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댓골 가는 길

 

ⓒ신건이

60년대엔 부안에도 버스가 들어가지 않은 곳이 많았다. 쑥대골은 귀빠진 곳이어서 다니는 차가 없어서일까. 이곳에 갈 때마다 걸어다녔다. 옛 동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성황산 밑의 한옥 마을 지나면 성황산 중턱의 띠처럼 이어진 산길에 들어선다. 산길은 짐승들이 다니던 길이었다는데 사람들이 노루랑 산토끼가 다니던 길을 빼앗은 셈이다. 성황산 끝물 신선마을 지나서 한가매와 고개를 넘으면 물 좋다는 옹달샘 만난다.

쑥댓골 가는 길

지비리 방죽은 거대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산 위에서 봤을 때 방죽은 큰 그림처럼 보였는데, 어른들은 말같다고도 하고 용같다고도 했다. 방죽 옆 솔밭 길 생각난다. 솔 냄새가 진하고 해질녘에는 방죽으로 들어간 산 그림자가 무서운 짐승처럼 어린 가슴을 눌렀다. 이제 지비리 방죽은 이름만 남았다. 동진 수리시설이 만들어지면서 방죽은 수명을 다하고 논이 되었으니 이곳에서 고기잡고 멱 감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앞주막 지나고 궁동마을 지나서 외갓집 있는 쑥대골에 들어선다. 내동(來洞), 내동(內洞)이라고도 한다. 안골 정도로 말할 수 있는데, 밖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큰 도로에서 고개를 넘으면 암탉이 알을 품듯 보이는 작은 마을로 전주이씨 성받이 동네다.

마당엔 샘이 있다. 시멘트로 둥그렇게 만든 것을 보면 오래지 않은 우물이다. 제법 큰집이어서 대청도 있다. 대청은 시원해서 무더운 여름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고 물건을 쌓아놓기도 하는 생활 공간이었다. 현재 짓는 한옥은 대청을 만들지 않는다. 마루에도 시멘트 얹어 보일러를 깔아 겨울을 대비하는데 찬기가 도는 나무로 만든 대청은 애물단지 일 수밖에 없다.

이름만 남은 것들에 애정을

부안 읍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부안 인물들은 유교사회를 떠받친 국가 공신이거나 효행에 힘쓴 사람들이다. 인물 중에는 부안 사람들이 기억하는 널리 알려진 사람들도 있지만,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자손들조차 흩어져 집자리 마저 찾을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길 옆의 성황산 밑 동중리, 신선마을, 한가매, 앞주막, 궁동마을, 쑥대골에 살았던 이름 모를 사람들 얘기 기억 할 수 있을까. 부안 읍내에서 이곳 저곳으로 나 있는 작은길 걸으며 고향집 찾아가는 사람들 얘기 되뇌일 수 있을까. 지금은 사라진 지비리 방죽하며 동네우물과 대청 같은, 곧 있으면 이름만 남을 것들에 애정을 가지고 추억이라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까.

/정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