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도 크네기 갈치 배때기 맛 못 잊어…

 

 

자라면서 제일 많이 먹었던 생선을 꼽는다면 아마도 갈치일 것이다. 보리고개 넘던 시절에 갈치를 많이 먹고 자랐다면 꽤나 잘사는 집안으로 오해할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갯가 마을에서 자란 덕이다. 내가 자란 변산의 마포 해안에는 드넓은 갯벌이 건강하게 발달되어 있다.

그 곳에는 어살이 두 곳에나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바로 그 어살이었다. 우리들은 갯가에서 공도 차고 망둥이 낚시도 하며 놀다가 물때가 되면 어살로 달려갔다. 물때에 맞춰 어살에 걸린 고기들을 다 잡아 올리려면 바쁘기 마련으로 우리가 좀 거들어 줄랴치면 어살 주인은 좋아라 했다. 그리고 무언으로 ‘나머지 잔챙이 고기는 너희들이 잡아가도 좋다’고 암시해줬다. 우리들은 벼이삭 줍듯 어살 주인이 미처 다 못 건져 간 고기들을 이 잡듯이 뒤져서 잡는다. 의외로 큰 고기들이 후미진 곳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 당시 어살에 많이 걸렸던 고기는 부시리(방어), 농어, 숭어, 가오리, 삼치, 갈치, 병어, 조기, 학공치, 전어 등이었다. 지금은 어림없는 얘기다. 숭어나 전어, 학공치 정도가 걸려들 뿐이다. 그 중에서도 갈치가 가장 많이 걸려들었던 것 같다.

개선장군처럼 어살에서 잡은 갈치 몇 마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꺼끌꺼끌한 호박잎으로 비늘을 벗겨낸 후, 토막 내어 굵은 소금에 염장해 놓는다. 그러면 늦게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할머니와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신다. 어린나이에도 이런 고급 먹거리를 당당히 챙겨오는 가족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식구가 많으니까 갈치는 자연 짜야 된다. 굵은 소금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갈치토막을 아궁이 불에 석쇠 얹어 구우면 동네방네 냄새가 진동한다. 여름이라 물거리(나무)를 때지 않고, 검불(건초, 보리대나 풀 말린 것)을 때기 때문에 갈치가 깨끗하게 구워질 리가 없다. 밥상에 오른 갈치 토막은 까맣게 재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래도 맛은 일품이다. 대개 생선하면 가운데 토막을 좋아들 하지만, 생선의 참 맛을 잘 모르는 소리다. 조기도 그렇지만, 특히 갈치는 배 부분을 내장 채 먹는 맛이 제 맛이다. 오죽하면 변산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비안도(변산 앞의 섬) 크네기 갈치 배때기 맛 못 잊어 시집 못 간다.’

▲부안시장에서 매살메 고개 넘어 가는 길 시장통에는 한 할머니가 역거리(조기)와 간갈치를 좌판 가득 올려놓고 팔고 있다. 부안시장에서 간갈치 팔기 시작한지가 20년 되었다는 박점례(70) 할머니이시다. 내가 이 할머니의 고객이 된지는 6~7년 쯤 전인 것 같다. 할머니는 갈치를 곰소에서 직접 받아다 판다. 하루 팔만큼만 받아오기 때문에 팔다 남은 것이 냉동고로 들어갈 리는 없다. 그래서 맛이 변함이 없다. 사진은, 할머니 표정이 너무 굳어 있어서 ‘할아버지가 갈치냄새 난다고 옆에 못 오게 하는 거 아녀?’ 했더니, 파안대소 하신다.

