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갑부, 위도 송부자 이야기

 

▲위도에서 본 왕등도 노을ⓒ부안21

 

식도출신 모씨 성님이 이렇게 전한다. 위도 식도엔 박경리의 <토지>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다 간 송부자가 있다고…

백두산의 호랭이도 위도로 조고새끼를 잡으러 올 만큼 칠산바다 한중간에 떠있는 위도에 조고가 떼로 몰려 댕기던 시절. 식도엔 부안군 일대에서는 손가락으로 꼽힐 만큼 큰 부자가 살았다는데, 이름은…, 글쎄…, 그냥 송부자라 불러본다.

송부자네는 얼매나 돈이 많았던지, 갈퀴로 돈을 긁었고,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돈을 펼쳐 널어서 곰팡이를 말리기도 했다는데 어느 날이었다고 한다. 송부자가 항아리에 넣어 묻어 놓은 돈에 이끼가 돋고 곰팡이가 슬게 되었다지 뭔가.

고민에 빠진 송부자, 궁리 끝에 삯을 주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항아리에서 돈을 꺼낸 다음, 물로 씻으라 했다나…. 그런 다음 마당에 걸린 빨래 줄에 돈을 한장 한장 매달아 햇볕을 쬐어 말렸다고 한다.

송부자가 이렇게 위도에서는 물론이고 부안 고을에서 내놓으라 하는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일제시대 일본과 무역을 했기 때문인데 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일본에 수출을 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떵떵거리고 살던 송부자의 유일한 낙은 해질 무렵이면 머슴에게 유성기를 짊어지게 해서 앞세우고, 저저 왕등이 바라다 보이는 쪽의 해안가 바위로 향하였는데. 왕등 너머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고 바위에 걸터앉아 유성기를 틀고 음악감상을 했다지 뭔가.

그래 식도 사람들은 그 송부자가 걸터앉아 음악감상을 하던 바위 이름을 OO씨 바위라 불렀다는데, 송부자가 돌아가신지는 아주 먼 옛날이지만 그분과 관련된 일화와 전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송부자의 이야기는 다음에 제대로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위도 식도ⓒ부안21

 

/서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