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도띠뱃놀이(蝟島띠뱃놀이)

• 종목 : 중요무형문화재 제82-3호
• 분류 :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의식/ 무속의식
• 지정(등록)일 : 1985.02.01
• 소재지 : 전라북도 부안군
• 관리자(관리단체) : 위도띠뱃놀이보존회

위도가 조기어장으로 성시를 누리던 시절,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위도 곳곳에서는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 공동제(共同祭)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조기가 칠산바다에서 자취를 감추자, 지금은 예전의 그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멸치잡이와 김양식 등을 주업으로 하는 한적한 어촌으로 변해 있다. 따라서 성대하게 치러졌던 풍어제도 그 맥이 끊기거나 간략해졌는데 대리(大里)마을의 ‘띠뱃굿’만은 유일하게 원형을 잘 간직한 채 그 맥을 잇고 있다. 1978년 춘천에서 열린 제19회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아 부안의 귀중한 민속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1985년 ‘위도띠뱃놀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었다.

위도띠뱃굿은 음력 정월 초사흗날 이른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어부들의 삶 속에서 녹아 있는 소리와 풍물, 신명난 춤을 추며 축제분위기로 이어진다. 원당(願堂)에서 지내는 원당제, 마을의 主山돌기, 바닷가의 용왕제와 띠배에 액을 띄워 보내기 순으로 진행되는데, 산, 마을, 바다 등 마을 전체는 제의(祭儀)의 공간이 된다. 마을의 안태와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육지 당산제의 성격과 같은 이 제의는 풍어기원의 깊은 신앙성과 농악에 따른 술배소리, 애용소리, 가래질소리 등, 뱃노래와 술과 춤이 따르는 놀이가 결합된 마을 축제로서 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祭儀는 매우 엄격하게 치러진다. 제의 준비는 전 해 섣달 초에 마을회의에서 협의하여 결정하는데 제관(祭官)으로 제만(化主) 1명, 원화장(化長) 1명, 부화장 2명, 독축관(讀祝官) 1명 등 5명의 제관을 祭日인 정월 초사흗날의 생기복덕(生氣福德)에 맞추어 선정한다. 제만은 그해 당제의 총책임자로서 제주(祭主)다. 원화장은 부책임자로 제물(祭物) 책임을 맡으며 부화장 두 사람은 제만과 원화장 두 사람을 도와 제사 준비를 하는데, 섣달 20일경이 되면 동네 어귀에 금줄을 치고 잡인의 출입을 금한다. 부정을 막기 위해서이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는 산막으로 옮겨가도록 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화주(제주), 원화장(제물 준비하는 사람), 부화장(제물 나르는 사람)을 뽑는다. 뽑힌 화주나 화장은 일체의 부정한 것을 멀리 하고, 찬물로 목욕재계한 후 제물을 정성껏 준비하는데 말을 해서도 안 되고 물건 값을 깎아서도 안 되며 최상품의 제수로 준비한다.

화장이 제물을 준비하는 동안 마을사람들은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는 정월 초하루부터 시작하여 초사흗날 띠뱃굿을 끝내고도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흥겹게 굿을 치며 마을 곳곳, 집집마다를 돌며 지신을 진압하여 잡귀를 쫓고, 마을과 가정의 안녕을 빌어준다. 이때 집집마다에서는 쌀이나 돈을 내놓는다. 이때 모아진 쌀이나 돈으로 이듬해 제물을 준비한다.

정월 초사흗날, 날이 밝으면 영기를 든 기잡이를 선두로 제관, 무녀, 그리고 제물을 짊어진 화장, 선주, 그 뒤를 따라 10여 명의 굿패가 흥겹게 굿을 치며 뒤따르고, 오방기와 뱃기를 든 기수와 마을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원당에 오른다.

