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농부의 벅찬 삶과 기쁨

 

대부분의 부안 군민이 그렇듯이, 나 또한 부안에서 어린 시절을 거쳐 50년 가까운 세월을 부안과 함께 하였다. 그 중 32년간은 농사를 짓고 가정을 이루어 세 자녀들을 어엿한 성인으로 키워냈으니, 실로 부안은 나에게 소중한 삶의 보금자리이자 큰 보람의 터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소중한 곳에서 필자 여전히 농사를 지으며 땀 흘리고, 그로부터 얻는 기쁨을 지역사회와 함께 누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제 현재의 나를 통해 부안에서 농사짓기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더듬어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32년이라는 세월 동안

필자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고등학교를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내 적성에 맞는 농업으로 성공을 해봐야겠다는 각오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 기간이 벌써 32년, 세월이 흐르고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필자는 계화면 조포 마을에서 수도작 12ha(24필지)와 하우스 12,000평(40동) 감자 재배를 경영하며 현재 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다.
올해도 희망에 들떠 모판에 볍씨 종자를 뿌려 애지중지 정성스럽게 키워 논에 모내기를 하고, 물이 마를까 충해에 걸릴까 무더운 여름 내내 땀 흘려가면서 벼가 잘 익도록 애써 가꾸었다. 하지만 가을이 되어 벼들이 누런 황금물결 들 때, 사흘간 몰아친 강풍으로 볏잎들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벼이삭은 멍들대로 멍들어 반쯤 여물다 말라버려 황금색이 되어야 할 들판이 온통 붉다.
오늘도 콤바인을 가지고 벼 수확을 하지만, 즐거움과 보람이 아닌 걱정과 수심이 생기고 두 어깨는 자꾸만 무거워진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쌀값 폭락 대란으로, 벼 1kg에 800~900원이 될 거라는 이야기와, 피해를 많이 입은 벼는 아예 미곡처리장에서 수매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오기 때문이다. 연말이면 여지없이 “농협의 부채상환 고지서가 집으로 날아올 텐데……”라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올해는 쌀값이 이 지경이니, “변동 직불금이라도 정부에서 많이 줘야할 텐데……”하는 희망을 걸어본다.

 

쌀값 폭락의 여러 원인

근래에 쌀값 폭락이 매우 심각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첫 번째는 국민들의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쌀 소비보다는 밀 등 다른 작물의 소비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가 간의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주식용 쌀을 일정량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북한과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대북지원이 되던 쌀이 중단되어 적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외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으로 쌀의 소비 문제는 앞으로도 나아지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에서도 대안으로 벼농사 대신 밭작물을 재배하도록 권장하고, 농민들 또한 자구책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지만,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다른 작물들은 종자대, 인건비, 관리비가 많이 들다보니, 가장 손쉬운 논 콩을 재배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콩 재배가 경비도 적게 들고 콩 값도 좋아 재미를 보았으나, 작년에는 콩이 많이 생산되다보니 콩값이 폭락하여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정부나 정치권 농관련 단체에서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방안을 찾고 농민들도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하여 슬기롭게 현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시설감자 재배를 시작하다

나도 처음에는 벼농사만을 위주로 하다 보니 수입은 한계가 있고 겨울철 농한기 때는 일이 없어 지출만 늘어나 가계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겪었다. 어떻게 하면 농한기 때에도 소득을 올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논에 하우스를 지어 시설감자를 해보기로 결정을 하였다. 1988년도에 하우스 6동을 시설하여 첫 해 감자 농사를 시작하였는데, 경험 부족으로 전혀 수확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필자는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하였고 드디어 3년째부터는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마을 젊은 형님들도 관심을 가지고 너도나도 하우스를 지어 지금은 계화면에 40여 농가가 700여 동의 하우스에서 감자 재배를 하여 소득을 늘리고 있다. 하우스 감자 다수확 재배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우스 감자 다수확 재배 방법

① 토양관리
하우스는 비가림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토양에 염분이나 비료염이 많이 축적되어 토양을 인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황폐화되어 농사짓기가 힘들어진다. 필자는 4월 초에 감자를 수확한 후에 심경 쟁기로 깊이 경운하여 담수를 한 다음 로타리를 하여 모내기를 한다. 그 다음 생육기간 중 담수를 하여, 염류 집적 해소·병충해 등을 방제한다. 하우스는 한 자리에서 계속 감자 농사를 짓기 때문에 연작 장해가 나타나는데 되돌려 짓기를 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벼가 익으면 9월 중순경에 벼 베기를 하는 데 볏짚은 잘게 썰어 넣고 부숙퇴비를 넣어 깊이갈이를 한 다음 로터리를 하고 볏짚이 잘 부숙되도록 관리한다.

