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이야기』와 부안의 ‘발견’ 혹은 ‘재발견’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기사 “지자체 지원 거절하는 잡지, 다 이유가 있다”(2016.1.26)를 다듬고 새로 쓴 것이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행되는 『안동』이 스물일곱 성년에 이른 반면, 전라북도 부안에서 간행되는 『부안이야기』는 이제 겨우 일곱 해를 넘겼다. 『안동』이 격월간 대중지인데 반해 『부안이야기』는 매해 두 차례 내는 역사 문화 중심의 반년간지다. 그러나 올 6월에 통권 14호를 낸 『부안이야기』가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는 예사롭지 않다. 한적한 시골의 역사와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한가한 호사 취미가 아니라 그것을 현대적 의미로 되살리고자 하는 지역 사람들의 집단 정체성의 모색이기 때문이다.

 

‘부안 땅, 부안 사람 이야기’

『부안이야기』를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2월이다. 벗들과 함께 변산을 여행하고 나서였다. 부안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며 눈도 호사를 누렸지만 정작 거기서 만난 부안 사람들과 나눈 우정과 연대를 잊을 수 없다. 돌아와 우편으로 받은 책자가 『부안이야기』였다.
『부안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적잖이 흥분했던 것 같다. 예사롭지 않은 판형과 제호가 인상적이었고,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편집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 책자가 고작 인구 5만의 시골, 부안에서 펴낸 책이라고? 정작 나를 긴장하게 한 것은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자에 담긴 이야기의 부피와 무게였다.
『부안이야기』를 꼼꼼하게 읽고 나서야 나는 거기 담긴 게 한갓진 지역의 역사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얇았지만, 거기에 담긴 것은 지역 사람들의 삶과 현실을 가늠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뿌리인 지역사와 땅을 성찰함으로써 삶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이르고자 하는 힘겨운 노력이었다.
『부안이야기』가 지향하는 ‘지역 문화’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놀라웠던 것은 그것이 이 땅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문화 시스템과는 꽤 떨어져 있는 ‘아웃사이더’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또한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나마 『부안이야기』의 지향과 실천이 자생적 ‘지역 문화’의 실마리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전라북도 남서쪽 변산반도에 자리 잡은 부안은 인구 5만7천여 명(2016년 9월 현재), 1읍 12개면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동쪽은 정읍시, 북쪽은 동진강 하구를 경계로 김제시, 남쪽은 곰소만을 경계로 고창군과 이웃하고 있다. 군의 서쪽이 황해바다, 북동부는 넓고 비옥한 평야를 이루고 있는데 겨울철엔 눈이 많다.
부안에는 변산면 일대의 변산반도 국립공원을 비롯하여 유명 관광지도 많다. 내소사, 개암사 같은 유서 깊은 절집과 줄포에서 곰소에 이르는 서해바다, 내변산의 직소폭포, 서해의 장엄한 낙조, 채석강의 절경 등은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명승지인 것이다.
그러나 부안은 사람들에게 ‘반핵 투쟁’으로 더 인상 깊은 지역이다. 군수와 정부가 부안 위도 핵 폐기장 유치를 일방적으로 추진하자 이에 반대해 주민들은 치열하게 싸웠다. 주민들의 분노와 저항은 국가권력의 폭력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투쟁으로 성장하면서 자발적 투쟁공동체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부안은 주민들 스스로 조직한 ‘주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반대의사를 보여줌으로써 핵 폐기장 유치를 막아냈다.
2년여에 걸친 이 싸움은 주민들의 단결과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해줬다. 그러나 오래 지속된 긴장이 일단락되자 사람들을 허탈감에 빠졌다. 투쟁의 성과물로 「부안독립신문」과 자생적 모임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도 했지만 이들만으로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했다.
가라앉은 지역 분위기를 새롭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문화운동’임을 역설한 이가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부안여중고 재단의 김석성 이사장이 그이다. 오랫동안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다 노년에 귀향한 김 이사장은 ‘부안문화재단’을 세우고자 동분서주했고, 지역 역사 문화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통해서 젊은이들이 지역에 관심을 갖도록 도왔다. 부안역사문화연구소(소장 신영근, 아래 연구소)는 부안군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기록, 정신문화 활동 등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는 게 주목적이다. 관련 정보와 자료를 축적하고 간행물도 발간한다. 요컨대 연구소는 부안 사람들의 따뜻한 삶과 열정을 기록함으로써 부안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한다.
연구소가 매년 두 차례(6월과 12월의 15일) 펴내는 정기간행물이 『부안이야기』다. 제호 앞에 쓴 ‘부안 땅, 부안 사람 이야기’를 주 내용으로 부안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미래를 고민하려는 책이다. 비록 역사 문화 연구 등 주제가 만만찮긴 하지만 『부안이야기』는 전문적이기보다는 쉽고 대중적인 글쓰기를 선호한다.
『부안이야기』는 늘 새로운 필자를 찾으며 매회 면단위 특집을 내려 하지만 글쓴이를 확보하지 못해 지나치기도 한다. 필자들에게 원고료는 주지 못하고 운영위원들의 분담금과 후원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는 재정은 인쇄비로만 쓴다.

