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갯바닥 하나에 의지해서 8남매 키웠어

 

이복순(78세) 할머니

2001 10월 18일, 물때가 물때인지라 계화도 양지마을 그 어느 곳에서도
마을사람 만나기는 어려웠다. 한 참을 기웃기웃 마을을 돌자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이복순(78세) 할머니,
할머니를 모시고 마을회관 앞 모정에 자리했다.

‘할머니 살아오신 얘기를 들어보려구요’

‘뭐 할 얘기나 있나, 그때는 다 그렇게 살었지,
저 앞에 개 막기전(계화도간척)에는 여기는 농토가 있어야지,
산밑으로 깔끄막진 밭들이 쪼금 있기는 했어도
우리는 그것도 없었어’

‘그럼 어떻게 살았어요?’

‘뭐 어떻게 살어? 저 갯바닥 하나에 의지해서 살았지,
저 갯바닥이 우리 새끼들 8남매 다 키웠어.
아뜰이 올망졸망 애릴 때는 방에 놓아두고는
문꼬리에 숟구락 찔러서 잠그고 갯일 허로 갔어.
가서 생합도 잡고, 반지락도 잡고, 굴도 따고,
또 물 많이 쓸 때는 죽합도 잡고, 지금은 없지만 그 때는 농합이라고
이렇게 어른 주먹보다도 더 큰 조개가 있었어, 그것도 잡고…’

‘그렇게 잡아오면 어떻게 했어요?’

‘그때는 여그가 섬이라 장사가 안들어 와,
갯일 해갔고 얼른 집에 와서 아뜰 밥 챙겨주고는
그길로 부안으로 나가, 저그 중리에 다리 있잖여
거그가 옛날에는 나루여, 거그서 배타고 갯꼬랑 건너서 창북리로 가지,
곧 물 들어온 게 빨리 가야 혀,
갯바닥이 미끄러운게 발에다 이렇게 새내끼로 감고,
고개껏 이고 부안에 가면 쌀보리 한 되나 받어가꼬,
저녁 늦게나 집에 와, 그러고들 살았어,
반지락이나 굴은 저녁내 까가꼬 다음 물때 때 나가,
농합도 까가꼬 이렇게 열개 씩 꼬지에 뀌어가꼬 가,
그래도 부안에 가꼬나가면 계화도 것을 알아주었어,
그때 부안사람들 참 좋았어, 어떤 집에 가면 젊은댁네가 고상한다고
밥도 주고, 쌀보리도 한 웅큼 더 주고 그랬어,’

‘그런 것들은 어떤 기구로 잡았어요?’

‘반지락 같은 것은 호맹이로도 잡고,
굴은 왜 조세라고 호맹이보다 쫍은 거 있어,
그리고 죽합은 맛써개라고 나무자루에 기다란 철사 박어가꼬
이렇게 꼬부려, 생합은 글이라고 지금꺼하고 달라
지금껏은 폭이 이렇게 넓어가꼬 많이 잡을 수 있는데,
그때 껏은 이렇게 좁아, 그리고 이렇게 한쪽 어깨에다 메고
옆으로 끄꼬댕겨, 그리고 지금은 생합 잡을 때 비료푸대로 만든
멜빵이라 개벼운디 그때는 대로 만든 광주리라 무거웠어…’

‘계화도 간척한 후로 어때요? 바다는 어떻게 변했고, 사시기는 어때요?’

‘저 앞(계화도간척지)에 논이 많이 생겼어도 우린 농사 안 지어.
바다에서 나는 것들은 무장 줄었어,
그전에는 농합이라고 이(주먹)보다도 훨씬 큰디,
파도 씨게 친날 개에 나가면 허옇게 널렸어,
무거워서 다 못 주서와, 그런디 지금은 없어, 없어진지 솔찬히 되지,
아마 계화도 개 막음서부터 없어졌어,
그리고 그때는 준애(준어?),
삼치, 갈치, 조고, 농애, 오징어, 뻘떡기, 왕새우…
주체갈망 못허게 많이 잽혔는디 지금은 없어…’

‘지금은 갯일 안하세요?’

‘늙은이가 힘이 있어야지 허지, 안한지 오래 됐어’

‘8남매 교육은 어디까지 시켰어요?

‘그 형편에 잘 시킬 수 있간디, 고등핵교 둘 갈치고,
나머지는 모다 중핵교뿐이 못 갈쳤어…’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3년 01월 22일 05시 2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