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향교 석전제

    9일 오전 10시, 부안향교에서는 성현에 대한 제가 올려졌다. 부안향교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첫”丁”일에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이를 석전제(釋奠祭)라고 한다. 내일(3월 20일)이 바로 음력 2월 첫 “丁”일(丁亥)로 釋奠祭일이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93호 부안향교의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다. 태종 14년(1414)에 세워졌다고 하나 고증할만한 문헌은 없다. 지금의 대성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적에 의하여 불타 없어지고, 선조 33년(1600)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부안군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 당시 인물인 진사 화곡(火谷) 김명(金銘)이 지은 상량문이 전해지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이 3칸이며 측면이 …

칠산바다 조구야 조구야

  부안의 역사문화 기행-위도띠뱃굿 닻케라(예) 노저라(예) 돛 달어라(예) 돈 벌러 가세 돈 벌러 가세 칠산바다로 돈 벌러 가세 칠산바다 들어오는 조기 우리배 마장에 다 떠 실었단다 우리배 사공님 신수 좋아 오만칠천냥 단물에 벌었네 뱀제네 마누라 술동이 이고 발판머리서 춤을 춘다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정든님 생각이 절로 난다 노자 노자 젋어 노자 늙고 병들면 못노나니 그드럼 거리고 놀아나 보자 어기여차 닻 둘러 매고 연평바다로 돈벌러 가잔다 돈 실러가자 돈 실러가자 연평바다로 돈 실러가자 오동추야 달밝은 밤에 아남팟 네물에 불꼬리 떳다 …

유서깊은 싸움터 유정자 고개

  부안 역사문화 기행 호벌치(胡伐峙) 전적지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 입구에서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약 4km쯤 가면 해발 50여미터의 나즈막한 고개가 나온다. 유정자 고개라고 부르는 이 고개는 높이로는 대단하지 않지만 지형적으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 곳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유명하다. 그 까닭은 이 고개의 남북 양 밑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이곳만 점령하면 변산은 외부와 완전히 연락이 끊기고 고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한(卞韓)과 마한(馬韓)이 이곳을 방어선으로 설정하여 싸움을 벌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도 왜병과 우리 의병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던 곳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6·25 사변 때 …

변산에서 무르익은 원효의 화쟁사상

  21세기를 이끌어갈 대안 원효의 화쟁사상 우리는 우리 원래의 종교 선교(仙敎)에 바탕하여 불교·유교·기독교 등 숱한 종교를 받아들였다. 이중에서 불교는 삼국시대에 들어와 주로 귀족 중심의 통치자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불교를 일반국민에까지 퍼뜨린 으뜸가는 인물은 바로 원효대사(元曉)다. 그는 종교로서의 불교만이 아니라 국민을 가르치고 바르게 살게 하기 위한 정신세계의 도구로 삼아 전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을 전후한 격변기를 살았던 원효는 종파와 경전을 가지지 않고 모든 분야에 손을 댔다. 그리고 어느 한 학설을 고집하지 않았고 또 버리지도 않았다. 모든 학설을 나름대로 다루면서 개개의 다른 …

을사오적 이완용과 부안

  자를 경덕(敬德), 호를 일당(一堂)이라 한 을사오적 가운데 한 명인 이완용은 변산과 인연이 깊다. 그와 변산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의 이력을 더듬어 보자. 그는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에서 우봉(牛峰) 이씨 호석(鎬奭)과 신씨(辛氏) 사이에서 태어나서 열 살 때부터 판중추부사 호준(鎬俊)의 양자가 되었고, 1870년에 양주 조씨 병익(秉翼)의 딸과 결혼했으며, 1882년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했다. 이후 규장각 대교 검교, 홍문관 수찬, 동학교수, 우영군사마, 해방영군사마 등을 거쳐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웠고, 사헌부 장령, 홍문관 응교 등을 거쳐 1887년에 주차미국참찬관(駐箚美國參贊官)이 되어 미국에 갔다가 이듬해 5월에 귀국하여 …

