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의 도적떼 이야기

  허생전(許生傳)과 변산도적떼 「대동지지」는 변산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변산-혹은 능가산(楞伽山) 또는 영주산(瀛州山)이라고 한다. 동서남북이 수백 리요, 3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웅장하고 넓고 크며, 천봉만학(千峰萬壑)이 멀리 굽이돌아 땅이 깊숙하고 그윽하다. 겹겹의 바위, 봉우리, 긴긴 골짜기, 가파른 낭떠러지마다 모두 헌칠하게 큰 소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으니, 고려 때부터 지금까지 궁실과 배의 재목이 여기서 나왔다. 산중에는 좋은 논밭과 기름진 땅이 많고, 산 밖에는 어부와 염호가 많다. 서쪽으로 군산을 마주 보는데 위도에서 순풍을 만나 곧바로 배를 타고 가면 중국에 이른다.…” 변산은 이렇게 첩첩하고, …

봄을 알리는 숲속의 요정 ‘노루귀’

  노루 귀를 닮은 ‘노루귀’ 복수초, 변산바람꽃 생태기행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노루귀가 앞 다투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꽃의 직경이 1.5cm~2cm 정도로 복수초, 변산바람꽃에 비해 훨씬 작은데다 지천으로 피기 때문에 자칫 발에 밟히기 쉽다. 그러나 작다고 볼품마저 없으랴. 몸집은 작지만 귀엽고, 깜직 발랄한 소녀를 보는 듯 아주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게 숲속의 요정 같은 꽃이다. 접사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노라면 그 어여쁜 자태에 더욱 흠뻑 빠지게 된다. 꽃 색깔도 다양하다. 순백의 하얀색, 연한 분홍색, 분홍색, 자주색 등을 보인다. 다른 지역의 노루귀는 보라색도 있는 것을 …

“봄바람이 내변산 치맛자락을 들춰봅니다”

  부안에서 보내는 봄 편지 흙이 부드러워져 농부의 손길이 바빠집니다. 부안땅 여기 저기 파릇한 보리가 동진강가 나문재 일으키는 바람처럼 싱그럽습니다. 수성당 동백이 햇살을 덥힙니다. 햇살보다 마음이 먼저 길 따라 나섰습니다. 해창 앞바다 봄바람이 내변산 치맛자락을 들춰봅니다. 속살 부끄러이 의상봉 진달래가 수줍어 얼굴 붉힙니다. 들은 산에게 산은 바다에게 바다는 다시 들에게 들은 사람들에게 그리운 편지를 씁니다. /이용범 이상난동으로 변산 봄소식을 다른 해보다 열흘 정도 일찍 띄우게 되었다. 버들개지는 이미 2월 초순경에 눈을 떴고, 복수초도 꽃을 피웠을 터이지만 찾아보지는 않았다. 위의 시는 …

생활 속에서 꽃피운 해양문화의 번성지

  부안문화의 특징 고려 때의 대 문장가 문순공(文順公)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서기 1200년 초에 궁재(宮材: 궁중에서 쓰일 목재)의 벌목 감독관으로 변산(邊山)에 와있으면서 변산은 물론이요 보안, 부령 (당시 지금의 부안은 保安縣과 扶寧縣 두 고을로 나뉘어져 있었다.) 두 고을을 두루 편력하며 그 아름다운 풍광에 놀라 찬탄하고 순후한 습속에 젖은 감회를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시문으로 남겼다. 이때 그는 부안지방의 역사와 생활습속을 총평한 한 수의 시도 남겼는데 이러하다. 습속(習俗)은 단자족(蛋子族)과 비슷한데 고을 역사는 잠총국과 같음을 뉘라서 믿으랴 習俗例多如蛋子 縣封誰信自 叢 이는 ‘생활의 습속(문화)은 옛 중국 남방의 해변 …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의 시세계]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일제 때 양심지킨 시인, 해방 후 치열한 저항의식 표현한 작품 남겨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辛夕汀:1907~1974).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목가시인’ 또는 ‘전원시인’이라는 수사가 붙어다닌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원초적 내면의 향수를 자극하는 시어들을 찾아 일생을 향토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석정은 간재 전우의 제자로 한학자였던 부친 신기온(辛基溫)의 3남2녀 중 차남으로 부안읍 동중리 ‘노휴재’ 뒤편의 본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때부터 그의 집안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안읍에서 한약방을 해오고 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석정(錫正)이었다. 그가 태어난 날이 …

