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의 역사문화 기행-위도띠뱃굿
닻케라(예) 노저라(예) 돛 달어라(예)
돈 벌러 가세 돈 벌러 가세 칠산바다로 돈 벌러 가세
칠산바다 들어오는 조기 우리배 마장에 다 떠 실었단다
우리배 사공님 신수 좋아 오만칠천냥 단물에 벌었네
뱀제네 마누라 술동이 이고 발판머리서 춤을 춘다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정든님 생각이 절로 난다
노자 노자 젋어 노자 늙고 병들면 못노나니
그드럼 거리고 놀아나 보자
어기여차 닻 둘러 매고 연평바다로 돈벌러 가잔다
돈 실러가자 돈 실러가자 연평바다로 돈 실러가자
오동추야 달밝은 밤에 아남팟 네물에 불꼬리 떳다
칠산바다는 잔조기요 연평바다는 큰 조기란단다
구월산에 둘러싼 조기 서울 장안에 금빛이란단다
연평바다 깔린조기 우리배 사공님 애 태운다네
세월아 봄철아 가지마라 아까운 청춘이 다 늙는다
청춘은 가고 늙어만지니 이네 박발이 무정허고나
잘허는 동무는 상금주고 못허는 동무는 벌을 준다
입하소망에 날 못잡고 날싼 사공아 내꼬리 잡어라
우리배 뱀재님 재수좋아 오만칠천양 단물에 벌었네
우리배 사공 뱀재님네 술집마당에 농창그린단다
이물대 꼬작에 봉죽기 달고 허리대 꼬작에 장아발 띠었단다
옥동도화는 만사춘허니 가지가지가 봄 빛이란단다
위 노래는 조기떼가 칠산바다로 몰려들던 시절 위도 어민들이 만선의 깃발을 나부끼며 신명나게 부르던 배치기노래이다.
풍어를 꿈꾸며…
위도는 격포로부터 70여리, 여객선으로 40여분 거리 서해에 외로이 떠 있는 섬이다. 동국여지승람 34권 부안현의 산천조에 「在縣西海中, 周三十里 有魚梁」이라 기록되어 있다. 옛날부터 부안에 속한 섬이었음을 알 수 있고, 고기를 잡는 일이 생업이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 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위도면의 대리에서는 옛날부터 정월 초사흗날 마을의 안택과 풍어를 빌고 마을의 재액을 바다에 띄워 보내는 마을의 共同祭를 성대하게 지내오고 있다.
祭儀의 순서는 원당제, 주산돌기, 용왕제와 띠배에 액을 띄워 보내기의 순으로 진행되는데, 육지에서 정초에 지내는 당산제의 성격과 같으며 이와 같은 액 띄워 보내기의 마을 공동제는 서남해안지방과 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어제의 한 형태이다. ‘위도띠뱃놀이’라는 이름으로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다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元堂祭
원당제는 바닷가 산의 절벽 위에 있는 원당에서 지내는 제를 말하는데, 섣달 20일경부터는 원당의 주위에 금줄을 치고 출산을 앞둔 임산부는 산막으로 옮겨가도록 하며, 사람의 통행을 금지한다.
초사흗날 새벽부터 영기를 든 기잡이를 선두로 무당, 화주, 화장, 선주, 농악 등이 신명나게 굿을 치며 뒤따르고 오방기와 뱃기를 든 기수와 마을사람들이 농악에 맞추어 춤추며 원당에 오른다.
원당에는 칠 위의 신상이 모셔져 있어 마을과 바다를 수호하는 신으로 받들고 있다. 산신상, 원당마누라상, 본당마누라상, 옥저부인상, 아가씨상, 문수장상, 장군서낭상이 그것이다.