부안의 애국지사 운암 이승호 선생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부안동초등학교 교정에는 애국지사 운암 이승호 선생의 송덕비가 서 있다. 2004년 5월 28일 부안동초등학교가 부안읍 봉덕리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하면서 선생의 숭고한 교육정신과 투철한 애국애족정신을 다시 새기고, 그 덕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부안동초등학교 총동창회와 부안동초등학교 운영위원회가 송덕비를 세운 것이다. 아래에 운암 이승호 선생 송덕비 건립문과 이승호 선생 연보 전문을 옮긴다. 건립문 운암 이승호 선생은 1890년 8월 15일 부안읍 선은동에서 전주이씨 양녕대군 15대손 통훈대부행중추원의관 휘 락선과 숙인 밀양박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총명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나라의 장래에 대해 염려하는 …

미륵불교의 발원지 변산

  진표율사, 변산 부사의방장에서 망신참법의 수행으로 미륵불 친견 통일 신라 경덕왕(765~780) 때의 고승 진표율사(眞表律師:? ~ ?)는 변산 부사의방장에서 득도하여 미륵불과 지장보살을 친견한 후 많은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하였으며 미륵불의 강림을 예언하고 많은 기행 이적을 남겼다. 또한 통일신라의 오교구산(五敎九山) 가운데 구산의 하나인 모악산에서 법상종(法相宗)을 열어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하였다. 그의 출가 동기는 매우 독특하다. 11세 되던 해에 동네 아이들과 산에 놀러가다가 개구리를 잡아 꿰미에 꿰어 물 속에 담가두고는 노는 데 정신이 팔려 그만 잊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다시 그 자리에 가서 보니 지난 …

변산의 도적떼 이야기

  허생전(許生傳)과 변산도적떼 「대동지지」는 변산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변산-혹은 능가산(楞伽山) 또는 영주산(瀛州山)이라고 한다. 동서남북이 수백 리요, 3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웅장하고 넓고 크며, 천봉만학(千峰萬壑)이 멀리 굽이돌아 땅이 깊숙하고 그윽하다. 겹겹의 바위, 봉우리, 긴긴 골짜기, 가파른 낭떠러지마다 모두 헌칠하게 큰 소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으니, 고려 때부터 지금까지 궁실과 배의 재목이 여기서 나왔다. 산중에는 좋은 논밭과 기름진 땅이 많고, 산 밖에는 어부와 염호가 많다. 서쪽으로 군산을 마주 보는데 위도에서 순풍을 만나 곧바로 배를 타고 가면 중국에 이른다.…” 변산은 이렇게 첩첩하고, …

생활 속에서 꽃피운 해양문화의 번성지

  부안문화의 특징 고려 때의 대 문장가 문순공(文順公)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서기 1200년 초에 궁재(宮材: 궁중에서 쓰일 목재)의 벌목 감독관으로 변산(邊山)에 와있으면서 변산은 물론이요 보안, 부령 (당시 지금의 부안은 保安縣과 扶寧縣 두 고을로 나뉘어져 있었다.) 두 고을을 두루 편력하며 그 아름다운 풍광에 놀라 찬탄하고 순후한 습속에 젖은 감회를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시문으로 남겼다. 이때 그는 부안지방의 역사와 생활습속을 총평한 한 수의 시도 남겼는데 이러하다. 습속(習俗)은 단자족(蛋子族)과 비슷한데 고을 역사는 잠총국과 같음을 뉘라서 믿으랴 習俗例多如蛋子 縣封誰信自 叢 이는 ‘생활의 습속(문화)은 옛 중국 남방의 해변 …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의 시세계]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일제 때 양심지킨 시인, 해방 후 치열한 저항의식 표현한 작품 남겨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辛夕汀:1907~1974).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목가시인’ 또는 ‘전원시인’이라는 수사가 붙어다닌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원초적 내면의 향수를 자극하는 시어들을 찾아 일생을 향토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석정은 간재 전우의 제자로 한학자였던 부친 신기온(辛基溫)의 3남2녀 중 차남으로 부안읍 동중리 ‘노휴재’ 뒤편의 본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때부터 그의 집안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안읍에서 한약방을 해오고 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석정(錫正)이었다. 그가 태어난 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