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면 상입석리(윗 선돌) 마을 뒤의 언덕에는 사방 한 칸 정도의 우진각 지붕의 비각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비각이 아니라 선돌 보호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선돌은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6호 ‘보안입석’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그래서 마을이름도 선돌(立石)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선돌은 높이가 2.6m, 가로 75㎝에 두께 59㎝로 매우 육중하다. 약간 비스듬히 자른 듯 해 보이며, 윗부분이 약간 넓다. 앞면에는 불상형태의 무속탱화가 음각되어 있는데 조각한 수법으로 보아 근래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선돌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사시대에 부족간의 경계표식일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런가하면 이 선돌에도 부덕한 부자(富者)를 도승이 응징했다는 ‘장자못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지역 여인들의 아들바람과 재앙퇴치, 소원 등을 비는 무속신앙의 신체기능을 하고 있으며, 음력 2월 초하루 날 마을의 부녀들이 모여 공동으로 당제를 지내주고 있다.
장자못 설화 담긴 보안입석
“먼 옛날 율지마을(현 줄포면 신흥리 율지)에 욕심 많고 심보가 고약한 부자 영감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이 찾아와 염불을 외며 시주하기를 간청했으나 부자 영감은 몰래 두엄을 퍼다 스님의 바랑 속에 넣어 주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고맙다고 나무관세음보살을 외며 돌아서는 스님의 뒷모습을 본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쌀 한 되를 몰래 퍼서 스님을 뒤쫒아가 시아버지의 잘못을 대신 빌었다.
이에 스님은 곧 이곳이 물바다가 될 것인 즉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도 말고 따라만 오라고 하였다. 며느리는 부랴부랴 아기를 업고 스님을 따라 나섰다. 십리쯤 따라 가던 며느리는 집이 궁금하여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니 그 순간 천둥 번개가 치며 가족이 남아 있는 집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어 방죽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한참 만에 정신을 되찾은 며느리가 중얼거리며 하는 말이 “아까운 것이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베짤 때 두르는 허리띠가 제일 아깝네.”
이 소리를 들은 스님은 ‘이 여자도 사람의 생명보다 물질을 더 중하게 여기는구나’ 라 여기고 그 자리에서 며느리를 돌로 변하게 하였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아이도 같이 돌로 변한 것이 지금의 선돌로 변하였고 뒤따라오던 개도 돌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선돌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개바위’가 엎드려 있었으나 지금은 없고 동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부자가 살던 집터에는 방죽이 있어 이곳을 ‘장자못’이라고 부르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이 선돌에 영험이 있다 하여 아이 못낳는 여인들의 소원을 비는 굿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는 며느리의 등에 업혀 있던 아이의 영험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뒤로 이를 시샘하는 이웃 마을에서 몰래 등에 업힌 아기를 떼어가는 일이 발생하였고, 그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다.”/자료제공:재경보안면향우회
/부안21(2006·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