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의 설화] 왜몰치倭歿峙와 팔장사八壯士-임진왜란 때 왜군 몰살시킨 ‘여덟장사’

  지금은 도로가 넓게 확장되고 포장까지 되어 길이 많이 달라졌지만 하서 백련초등학교 정문 앞이 옛날엔 야트막한 고개였고, 이 고개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몰살당했다는 전설이 있는 왜몰치倭歿峙 고개다. 조선 중엽에 이 근동에 힘이 세고 몸이 날랜 여덟 청년이 있었다. 이들은 뜻이 크고 힘도 세었으나 당시의 사회제도가 천민들에겐 벼슬길이 막혀있는 때라 울분을 새기면서 여덟 청년이 자주 만나 형제의 의誼를 맺었다. 이들은 날마다 만나서 산야를 헤매며 무술을 닦고 나무를 한 짐씩 하여다 이 고개마루에 돌성을 쌓고 그 안에 나무를 쌓아 두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

새해를 축복하는 서설瑞雪이기를… 호랑가시나무

  부안에 많은 눈이 내렸다. 눈폭탄이 아니라 새해를 축복하는 서설瑞雪이기를 바란다. 하얀 눈 속의 붉은 호랑가시나무 열매가 더욱 매혹적이다. 호랑가시나무는 변산을 대표하는 식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이 나무는 따뜻한 지방에서만 자라는 난대성 조엽상록수인데 변산반도까지 북상해 분포한다. 이 식물의 북방한계선이 바로 변산반도인 까닭에 변산면 도청리 모항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호랑가시나무는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12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키가 2∼3m까지 자라며 겉 가지가 많다. 잎의 길이는 3∼5cm정도이며 타원형 육각형으로 매끈하니 광택이 난다. 각점에는 가시가 나있는데 이는 잎 끝이 자연스럽게 둘둘 …

초겨울 숲, 새들의 성찬 ‘노박덩굴’

  어느새, 갑자기 조락해 버린 초겨울 숲엔 생명활동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열매들을 새들이 그냥 놓아둘 리 없다. 그 중에서 유난히도 화려한 노박덩굴 열매가 온갖 새들을 불러들여 성찬을 베풀고 있다. 노박덩굴은 이름그대로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덩굴나무이다. 그러나 머루나 다래나무처럼 주변의 다른 나무를 칭칭 감고 오르지 않는 탓에 자칫 덩굴나무인지를 잊게 된다. 산기슭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노박덩굴은 다 자라봐야 사람 키를 조금 넘길 정도로 다른 나무들에 비해 작게 자란다. 꽃은 유백색으로 5~6월에 …

용암龍庵 김낙철金洛喆의 선비정신-동학과 부안기포두목 김낙철

  1894년 2월 15일 갑오동학혁명이 고부군에서 일어나니 바로 인접한 정읍, 부안, 고창 등지는 동학군 중심지가 되었다. 이때 부안의 동학군은 김낙철金洛喆이란 사람인데 그의 아우 낙봉洛鳳, 辛明彦, 白易九, 姜鳳熙, 辛允德 등과 더불어 동학을 도우며 부안의 치안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동학군이 황토현 싸움에서 관군을 크게 이기고 인접한 고을을 모두 점령한 다음 부안의 백산白山에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재정비를 하고 있을 때, 각 고을에서는 크고 작은 보복과 약탈 등이 자심하였으나 부안은 조용하였다고 한다. 이는 이곳인 김낙철 형제의 온유한 선비정신과 바른 치안자세의 덕이라고 한다. 김낙철은 자字는 …

부안에서 지킨 조선 유학의 마지막 절개-간재 전우

  공자(孔子)는 춘추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겠다.(道不行 乘 浮于於海:<논어>, 공야장편)” 라고 말하였다. 한말의 격동기에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하는 참담한 좌절 속에서 공자의 이러한 말을 좇아 서해 절해의 고도 왕등도로 들어갔다가 부안의 계화도에서 일생을 마친 도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한말의 거유(巨儒), 간재(艮齋) 전우(田愚)이다. 전우(田愚)는 1841년(헌종7) 8월 13일 지금의 전주시 다가동에서 아버님 담양(潭陽) 전씨 청천공(聽天公) 재성(在聖)과 어머님 남원 양(梁)씨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청천은 충청도 홍주에서 살다가 전주에 이르러 그를 낳았다 한다. 전우는 태어나서 3일 동안 …

