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홍건신도비(高弘建神道碑)

 

• 종 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1호
• 분 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 수량/면적 : 1기
• 지정(등록)일 : 1984.04.01
• 소 재 지 : 전북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산132-2
• 소유자(소유단체) : 고재규
• 관리자(관리단체) : 고재규

 

고홍건신도비는 고씨들의 종중 산인 석불산(石佛山) 기슭에 있으며, 비신의 크기는 높이 330㎝㎝, 넓이 80.5㎝, 두께 26㎝이다. 석재는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귀부(龜趺)와 이수(이首)를 갖추고 있으며, 귀부의 머리가 우측으로 약간 쳐들고 있어 힘찬 기상을 느끼게 한다. 제호(題號)의 전서(篆書)는 여성재(呂聖齋)라 하였으며, 조복양(趙復陽)이 찬(撰)하고, 이정영(李正英)이 글씨를 썼다.

고홍건(1580∼1655)은 임난공신 영선군 고희의 아들로 1580년(선조 130)에 부안읍에서 태어났는데 자는 입부(立夫)요 본관은 제주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뛰어나고 기골이 장대하여 23세(선조36, 1603)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613년(광해6)에는 공신의 아들이라 하여 정3품 통정대부의 가자(加資)를 받았다.

1624년(인조2)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공주로 피난하였다. 이 공로로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

1636년(인조14) 병조호란 때에는 왕이 남한산성으로 몽진하니 어가를 모시고 호종하였으며 1642년(인조20)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總管)을 거쳐 서흥부사를 역임하고, 1647(인조25)에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올랐다.

1651년(효종2)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낸 뒤, 1655년(효종6)에 76세로 세상을 떠나니 조정에서는 예신(禮臣)을 보내 예장하고, 공신회맹문(功臣會盟文), 회맹록(會盟錄), 호성원종공신록권(扈聖原從功臣錄卷), 단서철권(丹書鐵卷) 등을 하사하였다.

/허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