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입석(保安立石)

 

• 종 목 :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6호
• 분 류 : 유물 / 기타종교조각/ 민간신앙조각/ 석조
• 수량/면적 : 1기
• 지정(등록)일 : 1974.09.27
• 소 재 지 : 전북 부안군 보안면 상립석리 산35
•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
• 관리자(관리단체) : 부안군

보안면 상입석리(윗 선돌) 마을 뒤의 언덕에는 사방 한 칸 정도의 선돌 보호각이 있다. 이 선돌은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6호 ‘보안입석’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마을이름도 선돌(立石)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선돌은 높이가 2.6m, 가로 75㎝에 두께 59㎝로 매우 육중하다. 약간 비스듬히 자른 듯 해 보이며, 윗부분이 약간 넓다. 앞면에는 불상형태의 무속탱화가 음각되어 있는데 조각한 수법으로 보아 근래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선돌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사시대에 부족간의 경계표식일 것이라는 설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지역 여인들의 아들바람과 재앙퇴치, 소원 등을 비는 무속신앙의 신체기능을 하고 있으며, 음력 2월 초하루 날 마을의 부녀들이 모여 공동으로 당제를 지내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 선돌에는 부덕한 부자(富者)를 도승이 응징했다는 ‘장자못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부터 1100년여 년 전 신라 51대 진성여왕 무렵에 이 입석리에서 동쪽으로 4km쯤 되는 장자터 마을에 욕심 많고 인색한 큰 부자가 살았는데 너무나 나쁜 짓만 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름하게 생긴 중이 찾아와서 시주를 청하는 염불을 하니 욕심꾸러기 그 부자 영감이 중의 바랑 속에 두엄을 가득 넣어 주었다. 고맙다고 염불을 외우며 돌아가는 중을 보고 마음씨 착한 이집 며느리가 쌀 한 말을 퍼가지고 시아버지 몰래 뒤쫓아 가서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사과하니 중이 말하기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절대로 뒤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나를 따라 오너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으로부터 십리쯤 따라가다가 하도 궁금하여 뒤를 돌아보니 천둥 번개가 치며 자기 집이 물바다가 되어 큰 방죽으로 변하여 버리는 것이었다. 너무도 엄청난 재앙에 넋이 나간 며느리는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하는 말이

“아까운 것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베 짜는 허리띠가 아까워 못 견디겠다.”

하고 혼자 씨부렁거렸다. 중이 듣고

“이 여자도 생명보다 물질을 더 좋아하는 욕심쟁이로구나”

하고 그 자리에 돌기둥(선돌)을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며느리 뒤를 따라오던 개도 돌로 만들어 버려 선돌에서 10m쯤 떨어진 곳에 지금도 개바위가 남아 있다.

어느 때부터인지 이 애달픈 사연이 담겨 있는 이 선돌이 영험이 있다하여 아들을 못낳는 여인들이 이 선돌에 치성을 드리고 있으며, 그 욕심쟁이 부자가 살았다는 장자터 마을 옆에는 지금도 장자못이라는 방죽이 있다.“고 한다.

<소재지:부안군 보안면 입석리/제보자:문관옥(文官玉, 남, 54세, 부안군 보안면 영수동)/1990년 당시)/출처:전설지(1990.08.20. 전라북도 발행)>

/허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