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海夫人

    홍합하면 포장마차가 생각난다. 추운 겨울 날 포장마차에서 맛보는 뜨끈한 홍합국물은 그렇게 시원하고 담박할 수가 없다. 소주 한 잔 하면서 안주로 홍합 살을 꺼내 먹는 맛도 달고 고소한 게 그만이다. 그런데 이럴 때면 친구들 사이에 농이 오고간다. 여성의 그것을 꼭 닮은 데다 털까지 나있으니 그도 그럴 수밖에…, 옛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본초강목에는 홍합을 일명 동해부인(東海夫人)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서해는 중국에서는 동해가 되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동해에서 나는 부인의 그것과 같이 생긴 것이라 해서 그런 이름을 붙인 듯 하다. …

해방조개를 아시나요?

    ‘뻐글뻐글헌 것이 징그랗게도 많네 그려… 참말로 오져 죽겄네’ 호미로 뻘을 긁어 내려가노라면 주어 담기 바쁘게 연달아 누런 몸뚱이를 드러내는 조개를 보며 아낙들이 좋아라 하는 소리다. 해방조개 얘기다. 해방되던 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아스라이 보릿고개를 넘어야할 판국인데 설상가상으로 부안에 흉년이 들었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갯벌에 조개가 섰던 것이다. 어른들은 그 해 이 조개로 허기를 면했다하여 ‘해방조개’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후로 자취를 감췄던 해방조개가 1960년대 초에 변산반도 마포 하섬 앞에서 변산해수욕장에 이르는 갯벌에 다시 섰다. 어찌나 서식밀도가 높은지 뻘 반 조개 …

조수대(潮水臺)

  좀 생소한 이름이다. 홍콩이나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가보지는 않았지만…)의 수상가옥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갯벌에 원두막(?)을 연상해도 좋고… 뜬금없이 갯벌에 왠 원두막? 하겠지만, 이런 거다. 지금의 계화도는 1960년대 간척사업으로 인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는 섬이었다. 계화도가 섬이었을 때, 어선을 가지고 어장을 하는 어부들이야, 계화도 서남쪽에 있는 돈지포구를 왕래하면 되었지만 맨손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야 한 물때에는 갯벌에 나가 꼬막 잡고 백합 잡고, 또 한 물때에는 그 꼬막, 백합 등을 이고지고 부안까지 걸어 나와 팔아야 했다. 그런데 계화도에서 창북리나 궁안리(대벌)까지 …

저 갯바닥 하나에 의지해서 8남매 키웠어

  2001 10월 18일, 물때가 물때인지라 계화도 양지마을 그 어느 곳에서도 마을사람 만나기는 어려웠다. 한 참을 기웃기웃 마을을 돌자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이복순(78세) 할머니, 할머니를 모시고 마을회관 앞 모정에 자리했다. ‘할머니 살아오신 얘기를 들어보려구요’ ‘뭐 할 얘기나 있나, 그때는 다 그렇게 살었지, 저 앞에 개 막기전(계화도간척)에는 여기는 농토가 있어야지, 산밑으로 깔끄막진 밭들이 쪼금 있기는 했어도 우리는 그것도 없었어’ ‘그럼 어떻게 살았어요?’ ‘뭐 어떻게 살어? 저 갯바닥 하나에 의지해서 살았지, 저 갯바닥이 우리 새끼들 8남매 다 키웠어. 아뜰이 올망졸망 애릴 …

백합은 봅고댕기면서 먹는 것이여

        조개 중의 조개 ‘백합’ “노령산맥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부안에 이르러, 서해 가운데로 쑥 들어간다. 서쪽과 남쪽, 북쪽은 모두 큰 바다다. 산 안에는 많은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산마루, 평평한 땅이나 비스듬한 벼랑을 막론하고 모두 큰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나서 햇빛을 가리고 있다. 골짜기 바깥은 모두 소금 굽고 고기 잡는 사람의 집들이지만, 산중에는 좋고 기름진 밭들이 많다. 주민들이 산에 올라 나무를 하고, 산에서 내려오면 고기잡이와 소금 굽는 것을 업으로 하여,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