“거그서부터는 개를 걸어서 창북리로 가지”-옛 지도 속 부안이야기-활인정(活人亭)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지도 한 장이 눈길을 계속 붙들어 맨다. 변산해수욕장(송포)-해창-돈지-청호-큰다리-대벌리-창북리-새포-문포까지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따라 올망졸망 터 잡은 마을들이 펼쳐지고, 대벌리 조봉산(그때 당시는 섬) 너머로는 계화도가 떠 있다. 계화도 간척 50여 년 전의 지도이다 보니 시선은 자연 그 일대 해안선에 고정된다. 돈지포구, 이 지도가 만들어질 무렵이었으면 꽤나 번창했던 포구다. 거상들도 머물렀고…, 돈지 노인들에 의하면 포구 곳곳에서 걸대에 조기말리는 광경은 장관이었다고 한다. 청호, 돈지포구에서 갯골은 청호로 이어져 두포천과 언독리(큰다리)에서 만난다. 계화도간척 후 청호지가 들어섰으니, 갯골은 청호지 가운데에 묻혔다. 청호지 부근에서는 1960년대 …

깊어가는 가을, ‘투구꽃’과의 만남

  깊어가는 가을, 투구꽃이 눈길을 끈다. 매혹의 보랏빛, 전사들의 투구처럼 생긴 독특한 자태로 취나물, 구절초, 산국 등 국화과 식물 일색인 늦가을 숲을 압도한다. 투구꽃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깊은 산에서 자란다. 문헌에는 속리산 이북에 자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변산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키는 약 1m쯤 자라는데 덩굴식물도 아닌 것이 비스듬히 자란다. 잎은 단풍잎 모양으로 3~5갈래로 잎자루 근처까지 깊게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다. 꽃은 비스듬히 누운 가지 위에 무리지어 핀다. 시기는 조락의 기운이 감도는 9월 말경부터 피기 시작하여 10월에 …

[왕등의 육상생태] 왕등도에서 만난 들꽃

  왕등도에는 어떤 식물들이 살고 있을까? 9월12일 왕등도 탐방 첫째날, 일행들은 섬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며느리밑씻개가 지천으로 피어 우리 일행을 반긴다. 며느리밑씻개 사이사이에서 “나도요‘ 하며 닭의장풀, 가막사리, 한련초도 얼굴을 내민다. 환삼덩굴이 간재선생유허비 주변 언덕 일대를 우점한 채 며느리밑씻개, 닭의장풀 등을 꽤나 못살게 굴며 타의 접근을 불허하는 태세다. 생명력이 강하기로는 이 환삼덩굴을 따를 식물이 없어 보인다. 어떤 이는 이 환삼덩굴이 있어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때문에 자연이 그나마 좀 보존된다며 환삼덩굴의 순기능적 역할을 역설하기도 한다. 마을에 들어섰다. …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붙듭니다-명곡과 시를 좋아했던 소녀, 김용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붙듭니다. 그러나 마음은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진 한 장에는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지요. 지난 10월 19일 백산고등학교 정재철 선생과 돈지 김용화 할머니를 찾아뵈었는데, 그동안 못 보던 사진 한 장이 액자에 고이 담겨 있기에 우선 촬영부터 했습니다. 조카들이 늦게야 이 사진을 발견하고 확대 복사해 한 장씩 나눠 갖고 할머니에게도 한 장 보내주었답니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바로 김용화 할머니입니다. 사회주의 노선의 독립운동가 지운 김철수의 둘째 딸이지요. 할머니는 1919년에 태어나셨으니 올해로 아흔이십니다. 할머니의 …

사라진 줄포항, 그 근대의 기억

  줄포. 한자로는 茁浦로 표기한다. 茁자를 자전에서 찾아보면 “1. 풀이 처음 나는 모양 2. 싹이 트다. 풀이 싹트는 모양 3. 동물이 자라는 모양 4. 성 5. 풀 이름”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한자를 들여다보면 사물의 움직임에 대해 상당히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줄포의 역동성을 미리 예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조 말엽 줄포는 건선(乾先)면으로 불리었으나 1875년 항만이 구축되면서 건선면에서 줄포면으로 개칭되었다. 이전부터 부른 줄래포를 개칭한 것이다. 줄포는 1900년대 초 서해안 조기의 3대어장 중의 하나인 칠산어장을 안고 근대의 항만으로 발전하였다. 곡창지대 호남평야의 …