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도진(蝟島鎭)

 

▲위도 관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1호(1982. 8. 30 지정, 목재, 조선시대).ⓒ2003부안21

위도는 부안군에서 가장 큰 섬으로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위도면 진리에 수군진(鎭)이 있었다. 진리(鎭里), 혹은 진말은 여기서 유래된 마을 이름이다.

「문헌비고」해방조(海防條)에 “위도 재서 150리 지안 50리 주35리 숙종 8년(1682) 설첨사진(蝟島 在西百五十里支岸五十里 周三十五里 肅宗八年 設僉使鎭)” 이라 기록되어 있다. 또 「문헌비고」 병고주사조(兵考舟師條)에 “肅宗九年 設水軍鎭營於蝟島 加里浦 次臨溜 古群山 右浦 多慶浦 法聖浦 黔毛浦 群山浦 知島八堡 屬蝟島”라 하였는데 내용은 숙종 9년(1689)에 위도에 수군진영을 설치하고 가리포, 차임류, 고군산, 우포, 다경포, 법성포, 검모포, 군산포, 지도8보를 위도에 속하게 하였다. 이는 전라우수영의 관할구역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위도에 진을 두어 옛날의 도만호(都萬戶)처럼 첨사와 만호진을 관할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蝟島鎭 僉使 軍官 13 鎭吏 15 知印 8 使令 10 軍牢 7 右水營屬’이라 하여 그 정원을 밝히고 있는데 종3품의 첨사 아래에 53명의 인원이 배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진영(진영)에 비해 그 규모가 컸으며, 맡은 바 임무 또한 막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도면 진리 전경과 위도지도(1870년), 규장각 본ⓒ2003부안21

/참고문헌 : 부안군지, 전라북도문화재지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3년 0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