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나무를 그릴 때 잎은 초록색, 줄기는 갈색으로 그린다. 하지만 이 초록색도 여러 가지가 있다. 연두색, 녹청색, 청록색 등… 물감으로는 만들 수 없는 색들을 자연은 만들어 낸다. 참나무류나 생강나무는 새잎이 나올 때 잎 전체를 하얀 잔털로 감싸고 나오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보면 솜털을 뒤집어 쓰고 있는 듯 은색으로 보인다. 여린 잎을 찬바람에서 지켜내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느티나무, 까치박달, 소사나무 등은 연한 녹색을 띠다가 잎이 커지면서 점점 색도 진해진다. 이처럼 자연은 처음부터 강렬한 색으로 세상에 인사하지 않고 자신을 조금 낮추듯 부드러운 색으로 세상에 나와 점 점 주변과 한색으로 어우러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낙엽활엽수들만이 봄에 새잎을 내는 것은 아니다. 상록수로 생각되는 소나무, 후박나무, 호랑가시나무 등도 봄이 되면 조금씩 잎갈이를 시작한다. 가지 끝에서부터 새잎을 조금씩 내밀고 오래된 잎은 떨궈 내는 것이다. 요즘 소나무 끝을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가지끝은 연한 녹색의 잎을 내민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변산반도국립공원에는 낙엽활엽수들도 많지만 소나무림도 아주 많다. 예로부터 삼변이라하여 변청(邊淸), 변난(邊蘭), 변재(邊材)가 유명했다고 하는데 변청은 꿀, 변난은 보춘화(난). 변재는 바로 소나무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로 꼽는 금강송만큼이나 훌륭해 주요 건축물을 짓는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 이 삼변 중에 변산반도에서 가장 관찰이 쉬운 것이 변재이다. 자연산 꿀은 사람들로 인해 많이 채취되어 사라졌고 유난히 변이가 많아 희귀종으로 유명했던 변산의 보춘화 역시 많이 사라져 아쉬움이 많다. 하지만 소나무만큼은 화석연료의 발달로 인해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쭉쭉 뻗은 육송의 가지를 보면 웅장함을 느낀다. 외국 소나무인 리기다소나무, 히말라야시다, 리기테다소나무들과는 그 모습 자체가 다르다. 우리나라 자생종이란 이유 때문에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는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해도 색이나 수형등이 외국의 소나무들에 비해 월등히 아름답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대부분 숲이 안정을 찾으려면 낙엽활엽수로 이루어져야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소나무는 필요 없다는 뜻인가? 우리나라 산림이 점점 녹화되고 낙엽활엽수림으로 바뀌면서 없어지고 있는 수종들이 있다. 그 큰 예가 진달래 이다. 진달래는 보통 소나무림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주로 침엽수로 숲이 이루어졌던 옛날에는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시절에~~♬’라는 노래를 부르며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던 풍습도 있었다. 화전을 붙여 먹을큼 흔하던 꽃이 꽃이 바로 진달래 인데 요즘 산에서는 진달래를 보기가 힘들다. 그 이유가 바로 우리나라 산림의 침엽수 비율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숲이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 좋지만 진달래를 점점 볼 수 없어 슬퍼지기도 한다.
호사다마라고 하듯 어떤 현상이든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점점 진달래를 보기 힘들어 지지만 우리 숲은 더욱 푸르게 푸르게 안정을 찾아가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할 것 같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변산반도국립공원사무소 양주영
(글쓴날 : 2009·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