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진서리 요지(扶安 鎭西里 窯址)

• 종 목 : 사적 제70호 
• 분 류 : 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요업/ 도자기가마
• 수량/면적 : 180,896㎡
• 지정(등록)일 : 1963.01.21
• 소 재 지 : 전북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56
• 시 대 : 고려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사유
• 관리자(관리단체) : 부안군

 

부안에는 줄포만을 끼고 진서면 진서리와 보안면 유천리, 신복리 일대에 80여 개의 고려시대 청자와 백자가마터가, 또 우동리에는 10여 개의 조선시대 초기 분청사기가마터가 있어 한국 도자기의 흐름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

진서리가마터는 진서리는 물론 인근의 연동과 신작, 구작마을 주위의 구릉에 40여 개소의 가마터가 산재해 있다. 1929년에 발견될 당시 이미 해변에 위치한 관계로 요지 일부가 유실된 상태였으며, 현재는 산록에 있는 가마터들은 경작지 개간으로, 해안가에 있는 요지들은 해파(海波)로 인한 파괴가 계속되고 있다.

진서리가마터가 본격적으로 조사된 것은 1990년과 1993년으로, 원광대학교에 의해 그간 지표조사를 통해 18호와 20호로 정해진 가마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8호의 발굴 결과 가마는 경사진 자연 구릉을 이용해서 진흙으로 축조한 토축 등요(土築 登窯)이며, 가마의 규모는 수평길이 19.7m, 폭 1.3m~1.5m, 가마의 경사도는 12~18?로 확인되었다.

출토된 청자들은 대개가 포개 구운 상번(常燔) 청자로, 발(鉢)과 대접, 접시 등 일상용기가 주류를 이룬다. 음각·양각·상형(象形)·상감·철화·철채·퇴화 등의 다양한 수법이 사용되었으며, 특히 철화청자편이 많이 발견되는 것이 특징이다. 문양은 국화·연꽃·모란·당초·초화·보상화·운학·버들무늬 등이 음각이나 상감으로 이용되었다.

태토(胎土)에는 사립(砂粒)이 섞여 있으며 유약은 비교적 얇게 입혀졌고 암록색을 띠는 등 청자의 질이 인근의 유천리 청자나 강진 청자보다 떨어진다.

출토된 파편들의 기종과 형태, 및 수습 파편 중에 햇무리굽이 없는 점, 또 굵은 모래를 뭉치거나 규석 등을 번조 받침으로 사용한 점으로 미루어 가마 운영 시기는 11~12세기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전북의 역사문물전3 부안」-국립전주박물관>

/허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