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니더작센주 와덴해] 갯굴, 홍합, 게 등이 어우러지며 되살아나는 갯벌

 

‘니더작센’이라는 이름은 ‘네덜란드’처럼 ‘낮은 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9월 5일 니더작센주의 산업항이자 군항이기도 한 인구 9만의 도시 빌헬름스하펜에 밤 늦게 도착하였다. 호텔 로비에서 바닷가 풍경을 그린 그림을 보았다. 자연사구가 그대로 살아있는 옛날의 모습이다.

이른 아침 방조제 둑길을 따라 해안을 둘러보았다. 어젯밤 보았던 바다 한가운데 불빛이 휘황하던 것은 유조선이었다. 수심을 확보하느라 돌핀이 길게 뻗어 있다. 와덴해 갯벌을 되살리려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저 유조선이다. 만약 유조선이 사고가 나 기름이 유출이라도 된다면 지금까지의 갯벌살리기는 수포로 돌아간다. 바닷가에 화력발전소가 있었다.

1960년대 이전에 제방을 쌓았다 한다. 전후 경제 회복에 공사판이 필요했다. 일본 이사하야에서도 1950년대에 대규모 간척사업이 있었다. 한국은 1962년도부터 시작되었다.

방조제는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망을 쳐놓았다.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갈매기들도 날아와 쉬고 있었다.

배수펌프장이다. 옛날에는 풍차로 물을 품어냈지만 지금은 모두 전기로 퍼낸다. 호텔로비에 걸린 옛날의 모습과 비교가 됐다. 하천의 물은 진한 커피색이었다.

아침 11시 니더작센주 갯벌국립공원 관리청과 와덴해 공동관리 사무국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해양생태학자이며 관리청 부청장이기도 한 파르케 박사의 환대를 받았다. 그는 작년에 한국에 두 차례 왔었다 한다.

배를 타고 갯벌로 나가 보기로 하였다. 가슴까지 와닿는 긴 장화를 신었다. 수시로 갯벌에 나가 모니터 하는 일이 그의 임무이기도 하다.

(아래 사진 점선이 배로 이동한 구간이다.)

항구를 벗어나자 파도가 높게 일었다. 선장은 돌아가는게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구명조끼까지 단단히 착용한 우리 의견을 받아들여 갯벌탐사를 강행키로 하였다. 너울을 타고 40여분 항해한 끝에 갯골을 따라 갯벌 한가운데로 들어가 배를 정박시켰다.

물이 빠지며 갯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펄갯벌과 모래펄갯벌의 중간쯤 되는 갯벌이었다.

드문드문 갯지렁이 구멍만 보일 뿐 생명체가 보이질 않았다. 새만금갯벌 같았으면 게들의 천국이었을텐데…

흔한 갈매기떼도 눈에 띄질 않았다. 갈매기 발자국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꼬막을 발견하였다. 물이 빠지면 갯벌에 묻혀있는 것이 정상인데 절반이상이 나와 있다. 이식한 것으로 보였다.

홍합도 있다. 홍합은 와덴해에서 대표적인 조개이며 옛날에는 어민들에게 많은 소득을 올려주었다고 한다. 접착성이 강한 단백질 다발인 족사를 이용해 암초에 붙어 사는데 이곳 홍합은 푹신한 갯벌에 반쯤 묻혀 살고 있다.

갯벌을 파보았다. 5센티쯤 아래는 시커먼 썩은 갯벌이었다.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였다.

산업화가 일찍 시작됐던 독일 대부분의 지역에서 토해내는 오염물질이 엘베강, 아이데르강, 엠강 등을 통해 이곳 와덴해 갯벌에 쌓였던 것이다.

유럽에서는 19세기에 들어서야 변소를 발명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도시에서는 변기에 용무를 보고 거리로 휙휙 던져 버렸다고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망토요 하이힐이다.

