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화도(界火島) 봉수대

 

 

계화도(界火島)는 1977년에 완공된 계화도간척공사로 바다 속의 외딴 섬이 육지로 되어 지금은 섬이 아니며, 1983년 이전까지는 부안군 행안면(幸安面)에 속해있었던 섬이었다. 바다를 막아 육지가 된 이후 행안면에서 분리되어 계화출장소로 잠시 있다가 1983년 면으로 승격되면서 계화도와 간척지 너른 땅이 중심이 되어 계화면(界火面)이라는 새로운 면이 탄생되었으며 그 행정치소는 창북리(昌北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계화도봉수대는 남으로는 점방산(占方山)봉수대에 응하고 북으로는 만경현(萬頃縣)의 길곶이(吉串)봉수대에 응한다 하였다. <占方山北准界件伊 界件伊北准萬頃吉串> 세종당시 계화도 계화리를 계건이(界件伊)라 하였던 것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같은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다. <界火島烽燧 北應萬頃縣吉串 南應占方山>

계화도봉수대는 해발 246m의 계화산의 정상에 있으며, 정확하게는 동경 126°38′, 북위 35°37′에 위치하고 있다. 계화봉의 정상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연대(煙臺)를 축조하였었는데 무너지고 망가진 상당부분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허여 놓았다. 원래 직경 3m쯤, 높이 3m쯤 인데 연대를 중심으로 1m쯤 석축의 돌담이 둘러쳐져 있었다. 이는 봉수대를 방위하기 위한 방호벽으로 추정된다. 계화도봉수대는 부안의 치소로부터 10㎞쯤 상거한 섬에 설치된 봉수대다. 이 일대 연안은 예로부터 외적의 침입이 잦았던 곳인 듯하다. 계화면과 동진면(東津面)의 북부일대에는 구지산토성(九芝山土城), 염창산토성(塩倉山土城), 반곡리성(盤谷里城), 당후리성(堂後里城), 수문산성(修文山城), 역리산성(驛里山城) 등의 토성지(土城址)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였었던 것 같으며, 그래서인지 계화봉수대에는 특별히 봉수대를 방호하는 방호벽을 쌓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중심이 되는 중요한 봉수대에는 방호벽을 쌓았던 것 같다. 적군이 내습하여오면 맨 먼저 통신시설인 봉수대를 습격하기도 하고 또 산중일 경우 밤중에 맹수의 습격을 받아 봉수군이 희생당하는 경우도 가끔씩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正祖) 14년(1790)에 간행된 <호남읍지(湖南邑誌)> 부안현의 봉수 조에 의하면 봉수군(烽燧軍)의 수가 157명으로 나타나 있는데 봉수별장(烽燧別將) 6인, 봉수오장(烽燧伍長) 37인, 봉군(烽軍) 38인, 봉군보(烽軍保) 76인이다. 이들은 모두 군인의 신분으로 막중한 국방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더할 수 없는 열악한 조건과 형편없는 처우 속에서 근무 하였었다.

계화(界火: 개불이)라는 땅이름은 부안(扶安)이라는 땅이름의 뿌리요 근원이다. 부안은 백제(百濟) 때에는 개화현(皆火縣)이었다. 이 개화(皆火)는 지금 계화(界火)의 뿌리며 조상이다. 이 개화(皆火)가 한때 계발(戒發)이었다가 통일신라 때 불령(扶寧)이라 하였는데 이 불령, 부령에는 개불이, 또는 벌(伐), 불의 어근(語根)이 이어져서 불(扶)로 남아 있으므로 계화(界火)는 옛 땅이름 皆火, 戒發, 扶寧, 扶安으로 바뀐 변천사의 화석(化石)으로 남아있는 땅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순수한 우리 땅이름에 또 하나의 땅이름이 파생하였다. 1912년 조선조말의 마지막 대유학자(大儒學者)며 철저한 반일사상가(反日思想家)이기도 한 전우(田愚: 호 간재(艮齋))가 나라가 망하자 옛날 중국 제(齊)나라 노중련(魯仲連)의 도해지의(蹈海之義)를 본받아 서해의 섬들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으로 계화도에 은거하며 1천5백여 제자를 가르치면서 섬의 이름을 계화도(繼華島: 華島)라 하니 그 제자들이 모두 그렇게 쓰기 시작하였다. 계화(繼華)라 함은 중국의 문화(華)를 계승한다는 뜻이다. 간재선생은 1922년 서거할 때까지 계화도 양지마을에 은거하면서 이 땅에 유학(儒學)의 마지막 큰 맥을 형성하였으며 양지마을에는 그를 추모하여 제향하는 사당 계양사(繼陽祠)가 있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김형주


김형주
는 1931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전북대학교를 나와 부안여중, 부안여고에서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안향토문화연구회와 향토문화대학원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향토문화와 민속’,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부안의 땅이름 연구’, ‘부풍율회 50년사’, ‘김형주의 부안이야기’, ‘부안지방 구전민요-민초들의 옛노래’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전북지역 당산의 지역적 특성’, ‘부안읍 성안 솟대당산의 다중구조성과 제의놀이’, ‘이매창의 생애와 문학’, ‘부안지역 당산제의 현황과 제의놀이의 특성’ 외 다수가 있다. 그밖에 전북의 ‘전설지’, ‘문화재지’, 변산의 얼‘, ’부안군지‘, ’부안문화유산 자료집‘ 등을 집필했다.

(글쓴날 : 200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