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생소한 이름이다.
홍콩이나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가보지는 않았지만…)의
수상가옥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갯벌에 원두막(?)을 연상해도 좋고…
뜬금없이 갯벌에 왠 원두막? 하겠지만,
이런 거다.
지금의 계화도는
1960년대 간척사업으로 인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는 섬이었다.
계화도가 섬이었을 때,
어선을 가지고 어장을 하는 어부들이야,
계화도 서남쪽에 있는 돈지포구를 왕래하면 되었지만
맨손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야
한 물때에는 갯벌에 나가 꼬막 잡고 백합 잡고,
또 한 물때에는 그 꼬막, 백합 등을 이고지고
부안까지 걸어 나와 팔아야 했다.
그런데 계화도에서 창북리나 궁안리(대벌)까지
갯벌을 걸어서 왕래해야 하는데,
그 거리가 무려 6km나 된다.
창북리나 궁안리에서 부안까지는 약 8km이고…
그러니 물때를 잘못 가늠해
자칫 갯벌 중간쯤에서 밀물을 만난다면
꼼짝없이 칠산바다에 수장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계화도 사람들은
계화도-창북리 중간 지점(농작물연구소 부근?)의 갯벌에
조수대를 지어놓고 만약의 사고에 대비했던 것인데
이를 활인정(活人亭)이라 불렀다.
불과 100m 정도 되는 하섬 앞 갯벌에서도 익사 사고가 빈번한데,
6km나 되는 계화도 앞 갯벌은 오죽 위험했겠는가?
그러면, 조수대에 갇히게 되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
계산상으로는 12시간 25분을 기다려야한다.
목숨 걸린 일에 12시간 기다리는 게 문제이겠는가?
계화도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일 뿐이다.
밀물의 위험을 느끼지 못하시는 분을 위해…
고려의 대문장가 이규보는 젊은시절(1199년 12월)에
전주목 사록(司錄)에 부임했다.
이후 변산의 벌목책임자로 명받아 변산을 처음 오게 되었는데,
지금의 보안 영전이나 남포리 쯤에서
썰물 때 드러난 갯벌을 가로질러 유천리 쪽으로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 이곳은 육지로 변해 있지만…
이규보는 그때를 ‘남행월일기’에 기록해 두었다.
“…..대숲을 건너 질러서 바로 내려가니 평탄한 길이 있다.
여기에 보안(保安)이란 마을이 있다.
밀물이 들어올 때는 평탄한 길도 순식간에 바다가 되므로
조수가 들어오고 나감을 기다려 때를 잘 맞추어서 가야 한다.
내가 처음 갈 때에 조수가 한창 들어오는데,
아직 50보쯤 거리가 있어서 말에게 채찍을 쳐서 빨리 달려서 가려하니
종자가 깜짝 놀라며 급히 말린다.
내가 들은 채 않고 막 달렸더니
이윽고 조수가 쿵쾅거리며 휘몰아 들어오는데,
그 형세가 사뭇 만군(萬軍)이 달려오는 듯
장하고도 엄청나 심히 두려웠다.
내가 넋을 잃고 달려서 산으로 올라가 겨우 위기를 면하기는 했으나,
물은 거기까지 따라와서 바닷물은 말 있는 곳까지 와서 넘실거렸다…..”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3년 01월 22일 05시 2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