그런데 변산 앞바다에 그렇게 많던 갈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해양환경의 변화도 변화고, 남획도 남획이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나라 해양정책에 문제가 있다. 일찍이 백제는 해상왕국을 이룰 정도로 바다를 잘 관장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역대 왕조들은 바다를 멀리 해왔다. 우리의 그 뿌리 깊은 유교사상과도 무관치는 않으리라. 士 農 工 商에도 끼어 있지 않은 게 어부라는 직업이다. 어부들이 목숨 걸고 고기 잡아 뭇왕후장상, 양반들의 입맛을 호사시키고, 백성들에게 훌륭한 단백질원을 공급해줬건만, 그들은 대뜸 ‘뱃놈’이라 부르며 천대하지 않았는가? 그러한 문화는 지금에도 이어져 어부들을 여전히 ‘뱃놈’이라고 부르고 있다. 입으로는 ‘미래 식량자원은 바다에 있다’, 즉 부루 레보루션을 외치면서, 이른바 국책사업이라는 미명아래 막대한 국민혈세 쏟아 부으며 산 깎아다가 갯벌을 모조리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상처투성이인 국토는 차치하고라도 고기들은 연안에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세계 5대 갯벌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 서남해안 갯벌은 개발대상이 아니다. 해양생물의 산란장이자 자연정화조로 해양의 오염을 막고, 연안 어족자원의 궤멸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자연자원인 것이다. 그래도 입맛은 살아있어 생선 수입해 포장 뜯어보니 납꽃게, 납병어, 납조기에 납갈치 아니던가?

 

갈치에 대하여…

경골어류 농어목 갈치과에 속하는 갈치는 칼치·도어(刀魚)라고도 한다. <자산어보>에는 군대어(裙帶魚)라 하고 속명을 갈치어(葛峙魚)라 하였으며, <난호어목지>에는 갈치(葛侈)라 하였다. 신라시대에는 칼을 갈이라 한 사실로 보아 이미 신라시대부터 갈치라 불렀을 것으로 여겨진다. 몸은 매우 길고 칼처럼 납작하며 꼬리의 후반도 길고 끈 모양이다. 몸길이는 큰 것의 경우 1.5미터에 이르며, 주둥이는 크고 아래턱이 나와 있다. 양 턱과 구개골에 크고 억센 이빨이 있으며, 성질은 사나운 편으로 자기 꼬리를 물기도 한다. 배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는 없고, 등지느러미 하나가 등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몸 빛깔은 은백색으로 알루미늄 호일처럼 금속광택이 나며 비늘은 없다. 표피를 덮고 있는 구아닌은 모조진주의 재료가 된다.

갈칫살에는 수분이 63%~80% 정도, 단백질이 16%~25% 정도, 지방이 10% 안팎 들어 있으며, 그 지방의 85%는 우리 몸에 좋은 불포화 지방산이라고 한다. 그 밖에 나트륨, 칼륨, 칼슘, 마그네슘, 인과 같은 무기질과 비타민이 A, D, E, 비타민 B군이 많아 소화가 잘 된다. 요리를 할 때에 몸에 붙은 은색 가루(핵산 중의 퓨린 염기 일종인 구아닌)는 소화가 잘 안되므로 걷어내고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싱싱한 낚시 갈치로 회를 떠서 먹을 때에 그것을 깨끗이 걷어 내지 않고 먹으면 복통과 두드러기가 일어 날 수도 있다.

갈치는 온․난대성 어족이어서 겨울철에는 저층수온(底層水溫)이 10℃ 이상 되는 제주도 남쪽 동지나해 주변 해역으로 남하하여 월동(越冬)하고, 봄철이 되어 난류세력이 강해지면 북상하여 제주도 연안을 거쳐 한국의 남.서해안 일원부터 중국의 동해안과 발해만 일원에 이르는 연안 일대로 북상한다. 그 회유로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동지나해를 떠나 대마도, 제주도 연안을 왔다가는 무리와 중국 연안을 따라 산동 반도, 대만 반도, 남지나해를 오가며 우리나라 서해, 황해에서 잡히는 무리로 나뉘는데, 지금은 서해 연안에서 갈치 구경하기는 어렵다.

/허철희

2003년 0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