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 문화의 발상지-부안

위의 두 볍씨자국토기편은 전영래 박사가 습득, 소장하고 있다. 부안의 문헌에 볍씨자국토기편은 보이는데 사진자료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전영래 박사를 수소문해 여쭈어 봤더니 당신이 소장하고 있노라고 했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박사님 댁을 방문하여 찍은 사진이 위의 사진이다. 박사님은 ‘출토’가 아니라, ‘습득’이라고 ‘습득’을 유독 강조 하셨다. 김제 벽골제 민속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볍씨자국토기편은 위 사진의 것을 모조한 것이다. 말 나온 김에 하는 얘기지만, 김제 벽골제 민속박물관에 들를 때마다 김제가 부럽기만 하다. 3면에 바다를 끼고 있고, 너른 들을 끼고 있는 부안… 일찍이 해양문화가 발달하고, 김제와 …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의 시세계

  일제 때 양심지킨 시인 해방 후 치열한 저항의식 표현한 작품 남겨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辛夕汀:1907~1974).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목가시인’ 또는 ‘전원시인’이라는 수사가 붙어다닌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원초적 내면의 향수를 자극하는 시어들을 찾아 일생을 향토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석정은 간재 전우의 제자로 한학자였던 부친 신기온(辛基溫)의 3남2녀 중 차남으로 부안읍 동중리 ‘노휴재’ 뒤편의 본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때부터 그의 집안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안읍에서 한약방을 해오고 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석정(錫正)이었다. 그가 태어난 날이 7월 …

백산성지

  아, 이 낮은 백산이 이렇게 높은 줄을 누가 미처 알았으랴. 사방이 눈앞에 환하기가 지리산보다 환하고 태백산보다 더 환하구나. 그 까닭이야 너무도 명백하니 이 산이 홀로 들판 가운데 있기 때문이로다. 이 세상에 사람이 산천의 수목처럼 가득하되 모두 그만그만 키가 같은지라 서로가 서로에게 묻혀 내려다보는 사람이 없더니 드디어 한 사람이 우뚝 솟아 세상을 내려다 보거늘, 그가 그렇게 우뚝한 까닭은 다만 그가 한 자 높은 돌 위에 섰음이로다. 그 한 자의 돌을 분별하는 사람이 없다가 이제 비로소 눈이 뜨인 사람이 있어 여기 …

물속에 불구슬이 빠진다기에 … 서해낙조

  예부터 동해의 낙산 일출과 서해의 변산 낙조를 일대 절경으로 쳤다. 변산8경 중의 1경으로 ‘서해낙조’를 꼽았음도 물론이다. 노산 이은상은 아름다운 변산의 낙조를 보고 이런 시를 지었다. 변산의 마천대에 오른 듯 내려 저분네 바쁜행차 어디로 가오 물속에 불구슬이 빠진다기에 월명암 낙조대를 찾아간다오 /노산 이은상 또, 육당 최남선은 1900년대초에 변산을 여행하고 기행문을 남겼다. 그는 영전으로 해서 버드내, 환의고개를 지나 내소사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원암고개를 넘어 직소폭포, 실상사를 둘러본 후, 서해낙조를 보기 위해 실상사 뒷등을 타고 낙조대에 올랐다. 그러나 구름이 끼어 변산 낙조의 황홀함도, …

열매가 산딸기 닮아 얻은 이름 ‘산딸나무’

    초록바다에 뜬 하얀 별…? 여름으로 접어든 요즈음, 벌써 짙어진 녹음 사이사이에 활짝 핀 산딸나무 꽃이 싱그럽다. 언뜻 보면 바람개비 같기도 하고, 하얀 종이에 쓴 편지를 곱게 접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초록바다에 뜬 하얀 별 같기도 하다. 다른 꽃들은 대부분 꽃잎이 5장 달리는데 산딸나무는 4장 달려 있다. 사실은 꽃잎이 아니라 꽃잎처럼 생긴 흰색 포가 꽃차례 바로 밑에 십(十)자 형태로 달려 꽃차례 전체가 마치 한 송이 꽃처럼 보인다. 어쨌든 이 꽃잎은 처음에는 연초록으로 피어 완전히 피면 새하얗게 변하고, 질 …