 

지자체 지원을 마다하는 ‘독립매체’

운영위원은 교수, 지역의 교육계, 치과의사, 개인 사업자 등으로 그 구성이 매우 다양하다. 지역 출신 외에도 타관 사람도 있지만 부안을 사랑하고 부안의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뜻은 다르지 않은 이다. 초기에 어려울 때엔 신영근 소장을 비롯한 치과의사 네 분이 구멍 난 부분을 감당해줬다.
2009년 12월에 창간호를 낸 이래 지금까지 7년 동안 『부안이야기』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부안군청의 지원을 받는가, 문화원에서 발행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 이어진다. 그러나 『부안이야기』는 ‘재정자립이 편집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여기므로 지자체의 지원은 받지 않는다.
『부안이야기』는 실제 편집장 역할을 하는 국가기록원 학예연구사인 김병남 박사를 비롯해 역사 교사인 김중기(부안여고), 정재철(연구소 연구원), 「부안21」을 운영하는 사진작가 허철희가 편집을 맡고 있다. 편집위원 중 절반은 부안 출신이 아니라 전주(김중기)와 정읍(김병남) 출신이다. 어떻게 보면 부안 출신이 아니기에 이를 수 있는 균형감은 이들이 가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안이야기』의 꼭지는 다양하다. 권두 ‘칼럼’에는 지역 현안에 대한 담론이나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싣고, ‘부안을 말하다’ 등의 특집에는 고장의 산, 들, 바다를 하나씩 골라 집중 조명한 몇 편의 시리즈 글들을 연재한다. ‘몽유부안도’에는 고향의 옛 추억을 담은 회고록을, ‘이슈와 현장’에는 지역 현안을 비롯하여 특정 기관이나 단체 또는 인물들의 생생한 활동상을 소개하고 있다.
‘부안실록’에는 역사 또는 옛 문헌 속에 나타난 우리 고장의 모습을 연재하고, ‘발굴 이 기록!’에는 숨겨진 옛일이나 자료를 찾아내고 조사하여 싣는다. 책 말미에는 지난 6개월간 부안에서 일어난 주요 소식들을 모아 소개하는 ‘부안 단신’을 배치했다.
『부안이야기』에서 일관되게 지향하는 것은 부안의 ‘발견’, 혹은 ‘재발견’이다. 『부안이야기』는 기사를 통해 변산반도와 부안의 청자, 계화도와 칠산바다, 새만금과 줄포를 새롭게 조명했다. 역사적 천착의 결과물인 ‘부안실록’, ‘부안의 인물’ 같은 꼭지를 통해서 부안과 동학농민전쟁, 미륵신앙과 정감록, 원효와 이규보, 백제 부흥의 중심 주류성, 아나키스트 백정기 등이 역사 속에서 불려나왔다.
한편 ‘발굴 이 기록!’ 꼭지에서는 부안군 주산면에 살던 기항현(奇恒鉉, 1844~1914)의 『홍재일기(鴻齋日記)』를 발굴 연재하고 있다. 홍재가 1870년부터 1911년까지의 일상과 사건, 사고를 기록한 이 일기를 통해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부안-고부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부안이야기』는 2천여 부를 인쇄해 지역민과 출향인, 지역의 관공서와 병원, 미용실과 쉼터 그리고 부안과 인연을 맺은 애독자 등에게 무료로 배포된다. 부안여고 역사문화동아리 ‘얼아로미’ 회원들이 초창기부터 발송 작업을 맡아 힘을 보태고 있다.

