침 함부르크에서 갯벌국립공원 관리청이 있는 퇴닝까지 열차로 2시간여 가는 동안 단 하나의 산도 볼 수 없었다. 목초지에 풀을 뜯는 양이나 소, 나무, 진한 커피색의 하천, 농가 주택이 창밖으로 볼 수 있는 경관의 전부였다.


▲ 슐레스비히-홀스타인주 갯벌국립공원 관리청이 있는 건물

◀ 코스막 스테판 박사

푸좀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퇴닝역에 내리자 국립공원관리청 조사연구부장인 코스막 스테판(54) 박사가 마중을 나왔다.
그의 사무실에서 새만금간척사업 문제로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그로부터 갯벌국립공원의 현황을 들었다.

독일에서는 1973년에 마지막 간척지 땅이 이루어진 이후로는 영토확장이라 부르던 간척사업이 더 이상 없다고 한다. 갯벌보호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주장한 것은 학자들이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급격한 산업화의 추진으로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1970년대에 들어서서 독일의 연근 해안 북해가 오염의 징후가 보인다는 보고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갯벌을 보전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았고 여기에 시민단체들이 함께 하였다. 또한 이 시기는 독일에서 녹색당이 출현한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1972년에 스톡홀름에서 유엔 인간환경회의가 열려 ‘사람은 존엄과 복지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자유와 평등 및 충분한 생활수준을 향유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를 갖는다.’는 ‘인간환경선언’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 시기에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오염물질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 스테판 박사의 사무실에 붙은 그림
독일의 갯벌국립공원은 주민들의 반대 속에서 정부의 추진으로 이루어졌다. 주민들 80%가 처음에는 반대했다. 15년 동안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 그리고 행정담당자와 정치인 사이에 토론과 상의 과정이 있었다. 마침내 1985년 10월 1일에 엘베강에서 덴마크 국경에 이르는 슐레스비히-홀스타인주 갯벌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도 컸다. 스테판 박사는 슈레스비히-홀스타인 주 갯벌국립공원 지역주민들에 대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현재 49%의 주민들이 갯벌 국립공원을 ‘자랑스러워’하고 있고, 38%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갯벌은 3등급으로 나누어 관리되고 있다. 제1구역은 정해진 길 이외에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으며 공원을 훼손하거나 경관을 바꾸는 일체의 행위가 금지된 구역으로 전체 면적의 37%이다. 제 2구역은 사람이 들어갈 수는 있지만 경관을 훼손할 수 없는 구역으로 전체 면적의 28%이며, 제3구역은 휴식을 취하고 수영도 가능한 구역으로 조개류 채취는 약간은 가능하나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할 수 없으며 어장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있다.

80년대까지 쓰레기 해양투기로 문제가 많았으나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의 4개국 협정을 맺고 쓰레기의 해양투기를 철저히 막고 있다. 정기적으로 해안에 밀려드는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으며 이 쓰레기를 철저히 분석하여 출처를 찾아낸다.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은 모두 정화과정을 거치며 정화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슬러지는 재활용하거나 여과장치를 갖춰 태운다.

스테판 박사의 안내로 아이데르강 하구의 배수갑문을 가보았다. 아이데르강 하구 간척사업은 1967년에 시작하여 1973년에 완성한 독일의 마지막 간척사업이었다. 조수간만의 차는 2m로 밀물 때에도 갑문을 개방하여 바닷물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도록 하고 있다. 풍랑이 심하게 일 때만 배수갑문을 닫는다고 한다.

강물이 바닷물과 만나 섞이는 기수역 갯벌에서는 오리류, 도요물떼새류 등의 새들 수천 마리가 날아와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평일임에도 100여명의 관광객들이 이곳 저곳을 구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주차장


▲ 배수갑문 바깥쪽의 관광객들


▲ 차량통행이 한적한 시골길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붙어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베스테르헤베르 해안으로 갔다. 해안은 제방으로 둘러있는데 제방은 초지로 조성되어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제방에 방목하는 양들은 적당한 숫자여야 제방을 보호할 수가 있다. 풀을 방치해두면 제방 흙이 쉽게 힘없이 내려앉게 되고 양의 숫자가 너무 많으면 제방의 흙이 비에 쓸려 흘러가게 되므로 방조제를 보호하는데 적당한 풀이 필요하다.

국립공원관리청은 몇 평에 몇 마리 양이 필요하다는 통계를 내고 지역민들과 계약을 체결하여 무료로 방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민들에게도 이익이고 국가도 방조제를 잘 보호할 수 있어 이익이다.


▲ 간척지에 들어선 농가

▲ 1급 보호구역이다.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다.

제방 바깥은 매우 완만한 경사였으며 그 아래로 염분이 있는 곳에서 잘 자라는 소금잔디와 퉁퉁마디로 들어찬 염습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모두 오염된 바닷물을 정화하는 기능을 하며 확 트인 경관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것이다. 스테판 박사는 매년 1,400만명 정도의 관광객들이 슐레스비히-홀스타인주를 방문하는데 이 가운데 3~400만 명이 갯벌을 찾는다고 말했다. 독일 남서부 프라이부르그에서 온 한 관광객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경관 자체가 너무 좋아 2년에 한번은 반드시 이곳을 찾는다.”며 “휴가를 내어 가족 모두가 함께 왔다.”고 말했다.


▲ 퉁퉁마디 종묘장


▲ 흙장난을 하며 노는 아이.

염생식물이 자라는 구역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다. 관광객들은 사람이 오갈 수 있는 포장된 길로만 다닌다. 주변에는 사람이 버린 쓰레기라고는 일체 발견할 수 없었다. 쓰레기통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나가 염생식물지대를 지나 바닷물이 밀려드는 곳에 이르렀다. 모래펄갯벌로 단단했으나 하부로 더 내려가자 발이 푹푹 빠지는 뻘갯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방 안쪽의 주차장에는 200여대의 차량들로 가득 차 주차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주차장 옆의 건물에는 차와 기념품을 팔고 있었으며 곳곳에 이곳의 역사와 자연환경을 설명한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간간히 빈 조개껍질이 발견될 뿐 생명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흔한 갯지렁이 구멍 하나, 게 한 마리 발견할 수 없었다. 펄을 조금 파보았다. 5센티쯤 파들어가자 시커멓게 썩은 갯벌층이 악취와 함께 나타났다. 비로소 독일정부의 갯벌을 살리려는 노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전후 경제회복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제한없이 방출한 결과 갯벌이 다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환경 오염에 따른 위기감 속에서 70년대에 갯벌보존 문제가 오랜 기간 동안 논의되었고 80년대 에 들어와 정부가 앞장서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되살리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 게와 같은 저서생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허정균(풀꽃세상을위한모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