계화도(界火島) 봉수대

    계화도(界火島)는 1977년에 완공된 계화도간척공사로 바다 속의 외딴 섬이 육지로 되어 지금은 섬이 아니며, 1983년 이전까지는 부안군 행안면(幸安面)에 속해있었던 섬이었다. 바다를 막아 육지가 된 이후 행안면에서 분리되어 계화출장소로 잠시 있다가 1983년 면으로 승격되면서 계화도와 간척지 너른 땅이 중심이 되어 계화면(界火面)이라는 새로운 면이 탄생되었으며 그 행정치소는 창북리(昌北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계화도봉수대는 남으로는 점방산(占方山)봉수대에 응하고 북으로는 만경현(萬頃縣)의 길곶이(吉串)봉수대에 응한다 하였다. <占方山北准界件伊 界件伊北准萬頃吉串> 세종당시 계화도 계화리를 계건이(界件伊)라 하였던 것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같은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다. <界火島烽燧 北應萬頃縣吉串 南應占方山> 계화도봉수대는 해발 246m의 계화산의 정상에 …

생존 위한 ‘호박 덩굴손의 몸짓’

    식물이나 물체에 지탱하여 위로 자라는 식물을 덩굴식물, 혹은 만경식물(曼莖植物)이라고 한다. 덩굴식물은 줄기로 다른 식물을 감싸거나, 덩굴손을 만들어 덩굴손으로만 감싸면서 자라거나 또는 자기 스스로 잘 움직이지 않는 곁가지, 가시, 뿌리 또는 털 등의 흡기(吸器)를 만들어 다른 식물에 달라붙어 자란다. 덩굴손을 만드는 종류로는 호박, 수세미외, 청미래덩굴(부안에서는 ‘맹감’이라고 부른다), 으아리 등이 있다. 줄기로 감싸며 자라는 종류로는 칡, 등나무, 으름, 나팔꽃. 환삼덩굴 등이 있다. 부정근(不定根)이 낙지다리의 흡반처럼 되어 있어 나무나, 바위, 벽 등에 흡기로 달라붙어 자라는 종류로는 담쟁이덩굴, 송악 등이 있다. 이러한 …

위도진(蝟島鎭)

  위도는 부안군에서 가장 큰 섬으로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위도면 진리에 수군진(鎭)이 있었다. 진리(鎭里), 혹은 진말은 여기서 유래된 마을 이름이다. 「문헌비고」해방조(海防條)에 “위도 재서 150리 지안 50리 주35리 숙종 8년(1682) 설첨사진(蝟島 在西百五十里支岸五十里 周三十五里 肅宗八年 設僉使鎭)” 이라 기록되어 있다. 또 「문헌비고」 병고주사조(兵考舟師條)에 “肅宗九年 設水軍鎭營於蝟島 加里浦 次臨溜 古群山 右浦 多慶浦 法聖浦 黔毛浦 群山浦 知島八堡 屬蝟島”라 하였는데 내용은 숙종 9년(1689)에 위도에 수군진영을 설치하고 가리포, 차임류, 고군산, 우포, 다경포, 법성포, 검모포, 군산포, 지도8보를 위도에 속하게 하였다. 이는 전라우수영의 관할구역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위도에 진을 두어 옛날의 …

죽막동제사유적

    언젠가 부안을 찾은 풍수대가 한 분이 변산을 한 바퀴 삥 둘러 보고는 이렇게 얘기했다. ‘변산반도는 호랑이 자지고만, 그런데 까지지는 않았어…’. 변산반도가 서해에 불쑥 돌출돼 있다는 얘기다. 지도를 펴놓고 들여다보면 금방 수긍이 가는 얘기다. 그런데 수성당이 있는 적벽강 용두암(사자바위)은 그 돌출된 변산반도에서 다시 한번 서해 깊숙이 돌출되어 있다. 예사롭지 않은 지형이다. 원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바다에 제사를 지내왔던 곳 지리적으로 봤을 때, 이곳 수성당이 위치한 지점은 선사시대 이래로 중국이나 북방의 문화가 한반도 남부로 전파되던 해로상의 중요 지점이었으리라 여겨진다. 항해술이 발달되지 …

동진나루 이야기

  예전에 부안에 들어오자면 지금의 동진대교가 있는 동진나루, 백산의 군포나루, 고부천의 나루들을 건너야 했다. 이 나룻터에는 뱃사공이 나룻배와 더불어 연중 대기하고 있다가 길손들을 건네주는 일을 해왔다. 그들은 세습하여 뱃사공 노릇을 하였는데 정기적, 항시적으로 이용하는 주민들이 거두어 주는 뱃새경과 외지인들에게서 받는 선임(船賃)으로 생활을 유지했다. 뱃새경은 이용하는 횟수에 관계없이 근처 주민들은 한 가구당 1년에 보리 1말, 또는 5되씩 2회에 걸쳐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특례가 있어 지방의 관원이나 양반에게는 뱃새경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관원이나 양반들을 일일이 다 못 알아보아 시비가 생기는가 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