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장(청자)(이은규) (砂器匠)

종 목 :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9호
• 분 류 : 무형유산 / 공예기술/ 도자공예/ 자기공예
• 지정(등록)일 : 2004.09.10
• 소 재 지 : 전북 부안군 부안읍 유천리 166-41
• 관리자(관리단체) : 부안군

 

부안 유천리 청자가마터는 전라남도 강진의 청자가마터와 함께 우리나라 청자의 대표적 생산지로서 고려시대 11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순청자, 상감청자를 굽던 곳이다.

이곳 넓은 벌판의 구릉 주위에는 40여개소의 가마터가 산재해 있는데, 1930년대 일본인들이 발굴하면서 우수한 파편을 가진 가마터의 퇴적층은 거의 파기되었으며, 또 이곳에서 나온 수백 점의 고려청자는 대부분 일본으로 빼돌려졌다.

출토되는 자기로는 순청자, 상감청자, 철회청자, 진사청자, 백자, 철유자기 등이 있고, 매병(梅甁), 주병(酒甁), 호(壺), 탁잔(托盞), 완(梡), 주자(柱子), 합(盒), 접시, 대접 등의 다양한 기형에 음각, 상감으로 시문된 국화문, 모란문, 운학문, 수금문, 인물문양 등의 자기편들이 발견되고 있어 청자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청자는 중국의 영향으로 탄생했지만, 머지않아 중국청자의 전성기였던 송나라 청자보다도 품질 면에서 월등히 앞서게 되어 송나라의 귀족들도 송나라 청자보다는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을 더 높게 평가하였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독특한 상감기법의 「상감청자」를 꼽았는데 부안의 유천리는 특히 상감청자의 대표적 생산지이다.

이 터에서 부안에 숨겨진 고려비색 재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도인(陶人)이 있다. 바로 이은규(59) 사기장이다. 사기장이란 예전에는 국가기관인 사옹원(司甕院)에 소속되어 사기를 만드는 장인(匠人)을 이르는 말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에 관영사기제조장(官營沙器製造場) 분원(分院)을 두어 왕실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를 만들게 했는데, 후기에 들어 관요(官窯)를 폐쇄하자 도공들이 각지로 흩어져 민간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민요(民窯)가 번창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다루는 공예제품에 따라 제와장(製瓦匠)·옹기장(甕器匠)·도기장(陶器匠)·사기장(沙器匠)으로 분류되는데 사기장이란 여러 가지 흙을 혼합하여 1,300℃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사기그릇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충남 공주 출신인 그는 큰형인 분청사기의 대가 청파(靑坡) 이은구(李殷九) 선생의 영향으로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는 고 해강(海剛) 유근형(柳根瀅, 청자전공) 선생 문하에서 8년, 큰형(靑坡窯)에게서 5년간 고려청자의 비법을 배웠다.

그 뒤 독자적인 도예가의 길을 모색하던 중, 고려청자 재현에 뜻을 품고 1986년 부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는 곧바로 세계 명품 고려청자를 굽던 그 곳 보안면 유천리에 정착해 ‘유천도요’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고려청자재현에 전념해 왔다. 부안에 와서 유천리산 고려청자를 접하면서 그가 그때까지 익혔던 청자제조기법들은 백지상태로 돌려야 했다. 그런 그는 전해지는 기법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실험해보고, 또 그것들을 이곳에서 출토되는 청자파편들과 비교해 가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난 2003년 고려비색을 재현해 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가 재현해 낸 청자를 두드리면 맑고 청아한 쇳소리가 난다. 그리고 표면을 30배율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 투명한 구슬모양이 관찰된다. 이는 유천리 일대에서 발굴된 청자파편과도 거의 일치하는데 느릅나무 잎이나 떡갈나무 잎 등 자연에서 채취해 만든 잿물을 입히고, 전통 재래식 가마에서 구어야만 이러한 투명한 구슬모양이 형성되고, 두드리면 쇳소리가 난다고 한다. 이은규 사기장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조심스럽게 ‘95% 지점에 도달한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전라북도에서는 이런 그의 고려청자 제조기법과 장인정신을 인정하여 2004년 9월 10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9호 사기장(청자 제작)으로 지정하였다.

/허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