대리 원당은 칠산바다가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동남쪽 뒷산인 당제봉(해발 200 여m) 정상,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있다. 이 당집이 언제 지어졌는지 문헌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벽에 ‘大猪項重修序’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글자의 퇴색이 심하여 이마져 알아볼 수가 없다. 마을 노인들에 따르면 옛조상들이 이 마을에 정착, 어업을 주업으로 하여 살면서부터 堂神을 모셨을 것이라고 한다.

원당의 당신은 모두 12서낭이라고 말하고 있으나(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이는 없다. 그러나 무녀의 사설 중에는 ‘열두 서낭 앞에 인사를 드리는 굿’이 있다.), 당집 안에는 모두 10位의 서낭이 모셔져 있다. 최초로 堂집을 지었던 당주(堂主)를 신으로 섬겨 11서낭이 되는 셈이나 그렇더라도 12번째 서낭 명칭이 불분명하다. 원당의 북벽에는 왼편으로부터 ‘원당마누라’, ‘본당마누라’, ‘옥저부인’, ‘애기씨’의 네 서낭이 걸려 있으며, 동벽에는 북쪽으로부터 ‘물애기씨’, ‘신령님’, ‘산신님’의 세 서낭이, 서벽에는 ‘장군님’이, 그리고 좌우 문에는 수문장격인 ‘문수영대신(한쌍, 2위)’이 각각 모셔져 있다.

원당 안에 모셔진 제신(諸神)에 대한 내력이나 신격, 그리고 역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집의 이름이 원당이고, 또 여러 서낭 중 1년 동안 배에 모실 서낭을 내리는 깃굿 과정에서 선주들이 무녀로부터 깃손을 받을 때 제일 많이 내림받기를 원하는 서낭이 원당마누라, 본당마누라, 장군서낭, 애기씨서낭 순인 것으로 볼 때 이 원당의 주신은 원당마누라로 여겨진다. 양쪽 문을 지키고 있는 ‘문수영대신’은 당 안의 여러 존신을 받들고, 잡귀 등의 침입을 막는 구실을 하는 최하위 신격으로 여겨진다.

“기도가 있으면 반드시 응답하니”

대리 사람들은 원당에 모셔진 신들이 산과 마을, 바다 등을 관장하며 마을의 평안과 무병장수, 풍어를 돕는다고 믿고, 받들고 있다. 대리 원당은 위도 뿐 아니라 서해안 지역에서 역사가 깊고 영험하기로 소문난 당이다. 특히 서해안 지역에서 조업하는 어민들이나 칠산어장을 오고가는 어민들에게 대리 원당은 매우 절대적인 존재였다. 이들은 원당 앞을 지날 때면 원당에 올라 제를 지내거나 배 위에서 예의를 갖춰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들은 이 원당이 위도를 중심으로 하는 칠산어장(七山漁場)을 관여하는 신앙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리 원당이 칠산어장을 관리했을 가능성은 위도면 대리 서진석(75세)씨 집안에 전해오는 『원당중수기(願堂重修記)』의 내용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중수기에는 원당 중수 때 돈을 기부한 어민들 가운데 가까이는 위도와 부안을 포함한 전북 지역, 멀리는 충남, 전남, 황해도 등 다양한 지역의 어민 이름이 보인다. 이를 통해 대리 원당은 서해안 지역의 어민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신앙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원당중수기 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고, 문서를 작성한 해인 ‘庚子’는 1900년이다.

“돌아보건대, 무릇 대저항리의 원당은 큰 바다의 험준한 봉우리 위에 위치하여 신령스럽고 기이한 기운이 특별히 이곳으로 모여들어, 사람들이 모두 우러르고 숭배합니다. 堂神이 신령하여 □…□기도가 있으면 반드시 응답하니, 8도 沿路에 있는 큰 □…□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 모두들 그(堂神의) 그윽한 가호를 받아서 재물이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향과 예물을 올려 축원하기를 누가 정성껏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원당을 세운지가 이미 오래되어 비바람이 새고 스며들어 보수하여 고치는 것이 시급한데, 財力이 넉넉하지 못하여 마음 속의 경영한 바를 괴롭게도 (실현할) 좋은 방도가 없습니다. 원컨대 각처의 크고 작은 배 여러분들께서 특별히 함께 구제할 의리를 생각하시어, 각각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내어서 마땅함에 따라 도와주시어, 이 원당을 일신할 수 있게 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경자년 3월 일/蝟島都執綱 이인범(手決)/化主 김기서, 서익겸, 이석겸, 신득삼, 백윤서, 백자천, 김치경, 김태서”

