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부안상설시장 체험

작년 여름 처음 시장체험 학습을 준비하면서 지켜본 아이들의 모습은 참 인상 깊었다. 아이들은 매일 등교하면서, 또 친구들과 만나면서 시장을 지나쳤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경제활동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있다면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간 정도 뿐. 그런 아이들이 전통시장에서 상인들과 정을 나누고 시장의 현실을 체험하는 모습은 퍽 신선하게 보였다. 그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 어떤 교육 현장보다 시장이 더 많은 것들을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남겨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들었다. 그런데 마침 『부안이야기』에서 ‘부안읍 특집’으로 부안상설시장과 관련된 원고 요청이 들어와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쓰게끔 하였다. ‘전통시장 체험학습’은 지역경제의 바로미터인 시장 체험을 통해 침체된 지역사회의 현실을 파악하고, 더불어 시장 조사와 다양한 시장 체험, 창업 아이템 경진대회를 통해 지역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보는 활동까지 연결하여, 아이들에게 ‘누군가가’ 아닌 ‘내가’ 함께 하는 곳을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 배우나 실제 ‘경제’를 아는 것은 아니다. 지역 사회의 역할과 특성 등을 글로 배우고 익힐 수는 있으나 그것이 실제 ‘지역사회’를 체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실제 체험활동을 통해서 몸으로 느낀 시장, 귀로 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내 고장을 알게끔 이끌 것이고, 이것이 지역사회기반 진로체험인 ‘전통시장 체험학습’의 의미이다. 따라서 다소 서툴지라도 아이들의 진솔한 지역사랑을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_진경아(지도교사)

 

부안상설시장에 가다

8월 12일 커다란 태양이 강렬한 열기를 내뿜어 아스팔트가 지글지글 열이 오른 여름, 오늘은 부안상설시장에서 시장체험을 하게 되었다. 먼저 부안상설시장에 관한 설명을 간략하게 듣고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도 들어서 창업아이템을 구상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창업아이템을 구체화하기 위해 시장 조사에 나섰다. 시장에서 가장 위축된 사업이 의류 관련 사업이라는 말씀을 듣고 먼저 한복상회에 찾아 갔다.
상인 분께 상회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드신 점이 무엇인지 여쭈어 봤다. 한복상회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젊은 사람들이 도시 지역으로 나가기 때문에 소비층이 노년층으로 줄어들어 매출에 손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또한 타 지역 유명 한복점의 원단과 부안 한복상회의 원단을 비교하면 질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고 가격도 더 저렴하다는 점도 강조하셨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브랜드 가치가 있는 한복을 비싼 값을 주고 사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것도 한복상회를 운영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상인 분과의 인터뷰로 시장 내 가장 쇠퇴하는 사업인 주단으로 창업아이템을 정할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다.

 

시장 속의 순대, 떡볶이 그리고 보리밥

시장 조사를 하느라 로봇청소기처럼 시장 안을 이리저리 구석구석 돌아다닌 우리의 배 속은 허기짐으로 아우성을 치며 온 몸으로 표현해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듯 우리는 가까운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와 순대를 먹었다. 쫄깃한 떡볶이와 야들야들한 순대가 함께입 안으로 걸어와 혀끝부터 천천히 한 발짝 내딛어 목구멍에 점점 가까워졌다. 둘은 마치 하늘이 정해준 운명처럼 찰떡궁합이었다. 또 빨간 코트를 뺏어 입은 순대가 입 속으로 들어올 때 떡볶이의 옷을 빼앗아 순대에게 그 옷을 직접 입혀 주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 빨간 코트를 입은 순대는 제 옷인양 잘 어울렸다. 순대와 떡볶이의 환상적인 무대가 막을 내린 뒤 우리는 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미 배 속 방 한 칸에 순대와 떡볶이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보리밥이 내 앞에 놓여진 순간 청소부들이 일사불란하게 그들을 밀어내고 빈 공간을 남겼다. 하지만 워낙 그들의 양이 많아 보리밥이 들어설 자리가 부족했다. 그 좁은 곳에 보리밥을 미어터질 듯이 우겨 넣으면 배가 빵빵할 것 같아 아쉽지만 보리밥을 좀 덜었다. 오색 빛깔을 담은 나물 한 두 젓가락, 짭조름하고 구수해서 시골 냄새 풍기는 된장 한 숟가락, 화가 나 새빨간 얼굴을 한 고추장 한 숟가락, 생생한 웃음이 담긴 상추 한 움큼, 부슬부슬 머리칼 같은 김 가루 한 움큼이 담긴 밥그릇은 육지와 바다의 조화이다. 한 숟가락 크게 떠 혀끝에 밥알이 닿는 순간 알알이 입 속을 돌아다니면서 바다의 물결과 바람의 입김이 한 데 어우러진 맛을 경험했다.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느릿느릿 시장 본부에 돌아왔다. 이후에 떡갈비 체험을 했다. 모든 인원을 수용할 수 없어 인원을 둘로 나눠 체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 조는 후발대라서 선발대가 떡갈비를 체험하는 동안 창업 아이템 경진대회를 위해 회의를 진행했다. 우리에게 외식업과 포목업 두 갈래의 길 중 하나의 길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외식업은 사람들이 실제로 창업할 때 보편적으로 선택되는 분야 중 하나이다. 그리고 부안의 특산물을 활용하면 다방면인 메뉴를 개발할 수 있다. 따라서 창업 아이템을 외식업 분야에서 선정한다면 다른 분야에서 창업 아이템을 고려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순조롭게 창업 아이템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다른 조들도 모두 창업 아이템을 음식으로 삼았기 때문에 비슷한 아이템이 등장하여 서로가 독창성을 상쇄할 것 같았다.
한편 포목업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고 거리를 오가는 것처럼 부안에서 주목받을 요건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그래서 부안에서 한복의 특색을 살려 이목을 끄는 아이템을 개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신선한 소재였기 때문에 쉽사리 외식업 분야에서 창업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으로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또 거의 대부분의 조가 창업 아이템을 외식업으로 정했기 때문에 우리가 외식업에서 창업 아이템을 정하는 것은 다른 조와 아이템이 겹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조원들과 많은 얘기를 나눈 후 우리 조는 포목업을 선택했다. 따라서 한복이 우리의 창업 아이템이 되었다.

