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계화면 계화리 산 119 ( E 126。38′,N 35。47′)
-재료: 석축
-시대: 삼국시대
부안에서 14호 군도를 따라 창북리에 이르면 확트인 넓은 벌판 너머로 산뭉치 하나가 섬처럼 떠있다. 이 산뭉치가 계화도 계화산(246.3m,봉화산이라고도 한다.)이고, 이 드넓은 들판이 “계화미”로 유명한 계화도간척지평야이다. 계화도는 원래 문자 그대로 섬이었다. 1963년 제1차경제개발 5개년 사업의 하나로 간척공사가 시작되어, 계화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제1호 계화도-문포간 방조제 9,254m, 제2호 계화도-돈지간 방조제 3,556m를 순수 우리 기술진으로 막아 광활한 평야를 만들어 내었다. 이후 인구가 늘어나서 1976년 10월 2일에는 행안면에서 분리되어 계화출장소가 개소되었고, 1983년 2월 15일에는 면으로 승격, 분리되었다.
계화도봉수대는 이 계화산 정상에 있다. 「간재선생유적지」(지방기념물 제23호, 한말의 큰 유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가 경술국치 후 나라가 기울자 이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년동안 수천명의 제자를 가르치며 배일사상과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던 곳) 못미쳐에서 마을 뒷길을 따라 가다 보면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라고 할 수 있는 인조목으로 잘 닦여진 길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이 봉수대는 1995년에 새로 복원한 것으로, 정상의 200평은 넘어 보이는 넓은 공간을 자연석으로 깔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봉수대를 2단으로 축조했는데, 하단은 높이가 3.4m, 둘레는 25m이며, 상단은 구조를 좁혀 굴뚝모양이며 높이는 1.2m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북응만경길관 남응점방산(北應萬頃吉串 南應占方山)”이라 하고,「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계건이 북응만경길관(界建伊 北應萬頃吉串)”이라 하였으며, 점방산 봉수조에서는 “북응계건이(北應界件伊)”이라 하였다. 이 “界件伊”라 하는 곳이 바로 계화도를 지칭한 것이며, 북으로는 만경의 길곶, 남으로는 변산면 대항리의 점방산과 응신하였다. 과연 이 곳에 올라 사방을 조망해보면, 서남으로는 변산면 대항리 점방산봉수대, 북동으로는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만경 길곶봉수대가 일직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3년 04월 22일 08시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