1840년대 맨체스터를 여행한 엥겔스는 어크강의 다리에서 본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크 강바닥과 썩은 물은 인근의 하수구와 화장실의 내용물을 받아들인다. 듀시 달리 아래 왼쪽 둑으로는 쓰레기 더미가 보이고 건물의 쓰레기와 썩은 물건들이 쌓여있다. 이 강은 좁고 새카맣고 악취가 풍기며 다리 아래 오른쪽 둑에는 오물과 쓰레기가 가득차 있다. 건조한 시기에는 이 둑이 가장 구역질나는 검푸르고 끈적거리는 긴 웅덩이가 되어, 바닥에서 유독한 거품이 올라오고, 수면에서 15m 정도 위에 있는 다리에서도 참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긴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2003년 그물코)에서 따옴.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며 인구가 도시로 모여들자 거리 투척으로는 더 이상 안되자 화장실을 발명한 것인데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악취를 강화했을 뿐이었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오염물질들이 모두 북해로 흘러들었다. 더구나 20세기 들어와 화학공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1945년에는 합성화학공업이 발달하여 플라스틱, 합성세제, 합성섬유, 살충제 등 오염물질은 더욱 강해졌다. 영국,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등 북해 연안국들은 거리낌 없이 이들 오염물질들을 북해로 방출해왔고 급기야 북해 전역이 오염되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게 되자 학자들이 이를 고민하였고 갯벌을 살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국민을 설득시켜 이제 갯벌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의 서해가 지금 그 위기에 처해 있다. 중국이 가세하여 경쟁적으로 서해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새에게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 게의 잔해를 마침내 발견하였다. 게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미소조류가 군데군데 생겨나고 있었다. 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고 파르케 박사가 말하였다. 미소조류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일종으로 갯벌생태계에서 1차생산자인 것이다. 이들을 먹이로 삼은 고둥의 포복흔적도 발견하였다.

주로 펄갯벌의 개펄 표면에 부착하여 서식하는 규조류는 식물이지만 운동성이 높아 퇴적물 알갱이 사이의 빈틈을 통한 이동이 가능하다. 조수가 밀려올 때는 펄 속으로 잠입하고 조수가 빠지면 표면으로 모여든다. 그래서 갯벌의 표면은 그들이 가지는 색소의 종류에 따라 갈색이나 녹색, 녹갈색, 등을 띠게 된다.

조개의 사체 더미를 만났다. 시화호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파르케 박사는 조류에 떠밀려 갯골 어귀에 모여 쌓인 것이라고 하였다.

온전한 게의 사체를 발견하였다. 게들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이 드넓은 바다가 사막처럼 느껴졌다. 새들의 발자국만 있을 뿐 날아다니는 새들은 볼 수 없었다.

충남 서천 갯벌의 고수 양수철 대표가 마침내 살아있는 게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해양생태학자 파르케 박사도 놀랐으리라. 부안 새만금 갯벌과 서천 장항갯벌의 선수들 아닌가. 게는 갯골을 이루는 경사진 곳에서 수평굴을 파고 살고 있었다. 산소 공급이 원활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게는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굴 속에 도로 밀어넣어주었다.

이후 파르케 박사가 우리 뒤를 따라다녔다.

큰 갯골을 건너 이동하였다.

그곳은 상황이 달랐다. 갯굴을 태평양에서 가져다 이식하였다고 한다.뻘 바닥에서서 사는 갯굴은 번식력이 왕성하다. 뻘 위로 나와 있으므로 산소공급도 원활하다. 그 등에 따개비가 부착해 있다.

처음으로 고둥을 보았다.

산호의 일종이며 동물성이다.

갯굴을 까서 맛을 보았다.
물컹하게 씹히면서 악취가 풍겼다.

새우, 갑각류가 있다.

빌헬름스하벤 화력발전 단지. 오염원이 지척이었다. 오염물질을 완전히 정화처리하여 내보내고 섬에서 발생하는 고형쓰레기는 콘테이너로 실어내와 육지에서 처리한다고 한다. 합성세제의 사용을 금하면서 인의 유입도 크게 줄었다 한다.

연체동물>다판류인 털군부를 발견하였다. 갑각류 게도 눈에 많이 띄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꼬막

갈매기 발자국

이날 관찰한 것은
갯지렁이, 게, 새우, 꼬막, 고둥,
홍합, 갯굴, 털군부, 따개비.

갯벌은 살아나고 있었다.

