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영산회괘불탱(來蘇寺靈山會掛佛幀)

 

• 종 목 : 보물 제1268호
• 분 류 : 유물 / 불교회화/ 탱화/ 불도
• 수량/면적 : 1폭
• 지정(등록)일 : 1997.08.08
• 소 재 지 :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 내소사 (석포리)
• 시 대 : 조선시대
• 소유자(소유단체):내소사
• 관리자(관리단체):내소사

 

괘불(掛佛)은 절에서 큰 재(齋)나 야외법회를 열 때 법당 앞 당간지주에 거는 의식용 불화이다. 이러한 불교의식은 현실세계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행해졌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여러 불교의식 가운데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의식이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천도의식으로는 49재(四十九齋), 예수재(豫修齋), 수륙재(水陸齋), 영산재(靈山齋) 등이 있으며, 장수와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영산재에는 영산회상도를, 죽은 후에 행할 불사를 생전에 미리 지내는 예수재나 물속과 땅위에 떠도는 고혼을 달래고 이들을 인도하는 수륙재에는 지장회상도를 건다.

그 외에도 나라에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나 기우재 등의 법회를 열 때에도 괘불을 건다.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괘불은 거의가 조선후기(1622∼1892년)의 작품으로 대부분 영산회상도인데 이는 조선시대에 법화경신앙이 크게 유행한 것에 기인한다.

내소사영산회괘불탱화는 조선 숙종 26년(1700년/강희 39년) 내소사 주지 도순(道淳) 스님과 대공덕주인 도현(道玄) 스님 등의 원력(願力)과 김제에 살던 가선대부 중추부 곽선홍(郭善興)과 그의 형제들이 시주하고 화사(畵師) 가선대부 천신(天信) 외 7명의 승려가 삼베(細布)에 그린 것으로 크기가 세로 995cm, 가로 920cm이나 된다.

내소사영산회괘불탱화는 주불(主佛)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증청묘법다보여래불(證聽妙法多寶如來佛), 오른쪽에 극락도사아미타불(極樂導師阿彌陀佛), 그리고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관음보살(觀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등 7존(七尊)을 그려 모신 영산상회상도로서 특히 증청묘법다보여래와 아미타불을 그려 모신 것으로 보아 석가모니불이 영산회상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를 그린 ‘영산회상도’이다. 또한 각 존상(尊像)의 명문이 있는 입불 형태로 날씬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체구와 화려한 옷의 문양과 채색 등이 수준 높은 작품이다.

내소사영산회괘불탱화를 그린 수화사(首畵師) 천신(天信)은 화원으로서 종2품에 상당하는 가선을 제수 받은 당대 최고의 불화승(佛畵僧)으로 그의 작품은 내소사영산회괘불탱화 외에도 경남 쌍계사 영산회후불화(1687년)와 전남 여수 흥국사 영산회후불화(1693년, 보물 제578호)등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천신 작품의 특징으로는 불·보살상의 얼굴과 머리모양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데 둥근 얼굴에 양 볼은 홍조를 띄고 있으며 반달형의 눈썹과 반개(半開)한 눈, 작은 입의 천진한 얼굴 등의 인물표현과 화려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채색 수법은 천신 이후의 대가로 알려진 의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의겸은 내소사괘불탱의 기본 구성을 따르면서 불, 보살의 크기와 배치를 변화시킨 도상을 제작한 바, 개암사영산회괘불탱(1749년)을 비롯하여 경상남도 청곡사(1722년), 운흥사(1730년) 및 전라북도 안국사 괘불탱(1728년), 전라남도 다보사 괘불탱(1745년) 등이 그의 작품이다.

내소사영산회괘불탱화는 오랜 세월로 훼손됨이 많아서 해안선사(海眼禪師)가 새롭게 수리하여 매년 초파일에 성탄기념으로 괘불하였다. 1997년 8월8일에 보물 제1268호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에 다시 보수하였다. 2011년 5월10~8월28일 국립중앙박물관(서화관 불교회화실)에 전시되었다.

<참고문헌/『내소사지』-능가산 내소사 발행>

/허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