② 시비와 포장 관리
하우스의 벼 수확을 마치고 난 다음 볏짚을 비료로 활용하면 땅심이 높아진다. 10월 중순경 감자 심기 한 달 전에 하우스 동당(240평) 유박 10포대를 살포하고 로타리를 해주고 토양 수분 관리를 해준다. 감자 파종 1주일 전에 복합비료(23%) 3~4포대, 토양 살충제 3kg 1봉, (땅 강아지, 굼벵이 방제)붕사 1kg, (쪼개짐, 공동과 생리장애 해소)리도밀 입제 1봉(역병 예방)을 살포하고 로타리를 하여 포장 준비를 한다.

③ 씨감자 준비
필자는 씨감자를 강원도에서 개인농가와 계약하여 해마다 고정으로 구입하여 쓴다. 감자 종서는 병해충, 바이러스(더뎅이병), 역병 등에 감염이 안 된, 다른 품종이 섞이지 않은, 휴면이 적당하게 타파된 우량 씨감자로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휴면이 안 된 감자를 심을 경우 2차 휴면으로 들어가 싹이 위로 올라오지 않고 땅속에서 싹이 감자로 맺힘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싹이 너무 많이 난 경우 종서가 노화가 되어 다수확을 못하게 된다. 종서 분할은 파종 3~4일 전에 하는데 왕눈을 중심으로 쪽 한 편당 30g 정도가 되게 하여야 하는데 싹눈이 있게 분할하여야 한다. 소독은 리조렉스 수화제를 물에 희석하여 30분 정도 담가두었다가 꺼낸 다음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한다.

④ 감자 심기
포장은 평평하게 로타리를 치고, 폭 90cm 간격으로 줄을 치거나 금 그리기를 한 후, 감자 종서를 20cm 간격 대각선 두 줄로 파종한 다음 감자와 감자 사이를 관리기로 골을 따주면 두럭이 형성된다. 그 위에 비닐 멀칭을 해주면 감자 심기는 끝나게 된다.

⑤ 순 출현 관리
파종 후 20일 경 감자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싹이 1~2개씩 비칠 때 멀칭을 벗기고, 제초제를 물량 10ℓ 정도를 미스터기로 전면 살포하여 잡초를 제거해준다. 약 1주일 후에 감자 싹이 멀칭을 들고 올라오는 데 그때부터 멀칭 구멍 뚫기를 해준다.

⑥ 하우스 온도 관리 및 수분 관리
줄기 성장기에는 하우스 온도를 20~25℃ 정도로 유지하고, 오후에는 일찍 개폐기를 내려 초저녁 온도를 따뜻하게 해주어야 줄기 성장에 도움이 된다. 포장 수분은 물을 많이 필요한 시기이므로 충분하게 공급해주는 데 너무 많으면 종서가 부패되고 역병이 발병할 수 있다. 물을 줄 때는 두 고랑에 한 줄씩 물 걸러 대주기를 한다. 꼴망울이 맺히면 이때부터 구근 비대기인데, 하우스 온도는 18~20℃ 정도 관리해주고 특히 초저녁 온도를 낮게 해주어야 한다. 수확 한 달 전에 토양에 수분이 많을 경우, 감자 구근 표피에 숨구멍이 생겨 상품성이 떨어지고 감자 순의 노화가 가속화되어 수확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주의해야 한다.

⑦ 수확 및 선별
하우스 감자는 햇감자이기 때문에 기계로 수확할 때 쪼개지거나 껍질이 벗겨져 상품성이 떨어진다. 기계 수확할 때는 속도를 천천히 작업해야 한다. 선별은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지금까지 정성을 들여 가꾸어온 결실이 소비자에게 첫 선을 보이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감자는 크기가 균일한 것들끼리 포장하되 쪼개지고 상처가 있거나 더뎅이병에 걸려 흠이 있는 것은 절대 들어가지 않게 선별 작업을 해야 제 값을 받을 수 있고 생산자 이름이 신뢰를 받을 수 있다.

