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에 피는 ‘녹색희망’-고마리

 

찬 기운이 들자 며느리밑씻개, 여뀌, 메밀, 고마리 등 언뜻 보아서는 그 꽃이 그 꽃 같은 여뀌 무리에 속하는 식물들이 꽃을 피우느라 아우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머지않아 동장군이 밀어닥칠 테니 결실을 서둘러야할 것이다.

그 중에서 고마리는 쌍떡잎식물 마디풀목 마디풀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로 연못이나 냇가, 길가의 도랑 등 물기가 있는 곳이면 장소 가리지 않고 무성하게 자란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있으나, 윗부분의 것에는 잎자루가 없다. 잎 모양은 가운데가 잘록하고 잎 끝은 뾰족한 게 로마군 방패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창검 같기도 하다. 잎의 길이는 4∼7cm, 나비 3∼7cm이다.

꽃은 가지 끝에 열대여섯 개씩 뭉쳐서 달리는데 흰색 꽃, 연한 살색 꽃, 붉은색 꽃, 그리고 흰색 꽃 몽우리에 붉은 점이 있는 꽃 등 다양하다. 흰색 꽃몽우리에 붉은 점이 있는 꽃은 며느리밑씻개와 똑같이 생겨 구분하기 힘들다. 흰색 꽃 무리를 멀리서 보면 메밀꽃으로, 붉은색 꽃은 봄에 피는 자운영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고마리 어린 풀은 먹을 수 있고, 줄기와 잎은 지혈제로 쓴다고 한다. 그러나 그 쓰임이 미미해서인지 사람들은 고마리를 쓸모없는 잡초쯤으로 여긴다.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어리석음 아닐까. 고마리만 보지말고 고마리가 덮고 있는 그 밑의 시궁창도 봐야 할 것이다.

연꽃이나 미나리, 부들, 창포, 갈대 등 수생식물들은 더러워진 물을 정화해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고마리의 수질 정화 능력은 이들 수생식물들 보다도 훨씬 더 탁월하다고 한다. 생명력 또한 더 강해 보인다. ‘환경미화’,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봄부터 여러 차례 베어지고 파헤쳐지건만, 어느새 다시 자라 저렇듯 맑고 화사한 꽃을, 아니 녹색 희망을 피우는 것이다. 그것도 하얀, 혹은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 악취가 진동하는 시궁창을 온통 뒤덮고서 말이다.


/허철희(글쓴날 200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