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보리

 

 

新芻濁酒如潼白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大碗麥飯高一尺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
飯罷取枷登場立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雙肩漆澤飜日赤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呼邪作聲擧趾齊 응헤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須臾麥穗都狼藉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 가득하네.
雜歌互答聲轉高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但見屋角紛飛麥 보이느니 지붕 위에 보리티끌뿐이로다.
觀其氣色樂莫樂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了不以心爲刑役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樂園樂郊不遠有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닌데
何苦去作風塵客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요.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지은 ‘보리타작(打麥行)’이라는 시이다. 새로 거른 막걸리에 한 자(尺) 높이 고봉으로 담은 보리밥 한 사발을 배불리 먹자마자 웃통을 벗어젖히고 마당에서 보리타작하는 농부의 모습을 통해 조선 후기 민중들의 건강한 생활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새롭고 가치 있는 삶을 민중들의 일상생활에서 찾고자 하는 당대 진보적 지식인의 세계관도 엿볼 수 있다.


보리는 쌀 다음의 우리민족의 주곡이었다. 그렇지만 보리하면 먼저 ‘가난’이 떠오른다. 농촌에서 성장한 40대 이후 세대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넘었던 ‘보릿고개’를 기억할 것이다. 보리가 익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양식은 이미 바닥나고 연명하자니 나물 뜯어다 죽 쑤어 먹으며 황금찬 시인의 싯귀처럼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를 넘어야만 했다.

이렇듯 민중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그들을 연명해 주었던 보리는 경제성장으로 살만해진 지금, 주곡의 자리에서 저만큼 밀려나 있다. 1965년까지만 하여도 82만6976㏊의 재배면적으로 벼 재배면적 수준을 유지하였으나, 지금은(1999년 기준) 4만5천 여㏊로 감소하였다. 1인당 연간 국민소비량으로 보면 1965년 36.8㎏에서 1985년 4.6㎏으로 급격히 줄었고, 1998년에는 1.5㎏의 소비에 불과하다.


비록 이렇게 민중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보리지만 건강에는 으뜸이다. 보리는 긴 겨울을 나기 때문에 병충해가 없어 농약을 칠 필요가 없는 무공해 작물이다. 그리고 보리에는 베타글루칸을 비롯해 혈압을 낮춰주고 빈혈, 당뇨병 등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는 비타민B, 철분, 판토텐산, 엽산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또한 보리에는 셀레늄이 최고 6.3%~4.09%나 들어있어 노화와 각종 암을 유발시키는 과산화지질을 억제시켜 인체의 면역기능을 강화시킨다는 결과도 나왔다. 그런가하면 한겨울 눈 속에서도 파릇파릇 자라는 보리의 대기 정화 및 산소 생성, 토양 유실의 방지 및 축산폐기물의 재활용 등에 의한 환경오염 방지 효과도 크다.

그런데 건강에 좋고, 환경오염 방지 효과가 큰 보리가 우리 농촌 들판에서 사라져간다는 것은 우리 농촌이 차츰 고사하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종래의 식량공급처라는 좁은 시각으로부터 국민의 휴식공간, 생산공간, 생활공간으로서 건강한 농촌이라는 인식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더구나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의 전면 개방화 시대를 맞아 농촌주민은 일반 국민에게 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제공하고, 일반 국민들은 농촌주민들의 공평한 삶을 보장하는 일종의 명시적 혹은 암묵적인 사회계약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부안21( 2007·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