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녀(巨女) ‘개양할미’가 사는 집

 

▲변산반도의 끝 격포리 절벽 위에 있는 수성당. 여해신(女海神) 개양할미는 이곳에서 서해바다를 총괄했다고 한다.ⓒ허철희


부안 격포리 죽막동 수성당

깎아지른 절벽 위에 집 한 채가 있다. 변산반도의 끝자락인 변산면 격포리 죽막동 적벽강 용두암(사자바위). 여해신(女海神) 개양할미를 모신 당집 수성당(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이 자리한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수성당 할머니인 개양할미는 아득한 옛날에 수성당 옆 ‘여울골’에서 나와 서해바다를 열었다. 그리고 수심을 재고 풍랑을 다스려 지나는 선박의 안전을 도모하고, 어부들로 하여금 풍어의 깃발을 올리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개양할미를 물의 성인으로 여겨 수성(水聖)이라 부르고, 여울골 위 절벽 위에 수성당을 짓고 모셔왔다. 개양할미와 개양할미의 딸 여덟을 모신 곳이라 하여 구랑사(九娘祠)라 부르기도 한다.

▲개양할미 영정 ⓒ허철희

개양할미는 딸만 여덟을 낳아 각 도에 바다 지킴이로 보내고, 자신은 막내딸과 함께 이곳에 머물며 서해바다를 총괄했다고 한다. 혹은, 딸 일곱을 낳았는데 그들이 수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칠산바다 일곱 섬의 지킴이가 되었다고도 한다. 개양할미는 어찌나 키가 크던지 굽나막신을 신고 바다를 걸어 다녀도 버선도 젖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곰소 앞바다에 있는 ‘계란여’라는 둠벙에 빠져 버선목이 좀 젖자 개양할미는 치마에 돌을 담아다 이 둠벙을 메워버렸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거녀(巨女)였으면 바다를 걸어 다녀도 버선도 젖지 않았을까. 여해신의 거대 막강한 신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예부터 바다에 국가적 제사를 지내왔던 곳

그렇다면 수성당은 언제부터 이곳에 있어 온 것일까. ‘道光 三拾年 庚戊 四月二十八日 午時 二次上樑’ 상량문으로 미뤄 1804년, 그러니까 적어도 200여 년 전에 이 신당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1992년 전주박물관에서 이러한 개양할미 전설이 서려있는 수성당 주변을 발굴하여 삼국시대 초기 이래로 바다 혹은 해신에게 제사를 지내왔던 곳임을 확인하였다.

▲죽막동제사유적 ⓒ 허철희

시대를 달리한 제사 유물들이 풍어와 무사귀환을 기원한 뱃사람들의 바람이 담긴 채로 거기 묻혀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항아리와 잔, 병과 토기류, 청동과 철제 유물, 석제 모조품 등 발굴된 제사 유물은 종류도 다양했다. 왜 국가적인 큰 제사터가 수성당에 있었을까. 지정학적으로 수성당은 선사시대 이래로 중국이나 북방의 문화가 한반도 남부로 전파되던 해로상의 중요 지점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삼국시대가 되면 초기백제의 근거지인 한강 하류유역으로 통하는 길목이 되고, 5세기 후반 백제가 남천한 후에는 웅진과 사비로 들어가는 길목이었으리라. 또한 이곳의 해양환경을 살펴보면 연안반류(沿岸反流)가 흐르고, 주변에 섬들이 많아 물의 흐름이 복잡하며 바람도 강해서 예로부터 조난의 위험이 컸던 곳이다. 그러기에 이곳에 신당을 짓고 바다 혹은 해신에게 제사를 올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상량문 기록과 무관하게 수성당의 연원은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또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개양할미가 살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바뀜에 따라 사람들은 개양할미의 그 거대 막강한 신력을 거부하고, 개양할미의 그 자연친화적 순응을 거스르려고만 한다. 바다는 개발의 대상이 되어 황폐화되어 가고 있고, 어촌공동체는 무너져 가고 있다. 수성당 지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만금사업이 그것이다.

▲수성당이 자리한 적벽강 용두암 옆 여울골. 아득한 옛날 수성당 개양할미가 이 곳에서 나와 서해바다를 열었다는 전설이 있다. ⓒ 허철희

개발의 미명 아래 무너지는 개양할미의 신력

개양할미의 신력이 아직은 막강해서였던지 일찍이 백제는 해상왕국을 이룰 정도로 바다를 잘 관장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역대 왕조들은 바다를 멀리 해왔다. 우리의 그 뿌리깊은 유교사상과도 무관치는 않으리라. 士·農·工·商에도 끼지 못하는 게 어부라는 직업이다. 어부들은 목숨 걸고 고기 잡아 왕후장상·양반들의 입을 호사시켜 주건만, 그들은 대뜸 ‘뱃놈’이라 부르며 어부들을 천대했다. 그러한 문화는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다. 입으로는 ‘블루 레볼루션’을 찾고 ‘인류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고 외치면서도, 산 깎아다가 갯벌을 모조리 메우고 있다. 그러니 상처투성이인 국토는 차치하고라도 고기들은 연안에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입맛은 살아있어 생선 수입해 포장 뜯어보니 납꽃게, 납병어, 납조기에 납갈치 아니던가.
해안선 다 망가지고 고기 사라진 바다를 누가 찾을까? 수성당 개양할미의 통곡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부안21(2006·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