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국립공원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들-변산바람꽃, 복수초, 노루귀, 산자고, 현호색…

 

▲변산바람꽃

변산반도국립공원에 매년 2월 중순이 되면 봄을 알리는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꽃받침을 멋진 꽃잎으로 위장한 위장술의 천재 ‘변산바람꽃’(변산반도국립공원 깃대종), 눈속에서 피는 강인한 꽃 ‘복수초’, 노루의 귀를 닮은 ‘노루귀’까지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숲속에 부지런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이 모든 야생화들은 전부 여린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렇지만 여린 외모와 다르게 성격은 아주 급하다.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나무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전, 눈이 녹지도 않은 땅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꽃샘추위와 싸우고 있다. 이것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높이 10cm가량밖에 안되는 야생화들이 키큰 나무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더욱 부지런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무들이 잎을 내밀어 햇빛을 차단하기 전 재빨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한해의 일정을 마감해야만 했기 때문에 서둘렀던 것이다. 짧고 굵게 산다는 말이 바로 야생화를 두고 한말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한송이 한송이씩 야생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변산바람꽃은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름 붙여졌으며 높이는 10cm정도이고 내변산일대의 햇볕이 잘 드는 습윤한 지역에 자생하는 다년초이다. 학술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부터로 같은 해 전북대학교 교수 선병륜이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였기 때문에 학명도 발견지인 변산과 그의 이름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이름 덕분에 변산반도국립공원을 대표하는 깃대종(깃대종 : 특정지역의 생태적, 문화적, 지리적 특징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동식물로써 국민이 보호해야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종)으로 선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식물이다. 변산반도 외에 마이산,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등지에 자생하며, 꽃이 매우 앙증맞고 예쁘장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글 초반에 변산바람꽃이 위장술의 천재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변산바람꽃의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꽃잎처럼 보이는 하얀부분은 꽃잎이 아닌 꽃받침이고 그 안에 깔때기처럼 보이는 녹색부분이 꽃잎이다. 진짜 꽃받침 밑에서 마치 꽃받침처럼 보이는 부분은 총포라는 기관으로 꽃이 피기 전 여린 꽃받침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변산바람꽃 외에도 꽃받침이 꽃잎보다 더욱 화려해 돋보이는 식물들이 있는데 꿩의바람꽃과 할미꽃, 노루귀, 산딸나무 등이 그러하다.

다음으로 소개할 야생화는 눈 속에서 피는 꽃으로 유명한 복수초이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무시무시한 복수를 생각하겠지만‘영원한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꽃말을 가지고 있으며 복수초(福壽草)의 한자를 풀이해보면 ‘복을 받고 오래 살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하얀 눈과 노란꽃송이가 대조를 이루어 더욱 청명하고 아름답게 보이며 이런 생태적 특성 때문에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복수초의 입장에서는 사랑과 관심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을까? 눈속에서 꽃을 피워 강인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에스키모인들이 얼음으로 만든 집 ‘이글루’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복수초 또한 눈속에서 생활하는게 차가운 겨울바람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인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바람막이가 훼손되는 사례를 겪기도하니 관심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같은 일들은 단연 복수초만의 일은 아니다. 이른 봄에 개화하는 대부분의 야생화들이 솜털로 온몸을 치장하고 낙엽사이를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우는 이유 또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 인데 좋은 사진, 좋은 구도를 얻기 위해 낙엽들을 치워 따뜻한 이불이 사라지는 수모를 겪게 되고 모델로 채택되지 못한 개체들은 사진작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짓밟히고 있어 야생화들은 추위 외에 또 다른 적들과 싸워야한다.

다음으로 소개할 야생화는 노루귀이다. 분홍, 흰색, 보라 등 여러 가지 색의 꽃을 피우며 몸 전체에 잔털을 가지고 있다. 꽃이 지고나면 잎이 돋아나는데 이 잎의 뒷면에 잔털이 난 모양이 마치 노루의 귀를 닮아 노루귀라는 재미난 이름이 붙었다. 크기와 무늬, 서식지에 따라 노루귀, 새끼노루귀, 섬노루귀로 구분되며 비교적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야생화이다. 이 외에 같은 시기에 우리를 찾아오는 야생화로는 산자고, 현호색, 개구리발톱, 구슬붕이, 중의무릇 등이 있다.

아른다운 야생화들이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은 추위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부디 눈으로만 가볍게 인사하고 지나가는 예의가 필요한 것 같다.


/변산반도국립공원 자원보전팀 양주영
(글쓴날 : 2009·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