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119 [아름다운 우리말 마을이름들-13] 진서면(鎭西面)-곰소, 여룬개, 돌개, 대소꼴, 원바위재, 거무진말

진서면 진서리 구진마을. 고려시대 이래로 서해를 지키는 수군(水軍)이 주둔하고 있었던 검모진(黔毛鎭)이 있었다. 지금도 이 마을을 검모진이라고 부른다.ⓒ부안21 진서(鎭西)라는 땅이름은 진영(鎭營)이 있는 곳의 서쪽이란 뜻이다. 지금의 진서면 곰소항의 동쪽 구진(舊鎭)마을에는 고려시대 이래로 서해를 지키는 수군(水軍)이 주둔하고 있었던 검모진영(黔毛鎭營)이 있었다. 곰소의 앞바다를 검모포라 하였으며, 서해바다의 군사적 요충지로 1274년 고려 충선왕(忠宣王) 1년에 여몽동정연합군(麗蒙東征聯合軍)이 일본을 정벌하러 갈 때 그 수송선과 전함 900척을 건조했던 곳도 장흥(長興)의 천관산(天冠山)과 이곳 변산(邊山)의 검모포진영이었다. 그 후 1812년(純祖 12)에 무슨 사유에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검모포진영이 지금의 진서마을 초등학교 자리로 옮겨졌으며, …

김형주120[아름다운 우리말 마을이름들-14]줄포면(茁浦面)-줄내, 소금애피, 게절, 비아목, 꽃밭꼴

줄포시가 넘머로 줄포만이 보인다.ⓒ부안21 줄포면(茁浦面)은 백제 때는 흔양매현(欣良買縣)이었고, 통일신라 때는 희안현(希安縣)이였으며, 고려시대는 보안현(保安縣)에 속해 있었다.. 조선조 초에 이르러 부령현과 보안현이 병합되어 부안현이 되면서 건선방(乾先坊)이라 하고, 부안현의 오창(五倉: 다섯 곳의 세곡창고)의 하나인 남창(南倉)이 이곳에 있었다. 일제(日帝)가 1914년에 군면을 폐합할 때 입상방(立上坊), 입하방(立下坊) 일부와 고부군의 서면 신흥(新興), 마항(馬項)의 일부와 흥덕현의 북일면 오정리(梧丁里) 일부를 병합하여 줄내면(茁萊面)이라 하고, 헌병대, 부안의 경찰서 등을 두었는데 1930년 경찰서 등을 부안읍으로 옮기면서 줄포면이라 고쳤다. 줄포(茁浦)의 어원은 주을내(主乙川)에서 나왔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주을내라는 내가 줄포만으로 흘렸다고 하였는데 이 주을내의 …

부여풍,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지만-백제 부흥의 중심, 주류성

▲우금산성(일명 주류성) 굴실-백제부흥운동때 복신이 칭병 우거했던 곳이라 하여 ‘복신굴’이라고도 부른다. 왕조의 단절은 ‘한순간의 실수’일 뿐 서기 660년 6월 21일에 당나라군이 백제를 침공하기 위해 서해 덕물도에 도달하였다. 백제에 위기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결국 7월 12일에는 수도인 사비성을 포위당했다가 마침내 7월 18일에 의자왕이 항복함으로써 국가의 운명이 꺾이게 되었다. 채 두 달이 안 되는 기간이었다. 신라와 당 연합군은 갑자기 나타나서 백제 서울을 에워싼 지 6일 만에 전쟁 상황을 종료시켰고, 백제라는 나라는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백제와 신라의 전쟁은 빈번한 일이었기에 백제 사람들은 패전을 절망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