원당에 도착하면 오방기는 당집의 동, 서, 남, 북, 중앙에 세우고 화장이 지게에서 제물을 내려 진설을 한다. 오방기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동방청용장군(東方靑龍將軍) – 청색
서방백호장군(西方白虎將軍) – 백색
남방주작장군(南方朱雀將軍) – 적색
북방현무장군(北方玄武將軍) – 흑색
중앙황제장군(中央黃帝將軍) – 황색
제물은 회식밥, 쌀 두 말, 콩 한 말, 돼지고기, 술, 과일, 포이다. 진설이 끝나면 농악이 멈추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화주가 독축을 한다.
독축에 이어 무당의 축수가 끝나면 산신상 앞에서 당굿이 시작된다.
무당의 사설이 계속되는 동안 마을사람들은 차례로 엎디어 저마다의 소원을 축원한다. 이렇게 해서 굿이 끝나면 진설했던 제물을 당 밖으로 내놓고 화주가 “자 한 석이 끝났으니 음복합시다” 하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음복한다.
이때 무당이 선주들에게 산(算)쌀을 집어주어, 짝수가 되면 그해 무병하며 고기도 많이 잡힌다고 해서 흐뭇해 하고 홀수가 된 선주는 의기소침하여 술에 대취한다. 이 쌀의 算占이 끝나면 깃굿을 치는데 무당은 선주의 깃폭을 잡고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며 한바탕 신명나게 논다. 이때 선주들이 성의껏 돈을 제상 위에 놓는다.
主山돌기
원당굿이 끝나면 그 해에 배에 모실 신을 지정하는 깃굿을 하고 농악을 치며 원당에서 내려온 다. 오는 도중에 바다로 돌출한 용바위에 올라 제수로 쓴 음식을 바다에 던져 바다에서 죽은 무주고혼들에게 풀어 먹인다. 이어서 마을 앞 당산나무 아래에 모여 주산돌기를 시작한다. 지금은 당산나무 아래에서의 주산돌기는 생략할 때고 많고, 그대신 이웃 전막마을까지 마을을 돈다. 이는 일종의 지신밟기의 성격으로, 부안읍내요리 돌모산 마을의 당산에서도 볼 수 있다. 주산돌기가 끝나면 마을사람들은 바닷가에 모여 용왕제를 지낸다.
용왕제와 띠배 띄우기
바닷가에서 지내는 용왕제는 무당이 “여러 사람들 바다를 향해 재배!” 하면 마을사람들이 일제히 바다를 향하여 절을 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리고 무당의 사설과 춤이 계속되며 몇 사람은 띠배를 메고 나오며 여인들은 용왕에게 줄 회식밥을 이고 나온다.
마을사람들은 농악굿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띠배를 빙빙 돌며 가래로 회식밥을 용왕에게 주면서 “어낭창 가래질 소리”를 한다. 처음엔 진양조가락으로 “어낭창 가래질이야!”하며 메김소리와 받음소리를 하면서 차차 빠른 동작과 잦은 가락으로 “어낭창 가래야!”를 부른다.
“가래질소리”에 이어 “술배노래”와 춤이 계속되며, 띠배 위에는 재액을 상징하는 허수아비 10개를 만들어 세우고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이라고 쓰여진 마을기를 꽂는다.
“술배소리”가 끝나면 농악과 춤은 계속되면서 띠배를 모선에 연결시킨다.
연결이 끝나고 농악과 선주기가 모선으로 오르면 “배치기노래”를 우렁차게 부르면서 묵은 해의 재액인 허수아비를 가득 실은 띠배를 끌고 모선이 떠난다. 마을사람들이 떠나는 띠배에게, 잘 가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환호성으로 전송하며 멀리 멀리 칠산바다로 끌고 가서 깊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하고 돌아온다.
“술배노래”와 “배치기노래”는 만선이 되어 돌아 올 때 부르는 흥겨운 노래이다.
위도띠뱃굿은 이처럼 큰 공동제로써 마을사람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마을신과 바다의 용왕에게 정성들여 제사하고 공물을 바쳐야만 안태와 풍어가 이루어진다는 전래의 토속신앙이다.
/부안21(2006·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