 

사장상인들의 노력 – 떡갈비 만들기

기로에서 갈팡질팡한 우리는 드디어 한 갈래를 선택한 후 떡갈비를 만드는 것을 체험하러 갔다. 떡갈비 체험은 부안상설시장 상인들이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떡갈비는 돼지고기와 양념장과 각양각색 야채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고, 그 자리에 우리 고장의 특산물 오디도 같이 자리하여 더더욱 각별한 체험으로 다가왔다. 대형마트 등의 시식코너와 달리 떡갈비를 직접 만들어보는 노력은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떡갈비 체험은 우리 땅에서 생산한 물품을 우리가 가공하고 이를 시장에서 직접 판매하여 결국 소비자인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는 로컬 푸드의 운영원리를 깨닫게 해주었는데, 여기에 맛과 영양까지 생각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더불어 전통시장의 정감어린 풍경까지 더해지니 마음에 더욱 소중한 체험으로 다가왔다.
떡갈비는 치대기 전에는 모든 재료가 함께 있지만 따로따로 노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번 치대니 모든 재료가 한 데 어우러져서 반죽 같이 되었다. 마치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못 이겨 푸석푸석해진 흙덩이 위에 빗방울이 내려 한 덩이로 반죽하듯, 메마른 피부 위에 통통 튀는 가루들을 한 데 뭉쳐 진흙 덩이를 만드는 것 같았다. 사장님께서 치댄 떡갈비 한 줌을 쥐어 주셨다.
떡갈비는 차가운 반죽 덩어리였다. 이것을 다시 우리의 손으로 직접 치대고 틀에 맞춰 꾹꾹 눌러주었다. 그리고 급속냉동 된 떡갈비를 직접 포장해 보았다. 포장지에 떡갈비를 넣고 그것을 진공 포장 기계에 넣고 몇 십 초만 기다리면 시중에 파는 떡갈비가 완성된다. 진공 포장 기계에 넣은 포장지가 압력 때문에 뻥 하고 터질 듯이 빵빵했다가 공기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 없이 떡갈비에 딱 달라붙어서 쪼그라지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떡갈비를 시식도 해봤다. 혀에 떡갈비가 닿는 순간 표면에 흐르는 육즙이 침샘을 자극했다.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육즙이 혀를 감싸자마자 황홀감이 최고치에 이르렀다. 씹는 질감이 쫄깃한 맛은 덜 하고 약간 거칠었지만 그것도 그 자체로 묘미였다.

 

내가 시장에서 창업을 한다면

떡갈비 체험이 끝나고 시장 체험의 핵심인 창업 아이템 경진대회가 시작되었다. 2절지에 우리의 창업 아이템에 대해 관련 그림을 그리거나 설명을 간략히 쓰면서 자유롭게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 낸 창업 아이템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다들 기발한 생각으로 창업 아이템을 잘 개발한 것 같았다.
우리 조는 폭풍우가 휘몰아쳐 높은 파도를 가로질러 항해를 하는 선원들 같이 난관에 봉착했다. 부안 시장 내에서 포목업의 활성화를 위한 최적의 대안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 외식업을 택해 창의적인 메뉴 개발을 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막연히 떠오르기도 했다. 결국 수상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의 한계가 대안 제시의 미흡으로 창업 아이템과 대안의 유기성이 부족한 것이란 걸 배우게 되었다. 또한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이런 활동들이 앞으로 우리가 직면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전통시장에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고

이제 시장 체험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시장바닥을 누비며 쓰레기를 줍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저녁 식사를 하고 난 후 모든 체험이 끝이 났다. 이번 체험을 통해 우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비해 전통 시장이 활성화가 되지 못해서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시장 내에서 노력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부안 시장이 조금이라도 발전 단계를 밟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간 기억 속에는 호객하시는 상인 분들이 남아있다. 그때는 우리를 향해 뻗은 손들이 무서웠다.
하지만 시장 조사랑 떡갈비 체험 등을 하면서 시장 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상인 분들이 본업에 충실히 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맡은 일들은 어떤 일이든 간에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수행하려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어린 시절에 그들의 직업의식을 폄하한 것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창업 아이템 경진대회에 참여함으로써 대화를 하면서 공유된 구성원들의 다양한 생각을 관용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곧 나의 배경 지식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 그들의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태도를 취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전통을 담고 있는 시장에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선소은(백산고등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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