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못 설화 담긴 ‘선돌‘-보안입석

  보안면 상입석리(윗 선돌) 마을 뒤의 언덕에는 사방 한 칸 정도의 우진각 지붕의 비각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비각이 아니라 선돌 보호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선돌은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6호 ‘보안입석’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그래서 마을이름도 선돌(立石)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선돌은 높이가 2.6m, 가로 75㎝에 두께 59㎝로 매우 육중하다. 약간 비스듬히 자른 듯 해 보이며, 윗부분이 약간 넓다. 앞면에는 불상형태의 무속탱화가 음각되어 있는데 조각한 수법으로 보아 근래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선돌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사시대에 부족간의 …

비전향장기수 허영철 일대기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9월 28일, 남대문에 미 탱크가 들어와서 육탄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돌았다. 퇴각한 미군이 다시 상륙해서 서울을 향해 진격해 온다는 정보도 받았고, 중앙청에 태극기가 올라갔다는 소식도 들었다. 지도부에서는 이제 그만 서울을 빠져나와 의정부까지 나오라고 한다. 시내 건물들은 적막하리만큼 고요하고 달빛에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그 뒤에 몸을 숨기면서 서울 거리를 빠져나갔다. 나는 그때 달이 휘영청 밝았던 밤. 서울을 빠져나오던 비감한 심정을 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수도가 수십 년간 일본의 통치를 받다가 이제 겨우 해방이 되었는데, 일제 대신 미국에 점령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비통하기 그지없었다.” …

부안향교 석전제

    9일 오전 10시, 부안향교에서는 성현에 대한 제가 올려졌다. 부안향교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첫”丁”일에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이를 석전제(釋奠祭)라고 한다. 내일(3월 20일)이 바로 음력 2월 첫 “丁”일(丁亥)로 釋奠祭일이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93호 부안향교의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다. 태종 14년(1414)에 세워졌다고 하나 고증할만한 문헌은 없다. 지금의 대성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적에 의하여 불타 없어지고, 선조 33년(1600)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부안군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 당시 인물인 진사 화곡(火谷) 김명(金銘)이 지은 상량문이 전해지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이 3칸이며 측면이 …

칠산바다 조구야 조구야

  부안의 역사문화 기행-위도띠뱃굿 닻케라(예) 노저라(예) 돛 달어라(예) 돈 벌러 가세 돈 벌러 가세 칠산바다로 돈 벌러 가세 칠산바다 들어오는 조기 우리배 마장에 다 떠 실었단다 우리배 사공님 신수 좋아 오만칠천냥 단물에 벌었네 뱀제네 마누라 술동이 이고 발판머리서 춤을 춘다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정든님 생각이 절로 난다 노자 노자 젋어 노자 늙고 병들면 못노나니 그드럼 거리고 놀아나 보자 어기여차 닻 둘러 매고 연평바다로 돈벌러 가잔다 돈 실러가자 돈 실러가자 연평바다로 돈 실러가자 오동추야 달밝은 밤에 아남팟 네물에 불꼬리 떳다 …

유서깊은 싸움터 유정자 고개

  부안 역사문화 기행 호벌치(胡伐峙) 전적지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 입구에서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약 4km쯤 가면 해발 50여미터의 나즈막한 고개가 나온다. 유정자 고개라고 부르는 이 고개는 높이로는 대단하지 않지만 지형적으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 곳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유명하다. 그 까닭은 이 고개의 남북 양 밑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이곳만 점령하면 변산은 외부와 완전히 연락이 끊기고 고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한(卞韓)과 마한(馬韓)이 이곳을 방어선으로 설정하여 싸움을 벌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도 왜병과 우리 의병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던 곳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6·25 사변 때 …

