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사진으로나 볼 수 있던
시작은 언제나 가볍고 즐거운 마음이어야 합니다. 오늘 또 제가 살아가는 부안을 걷습니다.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출발」이란 노래 가사를 읊조리며 변산 산길 속으로 들어갑니다.
변산은 잘 알려진 대로 큰 산인 주봉이 없이 그만그만한 봉우리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 만큼 산줄기 따라 골짜기가 잘 발달돼 풍광이 수려하고 식물 생태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변산을 산행하다 보면 흥미로운 풍경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변산 산속 골골에 사람들이 살던 흔적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경사가 부드러운 산자락이나 계곡을 지나다 보면 인위적으로 쌓은 돌담이 보이고, 주변에는 감나무 몇 그루가 서 있습니다. 본디 우리가 먹는 과일 나무인 감나무는 산이나 들에 자생하는 고염나무에 기존 감나무 가지를 접붙여 개량한 것입니다. 그러니 감나무가 있다는 것은 이 나무를 가꾼 주인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감나무와 함께 집터 흔적을 보여주는 것은 머위입니다. 호박잎처럼 커다란 잎을 가진 머위는 줄기와 잎을 먹을 수 있어 식탁에 오르는 후덕한 채소입니다. 이처럼 산에서 감나무나 머윗잎을 발견하는 일은 그 곳이 한 때는 집터였음을 알려주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주변을 둘러보면 커다란 팽나무 한두 그루가 눈에 띠는데, 이는 동네 어귀의 당산나무로 일대가 마을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내가 이런 곳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것은 빛바랜 사진으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돌과 진흙으로 된 흙담, 돌을 밑에 깐 장독대, 재래식 똥간, 밭 둘레 돌담 등 지금은 쓰임을 잃어 무너지고 퇴색한 흔적들입니다. 이처럼 추억 속에서나 그려볼 것들이 남아 있음이 신기하고 반가운데, 그 흔적에 지난 기억을 보태면 그 시절이 복원됩니다.
시간을 거스르는 나그네 여행자가 되어
변산 산자락엔 이런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신선대 대소마을, 청림 새재, 운산리 지름박골, 굴바위 넘어 회양골이 대표적인 곳이죠. 이곳은 사람들이 한때 마을을 이루고 살았지만 이젠 사람들이 떠나고 흔적만이 수풀 속에 남아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떠난 시기는 이유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강 1960년대 말부터 가장 최근에는 부안댐에 의해 마을이 수몰되는 1990년대 쯤까지로 추정됩니다.
굴바위에서 재를 넘어 회양골에 들어서면 하늘을 덮은 활엽수 숲길이 나타나고 길 옆 개울가를 따라 돌담 축조 흔적이 보이는데, 산길에서 흔치 않은 평평한 땅임이 관찰됩니다. 벽돌 크기의 돌들이 면이 잘 맞춰져 길에 놓인 걸로 보아 사람의 손길로 공들여 닦인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시냇물 따라 이어지는 계곡 길을 걷다보면 시야가 넓어지며 편안한 맘이 드는 공간이 있습니다. 가던 길 멈추고 둘러보면 특별하게 크고 둥근 머윗잎이 눈에 들어오고, 허물어진 담벼락을 따라 깨진 옹기 조각도 발견되니 집터 흔적입니다. 지금 걷는 이 길은 마을에서 고개에 이르는 이 동네 간선 도로 정도였겠지요.
또 내소사 옆 산 고개를 넘어 대소마을이 있습니다. 이 곳 지형을 따져보면 직소폭포 봉래계곡으로 흐르는 시작점으로 변산의 배꼽 정도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까닭에 이 마을을 지나면 신선대 마을 이야기가 전해지며 흔적도 찾을 수 있습니다. 신선대 마을은 종교 공동체로서 지리산 청학동 주민들이 원래 살던 곳이라 합니다. 이곳도 산을 넘어 가파른 고갯길 끝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숨을 고르면 분지 형태의 마을 터를 마주합니다. 마치 하늘로 올라온 무릉도원처럼 어디 복숭아 꽃 그늘 아래에서 백발의 도연명이라도 만날 것 같은 곳이죠.
