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에서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 야생화(변산바람꽃, 노루귀, 복수초)들에 대해 소개 했었다. 야생화들은 키가 작아 낙엽을 방패삼아 추위를 이기면서 고운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다가 추위가 사라지고 따스한 봄 햇살이 비치면 하나 둘 잎을 뻗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한다. 기지개를 펴면서 자기보다 덩치가 큰 다른 녀석들을 깨우고 그 손짓에 놀라 덩치 큰 녀석들은 활동하기 시작한다.
3월 하순 이면 노란 개나리, 하얀 벚꽃들이 그 화려함을 자랑 하기 시작한다. 참으로 신기하다. 가장 작아 연약해 보이는 야생화가 제일 먼저 꽃을 피우고 나면 그보다 조금 더 키가 큰 길마가지나무, 진달래, 생강나무가 활동하기 시작하고, 그다음으로 가장 키가 큰 나무들이 푸른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식물들에게 가장 중요한 빛을 서로의 활동시기를 달리하여 골고루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양보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나 아름다운 양보인가! 이게 숲의 질서이고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다. 우리 사람보다 질서를 더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이 질서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지켜지고 있는지 한번 들여다볼까?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낙엽은 겨울 동안 일부는 토양에 섞여 거름이 되고, 일부는 야생화들의 이불이 되어 준다. 그래서 야생화들은 따뜻한 환경속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 열매를 살찌우기 위해 잎이 돋아나고 광합성을 하며 열매를 살찌운다. 야생화의 열매가 모두 성숙해질 무렵이면 그다음으로 키 큰 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키 작은 식물들이 했던 생활을 똑같이 되풀이 한다.
그 후 가장 키 큰 녀석들의 여유로운 움직임이 시작된다. 그래서인지 배려를 모르고 항상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 밑에 서는 야생화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기 욕심만 챙기는 사람 주위에는 친구가 없다. 하지만 남을 배려하고 배푸는 사람들 주위에는 항상 친구가 많다.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봄이면 따스한 햇볕을 양보해 작은 야생화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식물 세계에서 빛은 금은보석보다 귀하고 중요하다. 그런 빛을 양보하는 낙엽 활엽수 들은 항상 친구들이 많아 건강한 숲을 일구어 나간다.
3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으니 봄의 전령사 다음으로 변산반도국립공원을 대표 할 수 있는 식물이 무엇일까? 개나리의 친구인 미선나무가 아닐까 싶다. 부안댐이 생기면서 그 자생지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변산반도에는 3곳의 미선나무 서식지가 있다. 2곳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자생지이고 1곳은 부안댐 축조로 인해 수몰지역에 있는 것을 옮겨 심은 곳이다.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특산 종으로 아주 귀한 식물이다. 개나리와 함께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데, 이른 봄 꽃이 잎보다 먼저 나는 모습까지 똑같다. 하지만 향기가 없는 개나리와 다르게 미선나무는 은은한 향이 감돌아 더욱 매력적이다. 높이는 1∼1.5m 정도로 키가 작고, 가지 끝은 개나리와 비슷하게 땅으로 처져 있다. 미선나무는 열매의 모양이 물고기 꼬리모양을 본떠 만든 부채를 닮아 ‘꼬리 미(尾)’, ‘부채 선(扇)’자를 써서 미선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마치 용왕 옆에 서있는 궁녀가 들고 있는 부채와 비슷하다.
변산면 중계리와 상서면 청림리에 있는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370호로 보호 받고 있으며 미선나무 자체는 환경부지정 멸종위기식물 Ⅱ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변산반도국립공원에서도 미선나무 보호를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시기별 변화양상관찰, 서식환경조사, 번식방법실험 등을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된 천리포수목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진행 중이다. 미선나무는 변산반도국립공원을 자생할 수 있는 남방한계선으로 살아가고 있어 그 가치가 학술적으로 높게 평가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높은 가치에 맞는 보호는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2006년도에 청림의 자생지를 미선나무만 남기고 다른 나무들은 다 솎아 냈다. 관목인 미선나무의 특성상 상층을 큰나무들이나 덩굴류 등이 가리고 있으면 원활한 생장을 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직사광선보다는 측광을 좋아하는 미선나무이기에 어느 정도의 주변식생은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상층목으로 인한 피해를 없애기 위해 제거를 해주었다면 그 후로 다른 외래식물이나 덩굴식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꾸준히 관리를 해주어야하는데 후속관리가 없어 미선나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일시적인 관심은 오히려 식물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줄 거라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그 효과를 식물들이 누릴 수 있다. 앞에서도 말 했듯이 식물들은 자연 안에서 서로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간섭은 최소화 되어야 자연은 스스로 종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건강하고 아름다워 질 수 있을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변산반도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팀 소민석
(글쓴날 : 2009·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