원당에 도착하면 오방기는 당집의 동, 서, 남, 북, 중앙에 세우고 화장이 지게에서 제물을 내려 진설을 한다. 오방기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동방청용장군(東方靑龍將軍) – 청색
서방백호장군(西方白虎將軍) – 백색
남방주작장군(南方朱雀將軍) – 적색
북방현무장군(北方玄武將軍) – 흑색
중앙황제장군(中央黃帝將軍) – 황색

제물은 회식밥, 쌀 두 말, 콩 한 말, 돼지머리, 술, 과일, 포이다. 진설이 끝나면 농악이 멈추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화주가 축문을 읽는다.

축문은 다음과 같다.

祝文

“送舊迎新하여 歲在 ○○年 正月 ○○ 朔參日 全羅北道 扶安郡 蝟島面 大里居住者 漁民一同 發願 敢昭告于
山神靈大神 玉笛婦人靈大神 將軍靈大神 兒哥氏靈大神 原堂婦人靈大神 門守靈大神 本堂婦人靈大神 七位 靈前 發願하옵니다.
元堂下 大里洞內一村의 年厄月厄日厄時厄이 一時消滅하고 月遊月穀과 將軍太歲와 黃幡豹尾와 五土地神과 靑龍白狐와 朱雀玄武와 六甲禁衛와 十二諸神과 土尉伏龍과 一切鬼魅가 階悉隱葬하고 遠?他方하고 形消影滅하여 洞內一村 財數大通하고 萬事大吉하여 所願成就케 하여 주옵소서 所願成就 所願成就 所願成就“

독축에 이어 무녀가 축수를 하고 산신상 앞에서 당굿을 시작한다. 원당의 경내가 좁아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없으나 무녀의 사제(司祭)로 제관들과 선주들이 참여하여 명과 복과 풍어와 제액(除厄)을 기원한다.

당굿의 순서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주굿
성주가 조성되는 내력과 성주신에게 마을사람들의 명과 복, 그리고 풍어의 소원성취를 비는 굿이다.

산신굿
산신님께 마을의 안태와 소복(召福)을 축원하는 굿이다.

손님굿
손님(마마神, 疫神)을 달래고, 마을에 역병이 없게 하여 달라는 축원굿이다.

지신굿
터주대신을 위로하는 지신풀이 굿으로 富를 축원하는 굿인데 명당풀이 내용으로 되어있다.

서낭굿
서낭굿은 원당서낭, 본당서낭, 애기씨서낭의 복합된 굿으로 원당·본당·서낭굿은 각 지역의 서낭을 불러 위로하고 면장·이장 등 마을 유지들을 축복하여 주는 굿이며, 애기씨 서낭굿은 마을 어린이들의 무병장수와 부귀를 축원하여 주는 굿이다.

장군서낭굿
서해바다 모든 어장에서 고기를 많이 잡아 벌이가 잘 되게 하여 달라는 축원굿인데 이때 무가(巫歌)는 ‘술배소리’와 복합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깃굿
깃굿은 선주에 대한 축원과 풍어를 기원하는 굿으로 선주굿이라고도 한다. 선주가 자기 배에 모실 배서낭(배의 守護神)을 무녀로부터 내림받는 굿이다. 무녀가 선주에개 ‘원당서낭님을 받을 것인가?’하고 물으면 ‘예 원당서낭님을 모실랍니다.’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무녀가 선주의 손바닥에 산쌀(算米) 몇 알을 집어 주는데, 이때 그 산쌀이 짝수가 되면 그 서낭과 선주가 연분이 되어 ‘배서낭’으로 모시게 되며, 그 해엔 만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홀수가 되면 다른 서낭으로 짝수가 될 때까지 산쌀을 받아 연분을 맺어야 한다. 연분이 맺어진 서낭 이름을 한지에 써 주는데 이것을 ‘깃손’이라고 하며, 이 깃손을 뱃기의 꼭대기에 묶어 ‘깃손받기’라 하고 배서낭의 신주로 잘 받들어 모신다.