원불교 새회상의 산실 변산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은 변산 사자동 봉래정사로 들어와 약 4년 동안을 머물면서 장차 펼 새 회상의 교리를 정리하고 제도 등을 연구하였으며 교전의 일부를 직접 집필하였다. 내변산 사자동 일대의 제법성지가 바로 원불교 새회상의 산실인 것이다. 구도의 길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小太山) 박중빈(朴重彬. 사진)은 1891년 3월 27일(음력)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영촌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4남 1녀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의 이름은 진섭(鎭燮)이었고 원불교를 창립한 후 제자들이 높여 받들어 부르는 존칭은 소태산 대종사(大宗師)이다. 그가 탄생한 시기는 5백년 왕조가 무너져 가고 외세의 …

얼음 속에 피는 꽃 ‘얼음새꽃’

  ‘복수초’가 전하는 변산 봄소식 입춘을 며칠 앞 둔 요즈음 전국에 눈이 내리고 기습 한파로 대지가 꽁꽁 얼어붙었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곧 봄전령이 전해 올 변산 꽃소식에 마음이 설렌다. 이 엄동설한에 꽃소식이라니…, 복수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25cm 이내로 산지 숲 속 그늘에 자란다. 원줄기에는 털이 없으나 윗부분에는 약간의 털이 있다. 잎은 마주난다. 꽃은 노란색으로 두상화서를 이루고 꽃받침은 흑록색으로 여러 개이며, 꽃잎은 20~30개로 꽃받침 보다 길고 수평으로 퍼진다. 수술은 여러 개이고 열매는 꽃턱에 모여 달려서 전체가 둥글게 …

새가 된 꽃, 박주가리

  날개 달린 씨앗-박주가리 새가 된 꽃, 박주가리 어떤 이가 새가 된 꽃이라며, 새가 아닌 박주가리 꽃씨를 가져다주었다 귀한 선물이라 두 손으로 받아 계란 껍질보다 두꺼운 껍질을 조심히 열어젖혔다 놀라웠다 나도 몰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새가 아닌 박주가리 꽃의 새가 되고 싶은 꿈이 고이 포개어져 있었다 그건 문자 그대로, 꿈이었다 바람이 휙 불면 날아가 버릴 꿈의 씨앗이 깃털의 가벼움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꿈이 아닌, 꿈의 씨앗도 아닌 박주가리의 생(生), 어떤 생이 저보다 가벼울 수 있을까 어느 별의 토기에 새겨진 환한 빛살무늬의 …

정유재란 격전지 부안-유서깊은 싸움터 유정자 고개

  부안에 정유재란 때 부안사람들이 왜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격전지가 있다. 호벌치(胡伐峙) 전적지(지방문화재 제 30호)가 바로 그곳이다. 조총이란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왜군을 상대로 1개월 간을 끌며 밀고 밀리는 혈전을 치렀다는 것은 이 지방 사람들의 기개를 한껏 드높이는 일이었다. 유서깊은 싸움터 유정자 고개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 입구에서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약 4km쯤 가면 해발 50여미터의 나즈막한 고개가 나온다. 유정자 고개라고 부르는 이 고개는 높이로는 대단하지 않지만 지형적으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 곳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유명하다. 그 까닭은 이 고개의 남북 양 …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겠다”

  부안에서 지킨 조선 유학의 마지막 절개 공자(孔子)는 춘추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겠다.(道不行 乘 浮于於海:<논어>, 공야장편)” 라고 말하였다. 한말의 격동기에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하는 참담한 좌절 속에서 공자의 이러한 말을 좇아 서해 절해의 고도 왕등도로 들어갔다가 부안의 계화도에서 일생을 마친 도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한말의 거유(巨儒), 간재(艮齋) 전우(田愚)이다. 전우(田愚)는 1841년(헌종7) 8월 13일 지금의 전주시 다가동에서 아버님 담양(潭陽) 전씨 청천공(聽天公) 재성(在聖)과 어머님 남원 양(梁)씨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청천은 충청도 홍주에서 살다가 전주에 이르러 그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