이처럼 산 속에서 사람들이 살던 흔적을 마주하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보태면 나는 어느 새 그 시절에 가 있게 됩니다. 한 짐 이고지고 이 고개 너머 길을 힘겹게 올랐을 사람들, 어머니 손잡고 산길 걷는 아이, 불콰하게 술 취한 얼굴로 어스름 길을 돌아왔을 지아비와 힘줄 돋은 그의 손끝에 매달린 생선 두어 마리도 다 이 길 위에서 흔들렸겠지요. 그리고 지금 그들이 지났을 이 길을 걷는 나는 시간을 거스르는 나그네 여행자가 되는 겁니다.
‘사는 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길어봐야 불과 50년 전, 변산 산골 곳곳에도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삶의 뿌리를 옮기는 이사는 땅을 근거로 살아가는 농경 사회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사건입니다. 오늘날 삶의 터전이란 직장 또는 직업을 큰 뿌리로 여기지만 예전엔 말 그대로 땅과 사람을 동일시하는 의식이 작동했을 것입니다. 낳고 자라고 생활하다 묻히는 고향이 생태의 뿌리이고, 그런 만큼 고향을 떠나야 하는 자체가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다 큰 나무를 옮기는 일처럼요.
흔적만 남은 마을을 보면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칩니다. 처음 사람이 정착한 이래 사람들이 모이고 자손들이 번성하여 마을이 성장하는 것은 마치 생명이 탄생하고 자라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마을의 생명은 사람을 매개로 태어나 마치 세포 분열하듯 인구가 늘고 필요한 기관이 분화하여 동네를 이루고 점차 사회를 구성해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계기로 운명이 바뀌는 것처럼 사람이 떠나면 마을도 생명을 잃어 집터 흔적으로만 과거를 얘기할 것입니다.
한 지역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일은 여행이나 산행을 더 풍요롭게 합니다. 폐허 된 마을 답사는 박제된 옛것이 아니라 세상사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됩니다. ‘그래, 사는 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라고 탄식을 뱉어내는 순간, 시대만 다를 뿐 사는 호흡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죠.
그늘 틈 햇빛 한 뼘으로도 눈이 부시니
다시 노래 가사를 읊조립니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은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때로는 넘어져도 내 길을 걸어가네~”
변산의 숲길에서 나와 내가 보는 흔적들 그리고 이를 감싸는 자연은 그 자체가 양자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이비드 봄이 말하는 감춰진 질서, 생명으로 드러냈다 다시 그 ‘접힌 질서’ 안으로 편입된 현장을 보는 듯 합니다. 또 변산 산길에서 만나는 옛 사람들의 흔적은 시간 여행의 입구로, 이를 통해 들어가 보면 곳곳에서 맑은 샘물이 솟는 정원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야말로 변산은 그 자체가 모든 걸 감추고 있는 비밀의 화원 같지요.
수많은 방송과 정보 매체가 범람하면서 소개되는 먹거리나 볼거리로 대한민국 시골 구석구석이 차량으로 막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나만이 알고 지키고 싶은 그런 곳으로 남았으면 하는 관광지가 있기도 합니다. 사람 내음이 덜 나는 그래서 자연의 향과 소리를 좀 더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남았으면 하는 곳! 변산의 숲길은 저에게 그런 곳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안을 사랑하고 변산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다시 주변을 돌아보니 초여름 하늘나리 꽃이 보입니다. 숲 속 커다란 나무 사이에 자리한 주황색 얼굴이 눈에 띄는데, 그늘 틈 햇빛 한 뼘 받아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잠시 눈을 감아보니 숲은 나무만 있는 게 아니군요. 온갖 새소리 또한 가득합니다.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달콤하고요. 두 발로 땅의 리듬도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서 개구리가 풀쩍 뛰어올랐다 개울 건너편으로 사라집니다. 이제 내 차례입니다. 나는 건너뛰어야 할지, 신발을 벗고 개울물 안을 걸어야 할지를 망설이다가 이내 또 노랫말을 떠올립니다.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넓은 세상으로~”
언제 다시 저와 함께 변산 숲속으로 떠나보시지 않겠습니까?
/서융(서융치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