⑧ 하우스 관리 주의사항
하우스는 인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한순간의 방심으로도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특히 자동 개폐기로 온도관리를 할 경우, 기계의 오작동으로 고온·저온 장애를 입을 수 있어 수시로 확인하고 관찰해야 한다. 온도조절, 비료주기, 수분 관리는 감자 품종이나 하우스 포장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내 포장 상태를 잘 알아야 한다. 강풍·태풍·폭설 등 재해에 대비하여 사전에 철저한 준비로 피해를 최소화하여 손해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자 다수확 재배법에 대해 필자는 28여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수없는 시행착오와 경험을 앞과 같이 자세히 기술하였다. 현재 필자는 논 8필지(12,000평)에 하우스 40동을 설치하여 감자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의 성공은 지력과 노력이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옛 말씀이 있다. 이번 재해에 벼에 나타난 백수 피해도 논에 퇴비와 볏짚을 넣어주어 지력을 높인 논에서는 피해가 적게 나왔다. 나 또한 논에서도 같은 현상을 겪었다.
하우스를 처음 시작하여 감자 재배를 하면서 화학비료만 주고 농사를 짓다 보니 2~3년은 그런대로 수확할 수 있었으나, 그 다음해부터는 염류 집적으로 땅이 황폐화되어 감자가 쪼개지고 더뎅이 병이 생기고 수확량이 급속히 떨어져 땅을 되살리는 데 오랜 시간 고생한 적이 있다.
이처럼 땅은 우리가 해준 것에 대해 몇 배를 다시 되돌려 준다. 요즘 보면 소먹이용 군포 덩어리가 온 들판을 하얗게 수놓는다. 소 사육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만, 볏짚대신 땅에 퇴비라도 넣어주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소득이 적게 나오다 보니까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볏짚을 판매하는 데 결국에 그 다음 해에는 몇 배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필자는 내년에는 하우스 일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퇴비장을 지을 계획이다. 축분과 부숙재를 넣어 퇴비를 자가 생산하여 농사에 사용할 예정이다. 지금은 감자 수확을 하면 깊이갈이를 하여 모내기를 하고 여름내 담수 관리를 하여 벼 수확을 한 다음 부숙 퇴비와 부산물을 넣고 볏짚은 그대로 썰어 넣은 다음, 깊이갈이를 하여 땅심을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내년에는 퇴비 창고를 별도로 지어 완전 부속된 퇴비를 만들어 사용할 계획이다.
나는 수도작은 벼농사에만 그치지 않고, 찹쌀보리·사료작물 · 유채재배를 통한 2기작으로 단위 면적당 소득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우스 감자 재배에서도 지력 증진을 통해 수확량을 올릴 뿐만 아니라, 최상의 품질의 감자를 생산하여 지난 2007년도에 농협중앙회에서 이달의 출하왕으로 선정, 농협중앙회장상을 받았다. 2014년도 6월에도 농협중앙회 주관 새농민상을 수상하여 부상으로 해외연수도 다녀오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현재 연 매출 3억 이상, 순 소득 1억원 이상을 올리고 있다.

 

농사일도 열심히, 취미활동도 열심히

분주하게 살아가는 농민에게 여가생활도 매우 중요하다. 삶의 활력과 건강을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취미 생활을 위해 이것저것을 접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국궁(활)을 알게 되었다. 국궁은 우리나라 전통 무예로, 예전에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분야였으나, 영화 ‘활’의 흥행으로 지금은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부안의 심고정(審固亭)은 부안군의 유서깊은 활터이다. 부안군청 뒤 성황산 중턱에 옛날부터 자리 잡고 있다가 2012년 11월에 현 행안면 행산리 스포츠파크 내에 활터를 새로 지어 이전하였다. 현재는 사원(회원) 13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필자는 2008년 12월에 집궁(입회)하여 2009년도 전북도민체전에서 개인전 금메달, 2010년도 곡성군 전국대회에서 개인전 장년부 1등, 남원시 도 대회 개인전 1등 등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였으며, 올 6월에는 대한궁도협회에서 주관하는 승단 시험에서 8단에 합격하였다.
금년 5월에는 국회 보건복지부 김춘진 위원장님 표창을 받고 현재 심고정 사범을 맡아 후배 양성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농사일도 열심히 하지만, 취미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심신의 안정과 건강을 도모하고 있다.

 

값진 삶의 과정

서두에서 필자는 현재 농업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모든 분야에서 쉽고 편한 일만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를 얼마만큼 슬기롭게 대처하고 열심히 노력하는가에 따라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32년 여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농사를 짓고, 아내와 결혼을 하여, 삼남매를 성장시키는 일까지 어떤 선택이 현명하게 잘 살아나가는 것인지에 대해 무던히 고민하였다. 그때마다 나의 선택은 진실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였으며, 자녀들 또한 그런 가치관으로 자랄 수 있게 가르쳐왔다.
그런 값진 삶의 과정 속에서 필자는 항상 보람을 찾아왔으며, 가족을 포함한 지역 사회의 소중하고 좋은 분들의 덕분에 지금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안 농민의 삶은 늘 고단하나 벅찬 기쁨 또한 결코 적지 않다. 행복은 항상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 편이라는 사실을 필자는 믿는다.

 

/김정(계화면 조포2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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