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나무 우물가에~“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라는 노래가 있다. 어릴적 이 노래를 부르며 동네 고샅을 쏘다닌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우물하면 앵두가 생각나고, 앵두하면 븕고, 맑으며, 촉촉이 젖어있는 처녀의 입술이 연상된다.

앵두나무는 건조한 곳을 싫어하고 비교적 습한 곳을 좋아해서 동네 우물가에 한두 그루 심어져 있기 마련이고, 우물가는 항상 동네 아녀자들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곳이었으니 이곳에서 동네처녀들이 노래의 가사처럼 바람나서 ‘물동이 호미자루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단봇짐을 싸자‘고 모의하지 않았을까?

앵두는 “꾀꼬리가 먹으며 생김새는 복숭아와 비슷하다.”는 뜻의 앵도(櫻桃)가 변한 말이다. 누렇게 익은 보리를 거둬들이고 모내기를 할 때쯤이면 빨갛게 익는다. 앵두는 그 해 나는 과실 중에서는 제일 먼저 익어 겨우내 싱싱한 과일 한 번 입에 대보지 못한 일반 백성들은 물론 왕후장상까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과실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문종은 세자시절 궁의 담장 아래에 손수 앵두나무를 심어서 앵두를 유난히 좋아했던 아버지 세종에게 따다 드려 세종이 매우 흐뭇해하였다는 기록이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 보인다. 또 철정이라는 관리가 성종에게 앵두를 바쳤더니, 임금이 가상히 여겨 활 1정을 하사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 관리는 연산군에게도 앵두를 바쳐 활을 하사 받았다. 앵두 한두 쟁반으로 왕의 마음을 사다니…, 요즈음 권력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현금사과박스를 바치다 들통나 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그때가 부러울 것이다.


앵두나무는 장미목 벚나무과의 낙엽관목으로 우리나라 및 중국이 원산지이다. 다 자란 어른나무가 높이 2∼3m 정도이고, 4월에 잎보다 먼저 또는 새잎과 함께 지름 1.5∼2㎝의 흰색 혹은 연분홍색의 꽃이 핀다. 열매는 지름 약 1㎝의 작은 핵과(核果)로 6월에 익는다.

앵두나무는 실생, 접목, 분주 등의 방법으로 번식시킨다. 이런 방법 중에서 “4월 가랑비가 올 때 손가락 굵기 정도의 좋은 앵두나무 가지를 잘라 건땅[肥土]에 꽂는 것이 가장 잘 산다.”고 산림경제는 기록하고 있다. 또 “앵두나무는 가지를 꺾어주어야 이듬해 앵두가 많이 열린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앵두 서리할 때 가지째 꺾어도 주인이 크게 나무라지 않았던 것이 다 이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역시 산림경제에도 “앵두나무는 늙으면 열매도 많이 맺지 않고 왕성하지 않으니 베어 옮겨 심는 것이 좋다. 전해지는 시쳇말에 의하면 ‘앵두는 자주 이사 다니기를 좋아하므로 이스랏[移徙樂]이라 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온 앵두는 고려시대부터 제사상에 올려졌다. 그런가하면 약재로도 쓰임이 많다. 중초中焦를 고르게 하고 지라의 기능을 도와주며, 설사를 멎게 하고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고 한다. 또 뱀에게 물렸을 때 앵두나무 잎을 갈아서 붙이면 독을 제거할 수 있고, 뿌리 삶은 물을 공복에 마시면 촌충이나 회충을 구제할 수도 있다고 한다.


/허철희(2007·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