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불타는 ‘붉나무’

 

 

소금 열리는 나무 ‘붉나무’

만산이 홍엽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어디 단풍나무만 가을 산을 붉게 물들이던가. 단풍나무 못지않게 붉고 곱게 온 산을 물들이는 ‘붉나무’도 있다. 그래서 나무 이름도 ‘붉나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어느 지방에선가는 불타듯 붉어 ‘불나무’라 부른다고도 한다.

붉나무(Rhus chinensis)는 옻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소교목으로 약 7~8미터 정도 자란다.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개옻나무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이 생겼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붉나무는 잎줄기에 날개가 있고 잎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나 개옻나무는 날개와 톱니가 없다. 그리고 붉나무 꽃은 황백색이지만 개옻나무는 황록색이다.

소금 열리는 나무

▲붉나무 열매ⓒ부안21

붉나무에 대해서 좀 알아보려고 인테넷 검색창을 두드리다가 깜짝 놀랐다. 붉나무의 쓰임은 실로 다양했다. 우선 붉나무의 다른 이름은 염부목(鹽膚木), 염부자(鹽膚子), 목염(木鹽) 등이다. 이름에 왜 소금 염(鹽)자를 붙인 것일까. 나무에 소금열매가 열린다는 것이다.

내륙 지방에서는 소금 대용으로 풀을 태워 그 재를 먹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뉴기니의 고산지대에서는 사탕수수를 태운 재에 물을 통과시켜 간수를 얻고 이 간수를 진흙 가마에 넣어 증발시켜 덩어리 소금을 얻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소금이 열리는 나무가 있다니…, 참으로 신기한 나무다.

붉나무는 더위가 한 풀 꺾일 무렵인 8월 중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9월중순까지 핀다. 그리고 꽃이 지는가하면 곧바로 수수알만한 열매를 맺는데, 이 열매에 뒤집어 씌워져 있는 흰 가루가 맛이 짜고 신맛이 있다. 그러기에 예전에 바다에서 거리가 먼 심심산골에서는 이 열매를 짓찧어서 물에 주물러 그 물로 두부를 만드는 간수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또 오랫동안 산속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소금을 제공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소금이야말로 독성이나 불용성분이 포함되지 않은 양질의 소금이라 할 수 있겠다.

‘오배자’에서 새 항암물질 발견

▲오배자(五培子), 붉나무 잎에 달려 있는 벌레집ⓒ부안21

그런가하면 붉나무는 한방에서 아주 귀한 약재로 쓰인다. 특히 붉나무 잎에는 드물게 ‘오배자(五培子)’라는 벌레집이 달려있다. 그래서 한방에서는 붉나무를 ‘오배자나무’라고 부른다. 오배자는 붉나무진딧물(Melaphis chinensis)이 붉나무 잎에 기생하며 만든 집으로 겉은 울퉁불퉁하고 속은 비어 있거나 죽은 벌레와 벌레의 분비물이 들어 있다. 쉽게 깨지고 매우 떫은맛의 특이한 냄새가 난다.

이 벌레집을 7월경 불에 쪼여 벌레를 죽이거나 쫓아낸 뒤 햇볕에 말려 오랫동안 낫지 않는 기침, 오래된 이질과 설사, 탈항 및 산후탈항, 소갈증으로 물을 많이 마시는 데, 혈뇨, 코피, 음낭습진, 손발 갈라져 터지는 데, 자궁 경관염, 뒤통수 종기, 치아를 뺀 상처의 지혈, 자한, 도한, 유정, 혈변, 비출혈, 붕루, 외상 출혈, 종독, 창절 및 거꾸로 난 눈썹 등을 치료한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국내 연구진에 의해 오배자(五倍子)에서 새로운 항암물질을 발견했다고 한다.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김성훈 교수팀은 한방에서 혈전치료에 주로 활용돼 온 ‘오배자’에서 새로운 항암물질(PGG)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고 17일 밝혔다. ‘PGG’라는 물질 이름은 첫 발견자인 김교수가 붙인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암 발생 연구분야 권위지 ‘발암(Carcinogenesis)’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이번에 추출한 ‘PGG’ 성분을 기존 항암제(NS398)와 비교한 결과 10분의 1 용량만 사용해도 비슷한 혈관생성 억제효과를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PGG성분은 암환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염증관련 효소 ‘콕스-2’를 억제하는 효과도 10배가량 높았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경향신문] 2005-05-17 18:42

▲붉나무 꽃ⓒ부안21

붉나무 열매나 벌레집인 오배자 외에도 붉나무는 잎부터 뿌리까지 뭐 하나 버릴 것 없이 가래, 기침, 해수, 변혈, 적리, 손가락 제 2관절의 종창, 몸에 난 부스럼, 벌에 쏘인데, 통풍, 골정, 독사에 물린 상처, 도한, 창양, 풍습 골통, 수종, 황달, 만성기관지염, 소아감적, 타박상, 혈리, 하혈, 종독, 지혈, 회충구제, 이질, 안질환 등의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이 외에도 오배자는 천을 물들이거나 잉크 재료로 많이 쓰인다. 또, 붉나무 꽃에는 꿀이 많아 밀원식물로도 훌륭하다. 붉나무 꿀은 빛깔이 맑으며 맛과 향기가 좋고 약효가 높다 하여 보통 꿀보다 곱절이나 비싼 값을 받는다고 한다.

귀신 쫒는 나무

민간신앙에서는 복숭아나무가 그렇듯이 붉나무도 귀신을 쫓는다고 믿는다. ‘산림경제’에는 빈터에 심어 놓으면 지팡이를 만들 수도 있고, 외양간 근처에 심어 놓으면 우역(牛疫)을 물리친다고 기록되어 있다. 불교의 한 종파에서는 붉나무를 불태우면서 부처님한테 비는 의식을 한다고 한다. 붉나무를 태우면 폭죽이 터지는 듯한 매우 큰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에 놀라서 온갖 잡귀들이 도망간다고 믿는 것이다.





/허철희(2006·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