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정 시-
山은 어찌보면 雲霧와 더불어 항상 저 아득한 하늘을 연모하는 것 같지만 오래오래 겪어온 피 묻은 역사의 생생한 기록을 잘 알고 있다.
山은 알고 있다.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그 기나긴 세월에 묻어 간 모든 서럽고 빛나는 이야기를 너그러운 가슴에서 철철이 피고 지는 꽃들의 가냘픈 이야기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다.
山은 가슴 언저리에 그 어깨 언저리에 스며 들던 더운 피와 그 피가 남기고 간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마련한 역사와 그 역사가 이룩할 줄기찬 합창소리도 알고 있다. 山은 역력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이슬 젖은 하얀 촉루가 딩구는 저 능선과 골짜구니에는 그리도 숱한 풀과 나무와 산새와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그리고 그칠 줄 모르고 흘러가는 시냇물과 시냇물이 모여서 부르는 노랫소리와 철쭉꽃 나리꽃과 나리꽃에 내려앉은 나비의 날개에 사운대는 바람과 바람결에 묻혀 가는 꿈과 생시를 山은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山은 우리들이 내일을 믿고 살아가듯 언제나 머언 하늘을 바라보고 가슴을 벌린 채 피 묻은 역사의 기록을 외우면서 손을 들어 우리들을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山이여!
나도 알고 있다.
네가 역력히 알고 있는 것을
나도 역력히 알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 : 부안21
작성일 : 2003년 03월 13일 07시 34분 05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