 

‘연구총서’에서 ‘부안 아카이브’까지

역사도 재정도 보잘것없는 시골 연구소지만 부안역사문화연구소가 펼치는 사업은 연간 두 차례 펴내는 『부안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상근직원도 없고, 저마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짬을 내어 이런저런 사업에 힘을 보태는데도 구성원들의 팀워크는 예사롭지 않다.
올 3월에는 첫 ‘부안역사문화연구소 총서’로, 정재철 편집위원의 『사진으로 보는 해방 전 부안 풍경』을 펴냈다. 일제시대 부안의 생활사를 다룬 이 책은 『부안이야기』를 통해 쌓아온 연구 조사의 성과를 오롯이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부안이야기』의 발행주기를 줄이기보다는 연구조사의 성과를 총서로 발행하는 데 힘을 모으려는 연구소의 뚝심이 빛나는 대목이다.
연구소는 『부안이야기』 발간 외에도 몇 가지 행사를 연중 추진하고 있다. 주제가 있는 탐구 활동도 그 하난데 2013년에는 ‘변산 문화 속으로 따라 걷기’를 주제로 한 탐방 행사를 진행했다. 변산 지역을 대상으로 역사문화 유산과 자연환경 등을 집중 탐사한 이 행사는 부안의 역사 문화 연구의 저변을 넓히는 일로 자리매길 만하다.
또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부안 지역 문화유산을 자료화하는 일이 그중 하나다. 가칭 ‘부안 아카이브’라 부르는 이 작업은 부안의 역사, 문화, 자연자원 및 각종 콘텐츠를 발굴하여 보존하고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사이버 상에 ‘기록보관소’를 만드는 것이다. 고문서와 사진, 영상, 기록물 등 부안 관련 각종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유지 보수해 나가려는 이 작업은 지금도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지역사 연구 자료실과 문화 공간 운영 계획도 빼놓을 수 없다. 연구소 김형주 고문이 그동안 연구에 활용해 오다 기증한 향토사 사료, 고서류, 각종 역사와 문화 관련 단행본 등 수백 점의 자료들을 모아 운영할 학술실과 부안 관련 사진 등을 전시하는 갤러리 형태의 문화 공간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부족한 재정, 의욕만으로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 지금 이들은 숨을 고르는 중이다.

 

‘창간호가 폐간호’라는 속설을 뛰어넘다

1년에 두 번밖에 펴내지 못하는 책이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고 무가지를 만드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힘에 겨운 일이다. 편집진은 그래도 거르지 않고 『부안이야기』를 펴낼 수 있었던 것은 원고료 없이 기꺼이 귀한 글을 보내준 필자들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록 이제 겨우 통권 14호를 낸 일곱 살 유년에 불과하지만 『부안이야기』의 도전과 성과는 다른 시 · 군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동안 인구 6만 명이 채 되지 않는 농촌 지역에서도 해낸 일이라면서 『부안이야기』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지역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예의 지역에서 책을 펴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신영근 소장은 “지역에서 만드는 잡지는 ‘창간호가 곧 폐간호’라는 속설처럼 시작은 쉽지만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고 하면서도 “어떤 곳의 지원도 받지 않고 무가지로 잡지를 만들어낸다는 것”도 자신들의 도전이라고 고백한다.
2009년 12월 15일에 세상과 만난 『부안이야기』의 ‘도전’은 ‘서로 돕기에 편안한 [부안(扶安)]’ 땅과 사람, 삶과 역사를 아우르며 7년의 연륜을 쌓으며 안착했다. 국외자이면서도 『부안이야기』가 지역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통해 늠름한 성년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은 이들의 예사롭지 않은 ‘도전’의 의미를 알고 그것을 응원하기 때문이다.

 

/장호철(전 구미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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