이에 비하면 우리 서해갯벌은 보물중의 보물이다.
다 파괴한 다음에 되살리려 할 것인가.

갯벌국립공원 관리청에서 10년 동안 일해왔다는 선장. 그의 배 부리는 솜씨가 탁월했다. 돌아올 때는 파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멀리 물개가 보인다고 알려줬다. 움직이는 배 안에서 더구나 줌을 당겨 촬영을 해서 상태가 좋지 않다.

공동사무국으로 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방을 터 역간척을 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빌헬름스하벤 바로 앞의 섬이다. 2002년 제방을 터서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했다. 아래 사진은 그 변화 과정이다.

2009년도에는 위 사진의 흰 점선부분의 제방을 헐기로 했다고 한다.

파르케 박사는 인정이 많은 분이었다. 두 밤만 더 자고 가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면 더 많은 것을 보여주겠다며 거듭 당부했다. 네덜란드 민박예약을 취소하고 하루 더 묵기로 하였다.

그런데 공동사무국에 마침 네덜란드 사람이 와있다며 그 차 타고 가라고 하였다.

갯벌 살리기에 노심초사하는 그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가장 힘든 일은 정치와의 조화”

인터뷰/후베르트 파르케 박사(니더작센주 갯벌국립공원 관리청 부청장)

와덴해 갯벌 답사가 끝나고 3개국 공동관리기구 사무국이 있기도 한 니더작센주 국립공원관리청으로 돌아와 파르케 박사를 비롯해 3개국 공동관리기구 사무국 직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와덴해는 어떤 곳인가.

= 시베리아에서 번식활동을 한 철새들이 월동을 위해 아프리카까지 가는 도중에 쉬어가는 곳으로 연간 천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온다. 지구 생태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한국의 서해 갯벌도 마찬가지이다.

– 주민들이 처음에는 국립공원지정을 반대했다고 하는데.

= 산업이 크게 발달하지 못한 북독일 해안지역에서는 주민들의 개발 욕구가 크다. 관리청이 이러한 욕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생계대책과 자연보호가 함께 가야 한다.

– 3개국 공동관리기구는 언제 설립되었으며 주력사업은 무엇인가.

= 각국 환경단체들과 학자들의 노력으로 1978년도에 설립되었다. 여기에 언론이 진실을 알렸기에 가능했다. 갯벌에는 국경이 없다. 자연 보호를 위해 3개국이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해안 거주 주민들의 입장을 받아들여 이들에 대한 생계보장을 위해 관광사업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그동안의 홍보활동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3년에 1회 각국 환경부 장관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여기에서 주요 사업들이 결정된다. 또한 3국공동감시팀이 조직되어 환경감시기능을 수행한다.

– 섬지역에서도 주민들은 어로작업을 할 수 없는가.

= 주민들의 사용 욕구를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다. 가정에서 먹는 정도의 조개채취 등은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상업용으로 팔거나 하는 행위는 안된다. 어로작업은 소규모 새우잡이 정도만 허용하고 있다. 처음 부분 허용에서 전면금지로 나아가면서 관광지로서의 홍보활동을 병행하였다.

– 관광객은 얼마나 오며 수입은 얼마나 되는가.

= 니더작센주에만 연간 2,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이 가운데 4분의 1정도는 갯벌을 찾는데 보통 일주일 정도 체류한다. 정확한 수입은 산출하기 어렵다. 대략 2조원 이상으로 추산한다. 섬지역의 주민들은 관광수입에만 의존하며 산다.

–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 학문과 현실정치와의 조화가 가장 어렵다. 개발욕구도 일부 수용하면서 환경시설을 철저히 갖추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네덜란드 그로닝겐 지방에서 간척사업 일부만 하도록 합의한 것이 그 예다. 90년대에 들어와서도 농경지 확보를 위한 간척사업을 시도한 일이 있다. 그러나 이를 물리쳤다.

현재 와덴해는 유네스코에서도 생물보호권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3개국 공동관리기구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09년도에 결정이 날 예정이라고 한다.


/허정균(풀꽃세상을위한모임 대표)
이 기사는 ‘뉴스서천’에서 제공받았습니다.

(기사작성 2007·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