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림공원 숲으로 오늘도 난 출근한다

 

▲서어나무 노거수

경기도에 살다가 부안에 온지도 벌써 만 6년이 넘었다. 부안에 와서 몇 년간은 가족과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평생 도시에서만 살던 내게 몸을 써서 노동해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농사로 밥벌이하기엔 어렵겠단 생각이 든 게 재작년쯤이었던 것 같다. 내 일을 다시 찾아야 했다. 대학을 나왔지만, 내 전공으로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마땅히 없었다. 고심 끝에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유아숲지도사 자격증을 준비하기로 했다.

작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을 하고 동시에 전북대학교 유아숲지도사 자격증 과정에 등록했다. 주부로서 이 두 가지를 같이 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새로운 걸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니 나도 모르게 힘이 났다. 그렇게 작년에 자격증을 따고 올해 바로 서림공원에 유아숲지도사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성황산 서림공원은

성황산은 부안군청 뒤에 있는 산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 초기부터 부안현의 치소성(治所城)이었다. 지금도 서림공원에 오면 북쪽 사면을 깎아낸 토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예전부터 어느 현이나 관아의 뒤에 있는 산은 ‘성황신을 모시는 산’이라 하여 성황산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공원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임정유애비는 이 고을에 부임한 현감이 성황산의 나무와 숲을 가꾸고 돌본 공적을 기리는 비석으로 이곳이 공원으로 관리되기 시작한 역사가 족히 100년은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어나무-설렘의 시작

올해 서림 공원에 첫 출근을 했던 3월의 설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출근하는 내내 ‘출근길이 숲길이라니!’, ‘출근길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까지 올라왔다. 숲이 내뿜는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적당한 아침 운동도 할 수 있고, 6년 만에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줄임말)’에서 해제가 된 기쁨까지 더해져 나에겐 세계 최고의 출근길이었다.

내가 서림 공원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나무도 초입에 있는 나무였다. 3월이면 아직은 나무눈에서 새싹이 고개를 틔울락 말락 할 때, 어치 새 한 무리가 나무 위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까마귓과인 어치 수십 마리가 한 나무에 있으니 요란법석 장날이 따로 없었다. 무얼 그

▲서림공원에 있는 유아숲 체험원

렇게 열심히 먹고 있는 걸까 궁금하여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하나 까서 먹어보는데, 해바라기씨와 맛은 비슷하지만, 더 작고 고소함이 진했다. 사람이 먹어도 이렇게 맛있는데 어치에겐 얼마나 맛있고 영양가가 있을까. 겨울이 가고 본격적인 봄이 오기 전, 새들에겐 보릿고개를 견디게 해줄 귀한 식량이 돼주는 그 나무의 이름은 서어나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서어나무 군락지라고 할 만큼 키가 큰 서어나무들이 많았다. 서어나무 나무껍질은 회백색에 매끈하고 울퉁불퉁한 근육질 몸을 연상케 한다. 잎보다 초록색의 이삭꼴 꽃이 먼저 나와서 이른 봄 숲에 초록을 가장 먼저 선사하는 멋진 나무이다. 새들에겐 귀한 먹이가 되고, 매력적인 모습의 나무껍질은 눈을 즐겁게 해주고, 초록의 꽃으로 제일 먼저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서어나무에 빠져 3월 출퇴근길에 한참이나 이 나무 앞에 머물렀다.

 

보물찾기-발견의 기쁨

숲엔 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 매일 같은 산책길을 걸어도 항상 새로운 걸 발견한다. 어느 날은 나무에 구멍을 내는 쇠딱따구리와 오색딱따구리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꾀꼬리 형제를 만나기도 한다. 무심코 지나치던 산책길에서 책에서만 봤던 동·식물을 발견할 때도 있고, 마음속으로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이 선물처럼 내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서림공원 산책을 ‘보물찾기’라고 한다.

▲성황산의 고마리꽃

고마리라는 식물이 있다. 습하고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에서도 잘 자라서 서림공원 북쪽 사면에 덩굴식물과 함께 자라고 있다. 9월 고마리꽃이 한창 만개했을 때 신기한 걸 발견했다. 한쪽에는 흰색 꽃이, 한쪽에는 흰색 바탕에 분홍색 꽃이, 한쪽에는 분홍색 바탕에 흰색 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다. 가깝게 있어 수정되면서 색이 섞일 법도 한데 저렇게 고유한 색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중에 식물에 관한 책에서 고마리가 ‘폐쇄화(閉鎖花)’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마리의 폐쇄화는 땅속에 자라 자가 수정을 하기에 부모의 형질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이런 특성으로 유전적 변이도 일어날 수 없기에 저렇게 고유한 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고마리꽃이 폐쇄화는 아니다. 땅 위에 있는 꽃은 다른 꽃들과 마찬가지로 벌레에 의해 수정되고 열매 맺는다. 갑자기 쌀알처럼 작고 연약한 꽃은 어떻게 수정할까 궁금했다. 벌이나 나비는 꽃에 앉을 수 없으니 분명 꽃보다 작고 가벼운 곤충이겠지 생각하던 차에 갑자기 내 혼잣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곤충 한 마리가 이리저리 분주하게 옮겨 다니며 수정을 한다. 벌보다 몇 배 큰 이 곤충의 수정 비결은 바로 정지비행이었다. 정지 상태에서 비행할 수 있어서 작은 꽃의 꿀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벌새를 닮은 이놈의 이름을 알고 싶어 사진을 찍어 동료 숲 선생님께 보여드렸더니 박각시나방이라고 한다.