문지기굿
이 굿은 중천맥이 굿과 비슷한 것으로 굿의 마지막 순서이며, 여러 떠돌이 원혼들을 달래어 보내는 굿이다.

“만선일세 만선일세, 조기 실어 만선일세”

원당굿이 끝나면 농악을 치며 원당에서 내려온다. 오는 길에 바다로 돌출한 용바위에 올라 제수로 쓴 음식을 바다에 던져 바다에서 죽은 무주고혼들에게 풀어먹인다. 이어서 당산 옆에 정원대보름날 줄다리기를 하기 위하여 서려놓은 암수의 굵은 용줄을 어깨에 메고 두 편으로 갈라 “에해용 소리”에 맞추어 반타원형으로 돌며 主山돌기를 한 후, 마을을 한 바퀴 돈다. 일종의 지신밟기이다. 그러나 요즘은 마을 사람들 수가 적어 용줄은 생략하고, 영기와 오방기를 앞세우고 굿을 치며 마을을 돈다.

주산돌기가 끝날 시각이면 바닷가에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만든 폭 2미터, 길이 3미터 정도의 띠배가 먼 바다로 떠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배에는 ‘全羅北道 扶安郡 蝟島面’이라고 쓴 마을기와 긴 백지 위에 동방청용장군(東方靑龍將軍), 서방백호장군(西方白虎將軍), 남방주작장군(南方朱雀將軍), 북방현무장군(北方玄武將軍), 중앙황제장군(中央黃帝將軍)의 오방신장에 맞춰 쓴 액을 쫓는 깃대를 세우고, 동네 우물가나 당산나무 아래, 그리고 동네의 터가 센 곳에 액을 몰아가라고 세워 두었던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거두어 싣는다. 허수아비의 남근을 과장되게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풍요, 다산의 성신앙을 담은 것이다.

오후 2시쯤 만조가 되면 이 띠배 앞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용왕제는 무녀가 “바다를 향해 제배” 하면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바다를 향해 절을 하면서 시작된다. 이어 “황금같은 조고떼/코코마다 걸렸구나/어기여루 술배로다/술배술로 날을 새고/술배솔로 해를 지니/어찌 아니 좋을 쏘냐/이물가득 삼가득 명지가득/까득까득 실었으니/고물안에 하장아가/어서 바삐 일어나서/이물에다 호기해라”로 이어지는 무녀의 사설과 춤이 계속되며 여인들은 용왕님에게 먹일 회식밥을 내온다. 회식밥은 제수로 쓰인 음식들을 거두어 모아 물을 부어 만든 물밥이다.

용왕제를 지낸 후에는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띠배 띄워 보내기’를 한다. 마을 사람들은 농악에 맞추어 ‘가래질 소리’를 흥겹게 부르며 띠배에 용왕님이 먹을 회식밥을 퍼 담은 후, 띠배를 모선에 연결시키고, 굿패와 선주기가 모선에 올라 “돈 벌로 가세 돈 벌러 가세 칠산바다로 돈 벌러 가세(배치기소리)‘를 우렁차게 부르며 띠배를 끌고 먼 바다로 떠나간다.

마을의 재액을 모두 싣고, 풍어의 꿈도 가득 싣고 떠나가는 띠배를 향해 마을사람들은 ‘우리 마을 사고 없이, 우리 배도 사고 없이, 만선일세 만선일세, 조기 실어 만선일세…, ’ 풍어를 기원하며, 잘 가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환호성으로 전송한다.

/허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