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은 어수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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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水臺 
장마철이 되면 자연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다가 부안 지역에 100mm 이상 비가 내릴 거라는 소식이 들리면 짐을 꾸려 내변산을 찾는다.
뭐니뭐니해도 변산의 진경은 우중변산이다. 물안개 피어오르며 곳곳에서 폭포가 쏟아지는데 각 장면마다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그 중에서도 비경은 어수대를 꼽을 수 있다. 어수대는 섶못에서 우슬재 넘어 오른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괴석의 절벽을 말한다. 장마철에는 이 기암괴석의 절벽이 왼통 폭포로 변하여 장관을 이루는데, 瘟楮【?피어오른 물안개 사이로 쏟아지는 기다란 물줄기는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 그 시작점을 헤아리기 어렵다.
어수대에 쉽고 빠르게 오르려면, 산 아래 어수대산장가든에서 올라야 한다. 어수대까지는 20여분, 어수대(폭포)에서 왼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10여분 더 오르면 왕등암(王登菴)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지는데 왼쪽 길은 쇠뿔바위를 지나 의상봉 정상에 이르는 길이고,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샘(어수대산장가든 김문식 씨는 ‘영천샘’이라고 한다.)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왕재(王在)·석재암(釋在菴) 터다. 이 샘에는 항상 맑은 물이 고여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백천의 발원샘 중의 하나인 샘이다.
그런데 이곳의 지명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어수대(禦水臺), 왕등암(王登菴), 왕재암(王在菴)…, 모두가 왕과 관계되는 지명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임금이 이곳을 다녀갔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여기에는 몇가지 설이 있다.
백제부흥운동당시 「풍」왕자가 이곳을 다녀갔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1997년 발행한 「주류성과 백강」에서 고 강성채 선생은 “645년 의자왕이 지방시찰차 부여 백마강에서 배편으로 부안의 해창만(군막동)에 내려 10km 지점인 청림리 왕재사(王在寺)에 들러 소요하고, 이곳 어수대 맑은 계곡물로 몸을 씻었다.”라고 비교적 자세하게 의자왕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어디에 근거한 설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또 어떤 이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라고 하는데, 부안의 향토사학자들도 대체로 ‘경순왕 설’을 받아들이고 있는 편이다. 이를 근거한 기록인 동국여지지(東國與地誌)에는 “왕재암·석재암-둘 다 변산 옥순봉 동쪽에 있다. 4면 석벽이 가파르고 높은데, 그 위는 후미지고 평평하여 완연한 천성(天成, 하늘이 이룩한 일)으로 암자가 그 안에 있으며, 두 절이 서로 잇닿아 있다. 그 동남쪽에 어수대가 있고, 서남쪽에 왕등암(王登菴)이 있는데, 모두 낭떠러지가 천길이어서 사람이 기어오를 수 없다. 절에 기(記)가 있는데 ‘암자는 정심두(正心頭陀)가 창건하였다. 신라왕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이곳에 이르러 즐기며 돌아가기를 잊었다.
이에 왕재(王在), 석재(釋在), 어수(禦水)의 이름이 있게 되었다. 낭떠러지 돌계단이 가깝게는 구름 걸린 산에 에워싸이고, 실로 지장(地藏)의 별세계요, 하늘이 열린 듯한 뛰어난 경치로 복정(福庭, 복을 누릴만한 땅)이 된다.” 하였다.
어수대가는길
부안 ▶ 하서(섶못) ▶ 구암리지석묘 ▶ 우슬재 ▶ 어수대산장가든 ▶ 어수대
조선 선조 때 부안의 여류시인 이매창이 이곳에 올라 시 한 수를 남겼다.
登御水臺
王在千年寺 空餘御水臺
往事憑誰問 臨風喚鶴來
천년왕업의 옛터엔
겨우 어수대만 남았어라
지나간 옛일이야 누구에게 물으리오
바람맞으며 서서 학만 불러보네
-허 경진 역-
/허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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