▲성황산의 메타세콰이어길

이렇게 서림공원을 산책하면서 발견하는 것들이 나에겐 행복이자 기쁨이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뜻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세 잎 클로버를 짓밟기도 한다. 행운을 좇다가 정작 행복을 지나치는 것과 같다. 삶에도 이런 행복과 기쁨이 도처에 널려있을 것인데 이걸 발견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나무에게 배우는 삶의 자세-바람이 키운 나무

집베란다에 딸아이가 작년에 생일선물로 사준 행운목을 기르고 있다. 아홉 살 꼬마가 사준 2천 원짜리,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나무를 받고 집 천장을 뚫을 만큼 커질 행운목으로 자랄 날을 상상하며 시작한 수경재배. 나름 마음을 많이 썼지만, 뿌리가 한 가닥 나고 그다음부터 진전이 없다. 그러더니 나무가 썩을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과감하게 나무는 버리고 잎을 잘라내 키워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나무에 뿌리를 내는 것보단 잎 뿌리를 내기가 더 수월하다고 한다. 잎을 잘라내 화분에 심었다.

그렇게 겨울과 봄을 죽지 않고 보낼 수 있었고, 올여름 이사를 하면서 베란다로 자리를 옮겨줬다. 비바람이 불던 어느 날 잎이 몹시도 흔들려 자리를 옮겨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행운목이 눈에 띄게 자라있는 것이 아닌가. 바람이란 시련이 이놈을 이렇게 쑥 크게 했구나. 바람이 왜 필요한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무가 자랄수록 바람은 더 거세질 것이고 나무가 이겨내야 하는 시련도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조금씩 자기의 한계를 시험하며 나무는 자란다.

서림공원에 바람이 분다. 큰 키의 나무들을 올려다본다. 20m가 넘는 나무들이 좌우로 넘실거린다. 나무는 딱딱하고 경직된 존재가 아님을 확인한다. 살면서 내가 부러질 정도의 태풍은 웬만하면 안 겪는 게 좋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종류의 시련이 아니다. 하지만 적당한 바람엔 바람의 부는 방향을 타고 흔들릴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렇게 바람을 맞고 나면 현실에 더 단단하게 뿌리내린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무에게서 처세술을 배운다.

 

▲필자가 아이들과 숲 놀이 하는 모습

도토리-인간의 한없는 욕심

서림공원의 도토리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동물은 누구일까? 어치? 청솔모? 두더지? 정답은 동물이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도토리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9월부터 10월까지 사람들은 숲속 동물들이 먹을 도토리까지 싹 쓸어간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산에 와서 도토리를 주워가는 것이다. 산에서 취하는 열매는 공짜고 주인이 없어서 마음껏 해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도토리를 먹는 동물이 비단 사람뿐인가? 숲에는 도토리를 주식으로 삼는 동물들이 많다. 이런 동물들을 생각해서 반은 나 먹고, 반은 숲속 동물들 준다고 생각하고 적당히 주워갔으면 좋겠건만 눈앞에 빤히 보이는 유혹을 지나치는 일이 쉽진 않을 것이다. 내 경험상 도토리를 모으는 게 재밌기도 하고, 재밌어서 하다보면 더 많이 갖고 싶은 욕심이 들어 도토리 줍기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숲을 만끽하고 있는 아이들

서림공원엔 아프지만 않으면 하루도 안 거르고 산책 오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할아버지는 취미로 성악을 하셔서 숲에 오면 발성 연습을 하시는데 며칠 할아버지도 보이지 않고, 할아버지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께 어찌 된 일인지 여쭤보니, 도토리를 줍는 데 빠져서 할 일도 제쳐두고 도토리만 주우러 다닌다는 거다. 나는 할아버지가 매일 다니는 산책로가 아닌 서림공원 구석구석 도토리를 찾으러 다녔기에 할아버지를 볼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이야기인즉슨 도토리를 줍다 보니 욕심이 생겨 1년 치 먹을 도토리 가루를 다 해놨는데도 줍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는 거다. 또 도토리를 주우려고 생각해놨던 자리에 갔는데 도토리가 없으면 실망스럽고, 누군가 먼저 와서 줍는 사람을 보면 경쟁심이 생겨서 영 마음이 안 좋다고 하신다. 도토리를 줍느라 몸을 계속 숙여야 하니 노래 연습을 할 수도 없고 이만저만 해서 이제 도토리 줍기를 그만두려고 한다고 하신다.

▲나무 밑에서 올려다 본 상수리나무

공자는 일흔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 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흔을 지나 여든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도토리를 주우며 들었던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속상하시면 나에게 하소연했을까 싶다. 마음에 있는 작은 티끌 하나에도 괴로워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이 할아버지의 마음 같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가 어느 순간 욕심을 깨닫고, 우리 삶에서 진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지구가 이 지경까지는 안 됐을 것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의 ‘서시’ 한 대목이 생각난다.

올해 처음 유아숲지도사로 활동하면서 다짐했다. 아이들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고 대해주는 어른이 되자는 것이었다. 또 숲에서만이라도 마음껏 뛰어놀고, 발견하는 기쁨과 그걸 나누는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아이들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서림공원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산책을 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서림공원의 생태에 대해서 관찰하고 기록했다. 서림공원의 역사가 궁금해서 역사 선생님께 전화하기도 하고, 서림공원으로 아이들과 새 관찰을 오신 숲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새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림공원에 오는 사람들과 오며 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벗이 되었다. 이 글이 숲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삶에 대한 글이 된 까닭이다.

사람을 돌보는 숲이 있어 사람도 숲을 돌보게 되었고, 그 덕에 지금의 서림공원이 있을 수 있었다. 사람과 자연이 오랜 세월 공존해온 서림공원에 오늘도 난 출근한다.

/ 전푸르나(서림공원 유아숲지도사)

 

♣ 부안이야기 29호(2023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