변산에서 무르익은 원효의 화쟁사상

  21세기를 이끌어갈 대안 원효의 화쟁사상 우리는 우리 원래의 종교 선교(仙敎)에 바탕하여 불교·유교·기독교 등 숱한 종교를 받아들였다. 이중에서 불교는 삼국시대에 들어와 주로 귀족 중심의 통치자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불교를 일반국민에까지 퍼뜨린 으뜸가는 인물은 바로 원효대사(元曉)다. 그는 종교로서의 불교만이 아니라 국민을 가르치고 바르게 살게 하기 위한 정신세계의 도구로 삼아 전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을 전후한 격변기를 살았던 원효는 종파와 경전을 가지지 않고 모든 분야에 손을 댔다. 그리고 어느 한 학설을 고집하지 않았고 또 버리지도 않았다. 모든 학설을 나름대로 다루면서 개개의 다른 …

을사오적 이완용과 부안

  자를 경덕(敬德), 호를 일당(一堂)이라 한 을사오적 가운데 한 명인 이완용은 변산과 인연이 깊다. 그와 변산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의 이력을 더듬어 보자. 그는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에서 우봉(牛峰) 이씨 호석(鎬奭)과 신씨(辛氏) 사이에서 태어나서 열 살 때부터 판중추부사 호준(鎬俊)의 양자가 되었고, 1870년에 양주 조씨 병익(秉翼)의 딸과 결혼했으며, 1882년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했다. 이후 규장각 대교 검교, 홍문관 수찬, 동학교수, 우영군사마, 해방영군사마 등을 거쳐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웠고, 사헌부 장령, 홍문관 응교 등을 거쳐 1887년에 주차미국참찬관(駐箚美國參贊官)이 되어 미국에 갔다가 이듬해 5월에 귀국하여 …

부안의 애국지사 운암 이승호 선생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부안동초등학교 교정에는 애국지사 운암 이승호 선생의 송덕비가 서 있다. 2004년 5월 28일 부안동초등학교가 부안읍 봉덕리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하면서 선생의 숭고한 교육정신과 투철한 애국애족정신을 다시 새기고, 그 덕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부안동초등학교 총동창회와 부안동초등학교 운영위원회가 송덕비를 세운 것이다. 아래에 운암 이승호 선생 송덕비 건립문과 이승호 선생 연보 전문을 옮긴다. 건립문 운암 이승호 선생은 1890년 8월 15일 부안읍 선은동에서 전주이씨 양녕대군 15대손 통훈대부행중추원의관 휘 락선과 숙인 밀양박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총명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나라의 장래에 대해 염려하는 …

미륵불교의 발원지 변산

  진표율사, 변산 부사의방장에서 망신참법의 수행으로 미륵불 친견 통일 신라 경덕왕(765~780) 때의 고승 진표율사(眞表律師:? ~ ?)는 변산 부사의방장에서 득도하여 미륵불과 지장보살을 친견한 후 많은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하였으며 미륵불의 강림을 예언하고 많은 기행 이적을 남겼다. 또한 통일신라의 오교구산(五敎九山) 가운데 구산의 하나인 모악산에서 법상종(法相宗)을 열어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하였다. 그의 출가 동기는 매우 독특하다. 11세 되던 해에 동네 아이들과 산에 놀러가다가 개구리를 잡아 꿰미에 꿰어 물 속에 담가두고는 노는 데 정신이 팔려 그만 잊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다시 그 자리에 가서 보니 지난 …

변산의 도적떼 이야기

  허생전(許生傳)과 변산도적떼 「대동지지」는 변산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변산-혹은 능가산(楞伽山) 또는 영주산(瀛州山)이라고 한다. 동서남북이 수백 리요, 3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웅장하고 넓고 크며, 천봉만학(千峰萬壑)이 멀리 굽이돌아 땅이 깊숙하고 그윽하다. 겹겹의 바위, 봉우리, 긴긴 골짜기, 가파른 낭떠러지마다 모두 헌칠하게 큰 소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으니, 고려 때부터 지금까지 궁실과 배의 재목이 여기서 나왔다. 산중에는 좋은 논밭과 기름진 땅이 많고, 산 밖에는 어부와 염호가 많다. 서쪽으로 군산을 마주 보는데 위도에서 순풍을 만나 곧바로 배를 타고 가면 중국에 이른다.…” 변산은 이렇게 첩첩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