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반십경(愚磻十景)

 

▲바디재에서 내려다 본 우반동, 줄포만

 

우반동에 들어서며…

우반동이 속해 있는 보안면은 부안군의 남서부 곰소만에 인접하여 위치하며, 동쪽은 정읍시 고부면, 남쪽과 서쪽은 줄포면과 진서면, 그리고 북쪽은 상서면과 주산면에 접해 있는데 면적은 41.9㎢이다.

이곳의 산들은 노령산맥이 서해를 향해 달려서 우뚝 멈춰 선 형국으로 먼저 옥녀봉을 만들고, 계속 나아가 변산반도를 이루게 된다. 우반동은 호남 명산의 하나인 변산의 한줄기를 감싼 채 마을을 형성하고 있어서 한눈에 그 형세를 짐작할 수 있다.

우반동을 감싸고 있는 산으로는, 북서쪽은 해발432.7m인 옥녀봉이 있으며, 이 산은 감불마을 위쪽에 있는 삼예봉(390m)에 연결되어 있다. 이 삼예봉에서 내려 온 줄기가 남포리와 경계를 형성하며 감싸안아 좌청룡을 이루고, 또 옥녀봉에서 내려온 다른 줄기는 진서리와 경계를 형성하면서 매봉(263.8m)을 만들어 우백호를 이루며, 남쪽의 천마산은 안산을 이룬다.

그리고 천마산과 남포리의 산 사이의 낮은 지대가 수구를 이루는데 이곳으로 「해옹집(海翁集, 김홍원 지음)」에서 장천(長川)이라 불렀던 만화천이 남쪽에 접해 있는 곰소만으로 흐른다. 이처럼 우반동은 주변의 산들에 쌓여서 조그마한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풍수적으로 아주 좋은 위치이다.

이렇게 산수가 아름답고, 바다를 끼고 있어 산물 또한 풍부한 곳이다보니, 일찍이 반계 유형원은 이곳 산야에 묻혀 학문을 쌓았으며, 해옹 김홍원은 반계 유형원의 조부 되시는 유성민으로부터 땅을 사들여 이곳에 정착하였다. 또 교산 허균은 관직을 사직하고 이곳 정사암에 와 쉬었으며, 동상 허진동은 「우반십경(愚磻十景)」을 짓고, 사암 박순은 이 우반십경에 시를 붙였다.

우반십경(愚磻十景)
사암 박순(朴淳 –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이 허진동의 우반십경에 부쳐 시를 짓다.

사진가박(沙津賈舶)/사진의 장삿배

조각배로 해협의 조수를 띠고 와서
몸소 고래 놀음에 멀리 이익 챙겨 가네
평지에서도 오히려 남을 빠지게 하니
청컨대 그대는 다시 초청하지 마오

사진-상선이 정박하던 곳. 지금의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사포리

죽서어등(竹嶼漁燈)/죽도의 고기잡이 등불

강은 어두어 외로운 섬이 어디 있는지
다만 먼 곳의 고기잡는 등불만 보이네
은하수 희미해질 때 찬 조수물 빠지니
몇마리 물고기 든 대바구니 메고 돌아오네

죽서-곰소 앞바다에 있는 섬. 지금은 고창군 죽도면 죽도라고 부름.

검모모각(黔毛暮角)/검모 저물녁의 호각소리

지는 해 산 너머로 그림자 거두고
화각소리 옛날의 수자리에서 날아오네
그 소리 흩어져 들어오며 어둠 재촉하고
머물던 구름 다 돌아가 봉래산을 감싸네

검모-검모진, 지금의 진서면 진서리 구진(곰소 옆).  옛날에 수군(水軍)의 진(鎭)이 있었음.

수락신종(水落晨鐘)/수락의 새벽종

도인은 잠이 없어 절간에 앉았으니
불꺼진 향불의 재에 이슬 기운 써늘하네
은은한 경쇠소리 구름 밖에 사라지니
매양 새벽 달빛에 마을 닭소리 화답하는 듯

수락-절 이름인 듯 함.

선계청폭(仙溪晴瀑)/선계의 맑은 폭포

한결같은 맑은 소리 구름 끝에 쏟아지고
번쩍이는 푸른 벼랑에 모인 물 쏘는 듯하네
하얀 김 같은 물 은하수와 견줄만하고
신령스런 맑은 샘 있는 곳 누가 다 찾으리

선계-우동리에서 바디재 가는 길에 있는 선계폭포

이현장송(梨峴長松)/이현의 장송

나라에서 기른 명산 세월이 오래되니
구름에 이어지는 아름들이 노송 푸르고
근래에 도끼로 많이 솎아내어
큰 나무 거꾸러지니 동량재목 줄어졌네

이현-우동리 근방의 지명이라고 함.

황암방고(黃巖訪古)/황암에서 고적을 찾다

바둑 한 판 끝난 것 석실에 남아 있고
깊은 산골의 봉황새 암벽에서 늙어 가네
아쉽구나 구지기를 볼 수 없으니
신선의 발자취 찾으려해도 세상 이미 희미하네

창굴심승(蒼窟尋僧)/창굴에서 중을 찾다

한가하여 그윽한 선경 홀로 찾아가니
서쪽 산을 따라 동쪽 숲에 이르게 되었네
절간의 주방과 대밭이 서늘하게 화합하니
불교의 공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상쾌하네

창굴-사자동 실상사 남쪽에 있었던 암자

심원관록(深源觀鹿)/심원에서 사슴을 구경하다

풍성한 풀과 맑은 물 마시며 지내니
삼삼히 떼를 지어 구름같이 보이네
이들 나와 함께 할 것임을 알았으니
누가 산지기를 위하여 사슴몰이 하여주리

신전타어(神箭打魚)/신전에서 물고기를 잡다

누가 산나무 엮어 강물 둘렀는가
조수 빠지자 많은 물고기 한꺼번에 빠지네
비웃노라 도주공의 물고기 기르는 수고를
앉아 있으면 창해가 자연히 물고기 몰아오네

<동상선생문집(허진동 원저, 유풍연 역)>

동상 허진동
조선 중엽(1525. 중종 20년~1610. 광해군 2년)의 유학자. 본관은 태인(泰仁)으로 보안에서 태어났다. 화담 서경덕·외숙인 사암 박순의 문에서 학문을 닦고, 율곡 이이, 옥계 노진, 송강 정철, 우계 성혼, 중봉 조헌, 죽계 김횡 등과 교유했으며, 학행으로 천거되어 수운판관에 재수되었다. 지금의 신복리 신활마을에 동상정을, 우반동에 풍뢰당을 지어 그 곳에서 소요하며 ‘우반10경’을 지었는데 사암 박순이 허진동의 우반10경에 부쳐 시를 지었다. 죽계 김횡, 화곡 김명, 농암 김택삼과 함께 유천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동상집

사암 박순
조선 중종 18(1523)-선조 22(1589) 문신, 학자, 자 화숙(和淑), 호 사암(思庵), 시호 문충(文忠), 본관 충주(忠州), 서경덕의 문인, 문과 장원, 대제학과 좌·우의정을 두루 거치고, 선조 5년(1572)에 영의정에 올라 14년 동안 재직하였다. 동·서 당쟁이 격심할 때에 이이(李珥), 성혼(成渾)을 변론하다가 서인으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고 경기도 영평(永平) 백운산(白雲山)에 은거하였다. 한당체(漢唐體)의 시를 잘 짓고, 문(文)·서(書)에도 뛰어났다.
저서:사암집(思庵集)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3년 05월 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